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1) 희우정송가[3]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91) 희우정송가[3]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9.0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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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께 부탁해 그 전함 길이 하실 새[3]

춘정 변계량은 만조백관 중에 유독 자신을 선택하여 ‘희우정송가’를 지어 부르라는 어명에 그저 감읍할 뿐이었다. 시인이 지은 시문은 대체적으로 문학적 상상력은 없어 보이나 임금과 백성에게 보내는 교서문의 형식을 갖춘 메시지 역할을 하기에 격이 높고 설득력이 있다. 시문 형식을 갖추었을 뿐 격을 중요시했던 조선 사회를 염두해 두고 보면 이른 바 파격시다. 그러나 명문임엔 분명해 보인다. 시인이 다시 종장에 칭송하면서 읊었던 시 셋째수를 번안해 본다.

 

喜雨亭頌歌(희우정송가)[3] / 춘정 변계량

군후들이 조아리며 축원하는 군왕 만년

문인에게 부탁하여 그 전함을 길이 하니

받들어 글 지어 올려 화봉돌에 새기리라.

君侯稽首我后萬年      思我文人以永厥傳

군후계수아후만년      사아문인이영궐전

臣拜撰辭爲多士先      瞻彼華峯維石可鐫

신배찬사위다사선      첨피화봉유석가전

 

문인들께 부탁해 그 전함 길이 하실 새(喜雨亭頌歌3)로 변역해본 율(律)의 셋째구인 팔언고시다. 작자는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1369~1430)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군후가 머리 조아려 임금님 만년수 축원하며 / 문인들께 부탁해 그 전함 길이 하실 새 // 신이 절하고 글 지으니 선비 중 처음이었으니 / 저 화봉 바라보니 가히 돌에 새길 만하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희우정을 기리는 노래3]로 번역된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날 듯 한 새 정자가 봉황새 나는 듯한데 / 그 누가 지었는가. 어지신 군후(君侯)였는데 // 왕이 서교(西郊)에 납셨으나 놀이함이 아니오 / 백성이 한창 씨앗 뿌리는데 가뭄을 걱정하심이었다]라고 쏟아냈다. 왕이 서교에 납시는 것은 백성들 씨앗뿌리는 가뭄을 걱정함이라 칭송했다.

시인은 군후가 성군의 만년수를 축원하면서 문인에게 그 전함을 길이 하셨다고 칭송한다. 곧 ‘희우정송가’를 지으라고 혼자만을 선택하여 짓도록 했던데 대한 답신 성격의 시문이다. 그 누가 지었는가 어지신 우리 군후(君侯)였다고 했다. 깊은 은혜에 대하여 감읍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래서 화자는 성군의 깊은 뜻을 오래도록 전하기 위해 경복궁을 감싸고 있는 북한산 봉우리 돌이 그 덕을 새길 만하다고 칭송한다. 문학적 상상력이라기보다는 송가의 칭송문임을 보게 된다.

시인은 이글의 끝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덧붙이면서 글을 맺는다. [刊此頌章千古昭宣: 위의 시문에 이어 마지막 구에 이 기리는 글을 새겨서 천고(千古)에 밝게 알린다]라고 읊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임금님 만수 축원하며 문인 부탁 길이하네, 신의 글 처음이었으니 가히 돌에 새길 만하겠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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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1369~1430)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1392년(태조 1) 창신교위 천우위우령중랑장 겸 전의감승 전의감승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의학교수관을 거쳤다. 1396년(태조 5) 봉직랑 교서감승 지제교로 옮겼다.

【한자와 어구】

君侯稽首: 군후가 머리를 조아리다. 我后萬年: 우리 임금 만년수를 축원하다. 思我文人: 우리 문인을 생각하다. 以永厥傳: 그 전함을 오래하다. // 臣拜撰辭: 신이 절하고 글을 지으니. 爲多士先: 선비 중에 처음이다. 瞻彼華峯(북한산 봉우리): 저 화봉을 바라보다. 維石可鐫: 오직 돌에 새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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