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노조 파업의 배후- '가족대책위'
발전노조 파업의 배후- '가족대책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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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복귀하면 내 남편도 아니다...다짐>
<민주당 경선주자, 왜 발전노조 파업 외면하나>


3월 25일 오전 9시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전원 해고하겠다는 최후통첩의 마감시간이 눈앞에 다가온 24일 밤 9시.

50여명의 아줌마들은 두려움속에서 여수 화력발전소로 모여들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계속 가슴을 후비고 지나갔다. '혹시 여기서 끝나버리는 건 아닌가?'

다행히 25일 새벽 2시가 지나도록 복귀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다섯 시간 뒤인 오전 7시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일단 해산했다. 25일 오전 7시 더욱 긴장되고 두려운 모습으로 50여명의 아줌마들이 발전소에 모였다.

일 초 일 초가 무겁게 지나가는 가운데 두 세명의 조합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주변을 서성이다가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윽고 별다른 복귀 조합원이 없이 9시를 넘기는 순간, 아줌마들은 그동안의 긴장이 풀어지는 함성을 질렀고 '우리가 해냈다'는 자신감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비록 한 달이 넘게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싸우는 남편의 모습이 더욱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발전소 파업이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이번 파업은 국가 기간 산업의 해외 매각에 대한 위기감, 가격 폭등-서비스 질 하락 등의 문제에 대해 발전노조 조합원 전원이 깊게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승리하기 전엔 돌아오지 말라", "이번에 복귀하면 내 남편이 아니다"라며 열성적으로 함께 투쟁한 가족대책위도 커다란 힘이 되었다.

현재 여수에는 호남화력과 여수화력소속 조합원 가족 중심으로 약 250명의 가족대책위가 꾸려져 있다. 2명의 공동위원장, 5명의 집행위원, 7명의 운영위원(아파트 동별 책임자)로 조직을 구성하여 선전물 배포, 서명 작업, 각종 집회 참가를 담당하고 있다. 가족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은희씨(33. 여수화력 이희구 위원장 부인)는 "우리들은 더 이상 애들 우유먹이고 설거지만 하던 아줌마가 아니다.

많은 엄마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번 투쟁을 통해 '국민의 정부'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조-중-동 보수언론의 실체도 느끼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에서 조-중-동은 모두 끊었다. 강요하지 않아도 엄마들이 시장가거나 병원갈 때 자발적으로 서명용지 몇 장씩 가져가서 서명을 받아온다"며 아줌마들의 자발적 실천을 자랑했다.

사실 이번 투쟁을 통해 가족대책위 아줌마들은 많은 것을 느꼈다. 서울에서 벌어진 지하철 파업뿐만 아니라 작년 여수지역에서 벌어진 NCC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서도 '밥그릇 싸움'으로만 여겼었는데 직접 당해보면서 그것은 정부와 보수언론에 의해 주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여수가족대책위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고은영씨(37. 이준상 조합원 부인)는 "우리의 투쟁은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장래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놓고 싸우는 것이다. 발전소가 해외로 넘어가면 나머지 국가 기간산업들도 넘어가게 될 것이다. 온 국민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며 "민주당의 국민경선제 과정에서 국가의 중요한 문제인 발전산업 해외매각에 대한 내용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어 국가의 장래를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고 꼬집었다.

지난 25일을 경과하면서 발전노조파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의 최후통첩은 불발로 끝났고 노조는 전원 사직서 제출을 결의하면서 맞서고 있다. 민주노총은 4월 2일 연대총파업을 결의했다.

일부 국회의원을 비롯한 시민, 사회단체들의 중재 노력을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쳤던 정부가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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