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을 바라보는 이중의 잣대
참교육을 바라보는 이중의 잣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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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참교육운동했던 고교생 김일수씨

김일수씨(31)는 요즘 마음이 무겁다. 최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위원장 조준희. 이하 심의위)에서 89년 전교조의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는 소식을 들어 기쁘면서도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는 것.
김씨의 아쉬움은 다른데 있지 않다.

참교육을 위한 활동을 바라보는 심의위의 잣대가 이중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해직과 구속을 무릅쓰고 참교육을 외치며 싸울 때, 당시 고교 2학년이던 김씨 역시 교실문을 박차고 교육민주화를 외쳤다는 이유로 구속과 제적을 감내해야 했던 것. 하지만 전교조의 활동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 받은데 반해, 자신이 낸 명예회복 신청은 재심청구까지 했음에도 '기각'이라는 답장만 날아왔을 뿐이었다.

심의위의 기각사유는 '김씨가 1심에선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보호자 감호처분을 선고받아 민주화운동관련 유죄판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의위원회가 기각결정을 내린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저와 함께 옥살이를 해야 했던 다른 세 친구들이나, 학교에서 제적 또는 전학 처리된 많은 친구들의 고통은 어디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할지."

전국적으로 1500여명의 학교 선생님들이 교정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89년. 학생들은 사랑하는 선생님을 빼앗길 수 없다며 항의 표시로 혈서를 쓰는가 하면 삭발도 서슴지 않았다.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동요를 막는다며 여름방학을 앞당기기도 했지만, 광주지역 고교생들은 수천명에서 수만명 규모의 대중 집회를 벌이며 더욱 거세게 반발했다.

전국에서 이 지역 고교생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졌던 배경엔 당시 광주 대동고 학생회장이었던 김씨의 주도로 결성된 광주지역 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광고협)가 자리하고 있었다. 김씨는 광고협의 핵심간부로 활동하면서 '선생님을 돌려달라', '민족민주인간화교육 실현하자'고 주장하며 각종 집회와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참교육을 갈망하며 순수한 열정을 불사른 데 대한 대가는 열여덟 고교생이 감내하기에 너무도 가혹했다.
"광고협 활동과 관련해 6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학교에 돌아오니 절 기다리는 건 제적통지였어요. 나중에 복적이 돼 졸업은 했지만 결국 고교졸업장 하나를 받는데 5년이 걸렸지요."

89년 전교조 활동, 민주화운동 인정
당시 구속 고교생은 심의에서 기각
"역사속에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을 뿐"


김씨를 비롯해 광고협 의장이었던 강위원씨(31. 당시 서석고 대의원회의장)등의 구속은 "4.19 이후 첫 시국사건 관련 고교생 구속"이라며 언론에서도 관심 있게 다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더 이상 고교생일 수 없었던 이들은 함께 싸웠던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잊혀져 갔다. 그리고 김씨가 가지고 있던 당시 각 학교에서 벌어진 교사 및 학생들에 대한 부당한 징계사례 등 수많은 자료도 함께 흩어지고 말았다.

89년의 여름은 고교 졸업 이후 김씨의 삶에도 많은 굴곡을 가져왔다. 교도소 수감중 일주일간 단식을 했다는 이유로 보안대 어두운 방에 끌려가 무수히 두들겨 맞은 이후 어두운 곳에 대한 기피증이 생겼다. 군입대를 했으나 병의가사로 제대를 했고, 이후 그를 따르던 후배들에 대한 책임감 등을 이유로 몇 년간 고교학생운동에 정열을 쏟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덧 고교시절 동기들과 인생 사이클도 많이 달라져버렸다. 다시 친구들보다 7년이나 늦게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어학연수도 했다. 졸업과 동시에 전공을 살려 언론사 시험에 응시하기도 했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기회마저 많지 않았다.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고, 당시의 제 행동에 대해 후회해본 적도 없어요. 오히려 그 날의 열정들이 지금의 저를 밀고 가고 있는 지도 모르죠. 다만 전교조의 활동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데 공헌했듯, 저희들의 활동 역시 역사 어딘가에 한 줄 정도 정당하게 기록되기를 바라는 것뿐이죠."

한편, 광주시 교육청은 당시 전교조 사건과 관련해 이 지역 학생들에 대한 학교별 징계나 제적 등에 관한 통계자료가 없다고 답했으며 전교조 광주지부측도 "10년도 넘은 일이다보니 당시 학생들과 연락도 끊겼고, 담당부서였던 학생사업국도 없어진지 오래"라고 전했다.
전교조측은 또 김씨의 심의위 신청서 제출과 관련, "일수와 위원이가 신청한 사실은 전혀 몰랐다"며 "전교조 선생님들도 아직 전부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함께 인정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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