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론]'멈춤'의 의미
[문화칼론]'멈춤'의 의미
  • 김하림
  • 승인 2002.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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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 pause, 止'를 주제로 하는 제 4회 광주비엔날레의 개막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준비하는 측이야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겠지만, 일부에서는 비엔날레에 대한 분위기가 '뜨지' 않는다고 걱정하기도 하고, 관심이 옅어졌다고 근심하기도 한다.

추측컨대 그 동안 비엔날레를 지켜보았지만, 나하고는 별 상관없다는 사람도 제법 있을 것이고, '행사'로서의 비엔날레에 관심이 없는 층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번에는 별다른 잡음이 없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용히 개막일을 기다리는 이도 많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예전에 비해 비엔날레 분위기가 '뜨지' 않는 듯 하다.

그러나 21세기 초두에 광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는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비엔날레 자체가 극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정신과 행위의 표출인 만큼, 어떤 면에서는 한 시대를 앞서가는 방향과 지혜를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세기가 어떤 이의 표현대로 '문명과 야만'의 대립이었다는 점을 되새긴다면, 이제 21세기는 야만보다는 문명이 개화하는 시대가 되기를 모두가 기원할 것이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도 20세기는 식민지시대, 좌우대립, 남북분단이라는 20세기의 야만적 요소가 가장 극렬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에, 더욱 열렬히 '문명'이 꽃피는 21세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작년의 9.11 테러사건이나, 최근 부시를 위시한 미국 공화당정부의 '악의 축' 발언 등은 '문명'보다는 '야만과 폭력'에 의한 세계 질서 구축을 기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명의 축'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이런 점에서 4회 비엔날레의 '멈춤'은 주목할 만한 주제이다. 한자에서 '멈출 지(止)' 자는 원래 발목에서 발까지의 모습을 본딴 글자로, 가던 걸음을 멈추다는 의미이다. 사족을 붙이면 '걸음 보(步)나 달릴 주(走)'도 모두 '인간의 발'에서 연유한 글자들이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인간은 무엇을 할까? 아니면 왜 가던 발걸음을 멈출까? 물론 피곤한 몸을 쉬려고 하기도 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서 일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이 올바른가, 앞으로 나갈 방향은 맞는 것인가,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를 생각하기 위해서 멈추는 것이다.

인간은 사고보다는 행동에 의해서 오늘까지 진화해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행동-사고-행동'의 반복은 곧 '걷기-멈추기-걷기'의 반복임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멈춤'은 소극적이거나 도피적인 행위가 아니라, '성찰적 반성적 사유'의 출발이자 적극적 도전적인 행위인 것이다.

20세기는 '문명'의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에 대한 대량 살육, 민족 간의 갈등, 이념간의 갈등이 지속된 과속(過速)의 시대였다. 이 과속의 시대가 과연 21세기에도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멈춤'은 되돌아보도록 하는 것이고, 21세기 초두에 광주에서 이런 주제를 제시한 것은 지역이나 민족을 넘어서서 인류와 세계에 대해 하나의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4회 비엔날레가 지니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고 보여진다. 물론 그 실제적 내용이 어떠냐에 따라 '반응과 반향'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전북 부안을 가다보면 어느 길모퉁이엔가 '속도를 늦추면 아름다움이 보입니다'라는 팻말이 서있다. 경찰서장의 명의로 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과속' 차량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일차적 인 듯 하나,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이 말을 되새길수록 더 깊어진다. 앞차만 보고 달리든지, 앞차를 추월하고자 달려왔던 '속도'의 시대에 '아름다움'은 사치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속도가 이제는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에는 '늦추기'보다는 '멈추기'가 훨씬 필요한 행위이다. 원시 한자인 갑골문에서는 '아름다움(美)'과 '착함(善)'이 매우 유사한 의미를 지닌 글자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다시 사족으로 덧붙인다.

/김하림[광주전남문화연대 대표, 조선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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