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9) 독소(獨笑)①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19) 독소(獨笑)①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4.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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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를 충분하게 펼 길이 없고

우주 만물의 여러 가지 원리도 얽히고설킨 인간의 구조와 하등에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조화롭지 못한 것 같으면서도 조화로운 구조가 생물의 원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먹이사슬, 먹이그물이 있고, 정중동(靜中動)의 원리도 입에 올리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다산은 실학의 선구자다. 그는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는 냉철한 통찰력을 갖고 비판의 석쇠가 무르익으면 마구 쏟아냈다. 어쩌면 정반합의 원리로 관찰했을 지도 모를 오언고시풍의 첫째수를 번안해 본다.

 

獨笑(독소)① / 다산 정약용

양식이 많은 집에 자식은 귀하고

아들이 많은 집에 굶주림 심한데

고관들 머리 멍청해 재주 못핀 인재들.

有粟無人食      多男必患飢

유속무인식      다남필환기

達官必憃愚      才者無所施

달관필창우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를 충분히 펼 길이 없고(獨笑1)로 번역해본 장율(長律)인 첫 번째 구 오언배율이다. 작자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양식이 많은 집에는 자식이 귀하고 /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늘 있으며 // 높은 벼슬아치는 행동이나 아는 것이 꼭 멍청하고 /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를 펼 길 없으니]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혼자 호탕하게 웃다1]로 번역된다. 실학의 이름을 걸고 개혁을 주장했던 한 선비가 있었다. 그가 구상한 실학의 뜻은 다 펴지 못했지만 학문성숙은 18년 강진 유배지에서 무르익었다. 만인들의 얼굴을 처다 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독소(獨笑)’를 ‘독소(毒笑)’로 보면서 ‘음양의 원리’에 의한 통찰력을 쏟아낸다.

시인은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듯한 한 단면들을 시심으로 일구어 냈다. 양식이 많은 집에는 자식이 귀하고,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가만히 파안대소하며 혼자 웃는다.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합리화를 잘 드러내고 있다. 조화롭지 못한 원리가 왜 이렇게 조화로운가 하면서…

화자는 사회의 조화롭지 못한 상황도 꼬집는다. 높은 벼슬아치는 어딘가 멍한 곳이 있으며, 재주 있는 인재는 그 재주를 다 펴지 못하고 있음도 한탄해 본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집안에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 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다]라고 했다. 역설적인 불합리와 불협화음을 지적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양식 많고 자식 귀해 아들 많이 굶주림이, 벼슬아치 멍청하고 인재들은 재주 못펴’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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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이다. 경의진사가 되어 어전에서 <중용>을 강의하고, 1784년 이벽에게서 서학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자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한자와 어구】

有粟: 곡식이 있다. 곡식이 많다. 無: 없다. 귀하다. 人食: 자식을 뜻함. 多男: 아들이 많다. 必: 반드시. 患飢: 근심과 굶주림. // 達官: 높은 벼슬아치. 憃愚: 어리석다. 멍청하다. 才者: 재주가 있는 인재. 無所施: 재주 펼 바가 없다. 재주를 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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