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4) 사시음(四時吟)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4) 사시음(四時吟)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10.2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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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고 굶주림은 내가 다 자초한 허물이니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계절에 따라서 생활의 변화라는 진폭이 무척 심하다.
농경 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식생활의 변화도 마치 하늘과 땅을 오가는 형국이다. 요즈음 기후 온난화가 심하여 더욱 그러하다고는 하겠지만 난방과 의복이 넉넉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는 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은 뻔하다.
이런 사시의 기후 변화를 두고 읊었던 시문은 많다. 춘경(春景)은 더했으리니. 기후 변화로 나타나는 사시를 두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四時吟(사시음) / 최배용

잡목이 우거진 숲 산새들이 지저귀고
천둥소리 빗줄기에 볏 줄기 오른다네
주렴을 슬쩍 들치니 흰 구름이 엉켜 붙네.

叢林山鳥樂      雷雨野禾登
총림산조락      뇌우야화등
對酌黃花笑      開簾白雲凝
대작황화소      개렴백운응

헐벗고 굶주림은 내가 다 자초한 허물이니(偶吟)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최배용(崔配溶:?∼?)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잡목 우거진 숲에 산새들은 즐겁게 지저귀고 / 천둥소리 나더니 빗줄기는 들판의 볏줄기에 오르네 // 비를 마주대하면서 한 잔 술을 마시니 황국이 방긋이 웃고 / 주렴을 가만히 들치니 흰구름 서로 엉겨 붙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우연히 읊다]로 번역된다. 선경후정(先景後情)이란 한시구조의 특징으로 하면서 잘 묘사된 작품이다.
글쓴이는 제목에서 보여주고는 있지만 결코 우연하게 읊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물을 자세하게 관찰한 나머지 하나도 남김없이 글쓴이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잡목이 우거졌다. 산새들이 운다. 천둥이 친다. 빗줄기가 내린다 빗줄기를 맞고 볏줄기가 자란다.’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범상하지 않는 상상력과 관찰력을 보인다.

시인은 시적 구성에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산새들의 노래를 듣고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는 표정이 시문의 속에 깊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천둥소리의 짜증(?)을 듣고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를 맞고 들판의 볏줄기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여과없이 잘 묘사하고 있다.

화자의 입을 빌은 시인은 술을 마시니 황국이 방긋이 웃어 주었다고 상상한다. 그 웃음이 화자에게는 더 없이 반가웠을 것이다. 자연과의 대화에 어느 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다. 안방 주렴을 살짝 들어 올리니 흰구름 엉키면서 반기는 모습도 상상해 내는 착상을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산새들은 지저귀고 빗줄기 벼에 오르네, 한 잔 술에 황국 웃고 흰구름이 엉켜 붙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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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2부 外 참조] 최배용(崔配溶:?∼?)이다.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한자와 어구】
叢林: 잡목이 우거지다. 山鳥: 산새들. 樂:줄겁다. 雷雨: 천둥소리 빗줄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다. 野禾: 들판의 벼. 登:오르다. // 對酌: 마주 대하여 술을 마시다. 黃花: 누런 국화. 笑: 웃다. 開簾: 주렴을 열다. 주렴을 들치다. 白雲: 흰 구름. 凝: ~인가 의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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