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5) 야숙강산(夜宿薑山)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25) 야숙강산(夜宿薑山)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5.22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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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람이 하루라도 진정한 벗이 없다면

고전문학의 진수를 이야기하곤 한다. 고개 숙여 배워야 할 선현의 문헌은 많다. 실학의 한 대가가 ‘외국을 배워야 한다’가 아니라 ‘외국 문화에서 배울 것을 찾고, 나를 변화시키는 통찰과 분석의 태도와 방법’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하는 호소력도 듣는다. 그래서 형제도 마찬가지겠지만 벗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배울 것을 강조한다. 섬찟한 [北學議(북학의)]도 접하면서, 또 사상의 호연지기를 만나면서 벗이 없다면 양팔을 잃은 것 같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夜宿薑山(야숙강산) / 초정 박제가

형제이지만 기운을 나누지는 못했고

부부일지라도 한 집에 안 살 수 있는데

사람이 벗이 없다면 양쪽 팔을 잃은 것.

兄第也非氣      夫婦而不室

형제야비기      부부이부실

人無一日友      如手左右失

인무일일우      여수좌우실

 

만약 사람이 하루라도 진정한 벗이 없다면(夜宿薑山)으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朴齊家:1750~1805)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비록 형제이지만 그 기운까지는 나누지는 못했고 / 부부일지라도 한 집에 살지 않을 수 있네 // 만약 사람에게 하루라도 진정한 벗이 없다면 / 마치 양쪽 팔을 잃은 것 같지 않겠는가]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밤에 강산집에서 자면서]로 번역된다. 17~8세기 조선은 극빈한 상황에서 부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소명 앞에 처해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변혁은커녕 기존의 체제만을 고집한 채 이를 거부한 사회적 풍조는 조선사회를 낙후시켰고, 근대사회의 비극을 초래했다. 이것이 실학을 낳은 원인이다. 실학자의 마지막 한 사람의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시인의 실학사상 핵심은 ‘외국을 배워야 한다’가 아니라 ‘외국 문화에서 배울 것을 찾고, 나를 변화시키는 통찰과 분석의 태도와 방법’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형제이지만 그 기운까지는 나누지는 못했고, 부부일지라도 한 집에 살지 않을 수는 있다’고 하면서 강산에서 자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시인은 한사코 인간 윤리의 기본을 부부와 형제라고 정의하고 있다.

시인의 입을 빌어 화자는 벗의 중요함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 만약 사람이 진정한 벗이나 학문사상의 벗이 없다면 마치 양쪽 팔이 없다는 내용으로 빗대고 있다. 4가시인(四家詩人)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다 학문의 벗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증거를 보이고 있는 그러한 작품이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형제이나 기운 달라 부부라도 별거 일 수, 진정한 벗이 없다면 양 팔 잃은 꼴이겠지’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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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이조원, 반정균 등의 청나라 학자들과 교유하였고, 돌아온 뒤 보고들은 것을 정리해 생활 도구의 개선을 다룬 내편, 정치·사회 제도의 모순점과 개혁 방안을 다룬 외편의 <북학의>를 저술했다.

【한자와 어구】

薑山: 조선 후기 4가시인(四家詩人:이덕무, 유득공, 유득공, 이서구)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서구의 아호. 兄第也: 형제다. 非氣: 긑은 기운이 아니다. 夫婦: 부부. 而: 그래서. 그래도. 不室: 한 집에 살지 않다. // 人: 사람. 無一日友: 하루라도 벗이 없다. 如: 같다. 手左右失: 좌우 손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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