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9) 춘강즉사(春江卽事)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09) 춘강즉사(春江卽事)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01.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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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에게 돌아가는 배, 급히 멎게 하면서

봄 경치와 술을 두고 음영했던 시문이 상당히 많다. 특히 얼었던 강이 풀리면, 새 생명을 잉태하는 듯, 온 대지는 씨앗을 싹틔우려고 꿈틀거린다. 움츠렸던 겨울이 지나는 시점에서 시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시심이 어찌 가만히 잠들어 있을 수만 있으랴. 시인 또한 얼음 풀리는 해빙을 재촉하는 봄의 강을 보면서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으리라. 우의정을 비롯하여 모든 벼슬을 사양하면서도 사공에게 배를 멎게 하고 주막을 물어보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春江卽事(춘강즉사) / 수암 권상하

부슬 부슬 도롱 입은 외로운 나그네

해 저문 뿌연 안개 모래톱 가리구나

사공에 배를 멈추고 주막집을 찾는다.

春雨濛濛掩客蓑      暮江煙浪沒平沙

춘우몽몽엄객사      모강연랑몰평사

急敎舟子停歸棹      隔岸柴扉問酒家

급교주자정귀도      격안시비문주가

 

사공에게 돌아가는 배, 급히 멎게 하면서(春江卽事)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1641~172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부슬부슬 봄비에 도롱이를 입은 나그네 있고 / 해 저문 강에서 뿌연 안개 모래톱을 가린다 // 사공에게 돌아가는 배, 급히 멎게 하고서 / 언덕 건너 편 사립문에 주막집을 물으면서 찾는다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풀리는 봄 강물을 보며]로 번역된다. 비가 오면 어깨에 걸쳤던 도롱이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우장(雨裝)이라고 하여 비옷을 대신해 입고 논에 물꼬를 막거나 트면서, 들판에서 일할 때 볼 수 있었던 도구다. 이런 그림 한 폭의 정경이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은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를 맞고 집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겠다. 부슬부슬 봄비에 도롱이를 입은 나그네 있고, 해 저문 강에서 뿌연 안개 모래톱을 가린다고 했다. 자연의 정경이 잘 나타나 있다. 도롱이를 입고 있는 나그네 저 멀리 뿌연 안개가 그림같이 펼쳐졌던 모래톱을 살짝 가리면서 비가 오고 있다. 안개 낀 시골 정경이 한 눈에 펼쳐지는 듯하다.

화자는 이런 자연에 취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룻배를 타고 가면서 세상을 모두 잊고 자연에 취해보고 싶어 곡주 한 잔이 생각났겠다. [어이, 사공 배를 멈춰보시게. 사립문을 달고 있는 주막집이 어디이던가]하면서 묻는다. 그래서 화자는 사공에게 돌아가는 배, 급히 멎게 하고서 언덕 건너 편 사립문에 주막집을 물으면서 찾았을 것이다. 올곧은 시인정신, 선비정신을 새롭게 만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도롱이 입은 나그네 뿌연 안개 모래톱을, 돌아간 배 급히 멎어 주막집을 물어 찾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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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1641~1721)로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송준길, 송시열의 문인이다. 1660년(현종 1)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668년(현종 9) 송시열이 허적과의 불화로 우의정을 사직하자 유임시킬 것을 상소하였다.

【한자와 어구】

春雨: 봄비. 濛濛: 가랑비가 오다. 흐리다. 掩客蓑: 객이 도롱이를 입어 가리다. 暮江: 해저문 강가. 煙浪: 안개 물결. 뿌연 안개. 沒平沙: 모래톱을 가리다. // 急: 급히. 敎: ~하여금. 舟子: 사공. 停歸棹: 노를 멈추게 하다. 隔岸: 언덕 건너. 柴扉: 사립문. 問: 묻다. 酒家: 주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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