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문화, 죽은 문화
산 문화, 죽은 문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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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방학 중 동료교수들과 진도로 세미나를 가게 되었다. 매년 한번 있는 친목도모 성격의 행사라 꼭 참석해야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가보는 진도라 기대도 없지 않았다. 해질 녘에 도착한 숙소 겸 식당은 울돌목 바닷가를 바로 마주한 풍광이 수려한 곳이었다. 다소 쌀쌀하긴 했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마시며 먹는 생선회 맛은 일품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말로만 듣던 진도 소리를 무형문화재 급의 명창들의 소리로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해학이 넘치는 창극 심청전 한 대목은 국악에 무지한 필자에게도 정말 우리 가락의 흥을 유감없이 불러 일으켰다. 우리 소리는 서양식으로 귀족들의 감상용 음악이 아니라 대중들의 애환을 담고 있으면서 청중들과도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참여형’ 문화 양식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우리 일행은 그 이후 이렇다할 놀이 프로그램이 없어 각자 취향대로 이합집산을 하게 되었는데 숙소가 너무 비좁아 일부는 진도 읍내로 나가 1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도 읍내 팀에 합류하여 읍내 문화도 즐길 구상이었다. 밤길을 20여분 차로 이동한 후 먼저 숙소에 짐을 풀려고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예약을 해놓았던 숙소에서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인장 왈, 예약은 했었지만 당일 연락이 안되기에 취소한 걸로 간주, 방을 모두 다른 손님들에게 내주었다고. 그 밤에 10여 명의 동료들은 어딜 가라고. 단체 이름으로 예약한 방을 임의로 취소한데 대해 나름대로 강력한 항의를 해 보았지만 방이 없다는 데 어찌할 것인가? 다시 나와 추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아무런 여관이라도 찾아다니는데 가는 데마다 방이 없다는 것이다. 주말도 아니고 그 날은 월요일이었는데 어째서 읍내 많은 모텔에 방이 없는건지, 간신히 하나 찾아낸 모텔은 공사 중인 모텔이었다. 그나마 방이 있다하여 감지덕지 짐을 풀고 읍내로 나와 봤지만 이미 기분이 잡친 탓일까, 구경할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아 일찍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다시 합류한 우리는 진도 명소 몇 군데를 돌게 되었다. 고려시대 삼별초 군이 성을 쌓은 터가 있다는 모 산성과 소치선생이 만년에 기거했다는 운림산방을 가보았다. 그런데 우선 그 산성의 모습은 너무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저 터와 돌담이 몇십 미터 뻗어 있을 뿐 중장비를 동원하여 한참 새로 쌓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직 정리 안된 시골집들이 여기저기 동거하고 있어 어수선한 모습이었는데 여기다가 과연 ‘거의 새로’ 성을 쌓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운림산방은 이 보다는 조금 나아 보였다. 깨끗하게 정돈된 정원들과 옛 모습을 재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그러나 막상 소치선생의 작품과 유품은 몇 점되지 않았다.

돌아오면서 필자는 우리의 문화관, 문화정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선 모 호텔 사건과 유적지 유감이 아무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일런지 모르나 필자에게는 우리 문화관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보여진다. 관 주도의, 전시위주의 문화정책이 가장 큰 주범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데 우리 민중들도 이젠 자신의 문화적 향유권을 좀 더 적극적으로 주장할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관광으로만 따져도 숙소나 놀이 시설은 엉망으로 해 놓고 억지로 만든 유적지에 돈을 쏟아 부은다고 해서 관광객이 많이 올까? 우리 주위에 가까운 실제적인 삶의 공간들은 소홀히 하고 겨우 흔적이 남아 있을까 말까한 유적지를 부활시키는 것이 ‘문화’를 보존, 창달하는 길일까?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화’는 ‘죽은’ 문화, ‘박물관’ 문화이다. 물론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이 가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문화는 유구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축적된 문화이지 단기간 내에 조작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 중요한 것은 그저 구경하는 문화보다는 우리 옆에 살아 있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J군의 홍길동 축제나 G군의 심청 축제는 바로 관이 억지로 만들어 낸, 문화를 꼭 과거에서 퍼와야 한다는 잘못된 문화관이 빚은 웃지 못할 문화정책의 표본이다.

반면 ‘진도 소리’는 충분히 보편적으로 향유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지닌 문화라고 보인다. 이런 훌륭한 문화들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설령 없다하면 새로운 문화 창조라는 입장에서 지금부터라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함평군의 나비문화축제는 비교적 성공한 사례로 듣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누구나 생활 속에서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문화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들 삶 속에서 살아 숨쉬지 않는 화석화된 문화는 우리들을 위한 문화가 아니라 죽은 자들을 위한 문화이며, 바로 그 때문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의 본질에서 이탈한 것이다. 우리의 삶이 문화적이 아니면 문화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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