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면 어김없이 산허리를 휘어 감는 구름을 본다. 허리 부여잡고 휘휘 감고 도는 구름의 모습은 화가에겐 멋진 화제가 되었으며, 시인에게는 좋은 서정적인 글감이 되었다. 산허리 감고 도는 모습은 오랜만에 친구를 부둥켜안은 듯 감칠맛을 낸다. 자연과의 좋은 대화이자 속삭임이다. 이것이 시의 맛이자 시적 감흥이리라.
스님을 찾아가는 손님은 스님이 묻혀있는 구름을 쓸지 않았기에 구름을 송화(松花)가 만발했다고 표현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佛日庵贈因雲釋(불일암증인운석) / 손곡 이달
구름에 묻혔어도 스님은 쓸지 않고
지나던 손이 와서 가만히 문을 여니
온 산에 송화 만발에 쇠었겠지 아마도.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
사재백운중 백운승부소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객래문시개 만학송화로
온 산이 송화 꽃 만발하니 하마 머리 쇠었겠지(佛日庵贈因雲釋)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절집이 구름 속에 완전하게 묻혀 살아가기로 / 구름이라고 하면서 스님은 비로 쓸지를 않네 // 지난 손이 와서야 문을 열어 살펴보니 / 온 산의 송화 꽃 만발하니 하마 머리 쇠었겠지]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불일암 인운 스님께 드린 글]로 번역된다. 백의(白衣)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백의민족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하얀 파도만 봐도 예사롭게 여기지 않았고, 아리랑 한 곡만 들어도 순백한 민족혼과 함께 흰색을 연상하며 민족의 대동단결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 시는 흰 색이라는 착상에 의한다. 시인이 암자에서 수도에 정진하고 있는 스님을 찾아간 계절이 한 겨울이었다. 절집이 구름 속에 완전하게 묻혀 살아가기로 구름이라고 하면서도 스님은 비로 쓸지를 않다고 했다. 온 산이 하얀 천을 깔아놓은 듯 소복하게 눈으로 덮여있는 시적 배경 속에 흰 구름도 흰 눈으로, 흰 눈도 떠가는 흰 구름으로 착각하게 되는 멋진 착상을 연상하면서 시상이 전개된다.
화자는 날마다 스쳐지나가는 구름을 스님이 비를 들고 쓸 리 없다고 한다. 아침에 소복하게 내린 눈을 스님이 쓸지 않았던 것은 아마 흰 구름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지만, 봄이면 어김없이 날리는 흰 송화 가루로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노스님의 머리가 희어진 것도 이런 원인에서 찾는 시적 화자의 기발한 착상도 만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구름 속에 묻힌 절집 구름이라 쓸지 않고, 손이 와서 문을 여니 송화꽃 만발하니 하마 머리 쇠었겠네’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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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어머니가 천출이어서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원주 손곡으로 옮겨와 살았기에 손곡을 호로 삼았다. 어렸을 때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지은 글이 매우 많았다. 최경창, 백광훈과 종유하였다.
【한자와 어구】
寺: 절, 사찰. 在: 있다. 白雲中: 흰 구름 가운데 있다. 白雲: 흰 구름. 僧: 중, 스님. 不掃: 쓸지 않는다. // 客來: 손님이 오다. 門: 문. 始開: 비로소 열다. 萬壑: 일만 구렁, 곧 온 산. 松花: 송화가 만발하다. 老: 늙다, 곧 송홧가루가 흰색이니 늙은이의 머리카락으로 상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