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 박광옥 벽진서원, 150년만에 복원 행사
회재 박광옥 벽진서원, 150년만에 복원 행사
  • 정성용 시민기자
  • 승인 2018.06.0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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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11시 서구 풍암동 (전)운리사 현장에서

회재 박광옥 선생의 벽진서원이 복원됐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지 150년만의 일이다.

벽진서원위패봉안추진위원회는 7일 광주시 서구 풍암동 769-1번지에 회재 박광옥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던 운리사 일대를 벽진서원으로 복원하는 행사를 가졌다.

회재 박광옥 선생 영정
회재 박광옥 선생 영정

회재 박광옥 선생은 1526년 1월 26일 광주 서구 매월동 회산에서 성균관 사예인 곤(鯤)의 아들로 출생했다. 본관은 음성(陰城)이고 자는 경원(景瑗)이며 회재는 호이다.

특히 박광옥 선생은 인근의 농사를 돕기 위해 전평제를 축조하고 물을 공급했으며 정자인 수월당을 지어 고경명 등 인근의 선비와 의사들과 교유했다.

벽진서원의 복원은 훼철 150년 만으로 지역의 유림들과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나서 복원을 추진했다.

벽진서원은 1602년 회재 박광옥 선생의 학덕과 절의정신을 추모한 후학들이 광주 서구 벽진동에 벽진서원을 창건해 향사(享祀)와 교학(敎學)에 힘써왔다.

1681년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추배하고 의열사(義烈祠)로 사액됐으며, 뒤에 오두인, 김덕홍, 김덕보를 배향해오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

후손들이 1927년 운리영당을 설립해 향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개발로 선생의 묘소와 영당이 편입돼 1999년 묘소를 이장하고, 그 옆인 서구 풍암동 769-1번지에 박광옥 선생의 영정을 모시는 운리사를 종중에서 복원했다.

뜻있는 유림들과 학자들 그리고 종중이 벽진서원위패봉안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 곳을 벽진서원이라 하고 유림봉사(儒林奉祀)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선생의 위패를 모신 운리사를 의열사로, 학문을 강학하는 강당의 중앙에 벽진서원, 동재를 모현당(慕賢堂), 서재를 숭본당(崇本堂)이라 편액했다.

그리고 유집목판(遺集木版·광주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유물을 소장한 시설들이 있다.

한편, 초대 원장에는 일사 윤장현 선생이 맡았다.

임진왜란 대의 공신인 회재 박광옥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벽진서원 복설 향사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초헌관 및 제관들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임진왜란 때의 공신인 회재 박광옥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벽진서원 복설 향사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초헌관 및 제관들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회재 박광옥 선생의 벽진서원이 처음 세워지고 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다시 복원되기까지의 기록을 적은 '벽진서원 기적비' 제막식이 7일 벽진서원에서 열렸다.
회재 박광옥 선생의 벽진서원이 처음 세워지고 대원군 때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다시 복원되기까지의 기록을 적은 '벽진서원 기적비' 제막식이 7일 벽진서원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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