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데…
나이가 들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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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40이 넘었다. 문득 나이가 들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떠올라 거울을 보며 미소를 지어본다. 50, 60이 되면 나는 또 어떤 얼굴을 만들고 가고 있을까?

결혼 이후 자녀를 출산하고 육아와 집안 살림에만 바쁘게 지냈을 때가 있었는데 속마음은 또 다른 이유로 쫒기듯 바빴다. 육아와 살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때가 오면 난 무엇을 해야할까? 공부를 하거나, 기술을 배우거나, 사업자금을 모으거나, 어떤 준비라도 해야할 것이 아닌가 불안했다.

그런 중에 생활 속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함께 풀어 나가는 공동체 활동을 소개받았고, 그곳의 활동은 나의 조급증을 풀어주는 탈출구가 되었다. 아이의 학교문제와 우리 식탁의 식품안전성 문제를 공감하는 아줌마들이 모여서 작은 실천이라도 해보자며 움직였던 일들로 나의 생각은 사회로 열리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아량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생협)을 통해 친환경농산물로 건강한 식탁을 차리면서 애쓰시는 농민과 다시 살아나는 자연을 만난다. 주부들을 중심해서 시작한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내 식탁에서부터 이루어지고, 마을모임과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조금씩 주변으로 확산되어간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귀족적인 고상한 책임성까지는 못 갈지라도 우리는 어느새 주변의 문제 거리들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40대 중반부터 전업주부들에게 나타나는 '빈 둥지 증후군'이 우리나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자녀들이 엄마 손에서 독립하여 제 앞가림을 스스로하고 남편도 사회 중견인이 되어 바쁘게 생활하게 될 때 주부들이 혼자 빈 둥지를 지키는 허전함에 방황한다는 것이 '빈 둥지 증후군'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위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는 것 같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인데 그리 방황하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바쁜 것이다.

그동안 못했던 운동하는 일에, 쑤시는 몸을 달래려 찜질방에, 갖가지 계모임에 오랫동안 머물다보면 하루가 금방 채워지고 만다. 아니면 문화센타에서 공부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올 때쯤이면 학원 돌릴 채비하는 과외 운전수도 꽤 있다. 다 큰자식에게도 힘을 보태줄 일이 많고 참견하고 싶은 교육열이 넘쳐나 끝까지 달달 볶아대는 지도 모른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내 몸과 내 가정, 내 자식에게만 몰려있는 관심과 정열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허한 맘이 들 때에만 새로운 일들에 관심을 돌릴 수 있기에 빈 마음들을 만나고 싶다. '더불어 잘 사는 일'들에 힘을 보태는 공적인 관심사로 서로 만나면 주부들의 손으로 엄청난 일들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사회에는 주부들이 참여할 공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참여의 터가 보편화되어 있지는 못하다. 우선은 좁게 웅크린 마음과 생각을 풀고 주위를 살펴 보아야한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발견해야한다. 먼저 기존의 사회단체나 봉사센타, 생활협동조합의 활동에 귀를 기우려보는 일이 필요하겠다. 다른 나라의 사례들도 기웃거리면 착안되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빈 둥지가 되기 전부터 준비해야한다. 자기 가정생활이 바쁠 때에도 이웃과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때가 되면 나도 한 몫을 거드는 것이지 갑자기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가족과 내 삶이 이웃과 사회에 연결되어있으니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 30대의 주부들이여! 내 자식, 내 집안에만 있어도 숨이 차도록 바쁘겠지만 이웃과 우리 사회의 문제들도 나의 문제로 연결하여보고 더불어 잘 살아가는 일들에 내가 무슨 힘을 보탤 수 있을지 고민하며 생각을 넓혀보기를 권한다. 욕심과 불만으로 만들어지는 내 얼굴을 책임지려면 우울해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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