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컴퓨터그래픽, 하지만 산만하고 헐렁한 이유는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하지만 산만하고 헐렁한 이유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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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반지의 제왕>

거푸 공상영화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해리포터]가 순 어린이용 공상영화라면, [반지제왕]은 어른용 공상영화이다. 어떤 어른이 아무리 '환상의 나라'를 즐긴다 하더라도, 어린이처럼 그저 막연한 공상을 펼치는 철부지는 아니다. 어린이용 공상영화야 순 환상적 상상력만으로도 괜찮겠지만, 어른용 공상영화는 환상적 상상력에 현실적 리얼함이 살아나야 한다. 그럴려면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탄탄해야 한다. 단순한 환상이 아니니, 등장인물들의 성격묘사도 있어주어야 하고 그에 따라 대사도 다듬어야 하며, 인물과 사건사이에 단단한 짜임새가 있어서, 스토리 전개에 어처구니없는 빵구나 비약이 있어선 안 된다. 게다가 액션이 탄탄하고 스토리 전개에 군살을 빼고 긴박감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간결하고 굵직한 맛이 있어야 한다.

[반지제왕]은 공상에 중심줄기가 산만하게 흩어져 굵직한 맛을 잃어버리고 자질구레한 잔재주와 잔가지가 무성하다. 게다가 그 잔재주와 잔가지에 힘이 잔뜩 들어가, 스토리가 늘어지고 캐릭터가 산만해져 버린다. 캐릭터의 성격묘사도 무성의하고 도식적이다. 그래서 어른용 공상영화로는 전반적으로 어수선하고 유치해 보인다. 우리편 마법사와 활쟁이가 제법 눈에 들어오지만,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매력 포인트가 없고 연기도 평범하다. 영화의 초점인 반지가 너무 왜소하고 초라하여, 이 거창한 설화를 감당하기엔 격이 뚝 떨어진다.

무엇보다 불만인 것은 그런 정도의 영화를 무려 3시간 가깝게 끌고 간다는 점이다. [무사]가 30여분을 질질거리더니, 이 영화는 산만하게 흩어지려고 작정이나 한 듯이 무려 1시간 정도나 스토리가 길을 잃고 헤맨다. 들리는 말로는 1년을 단위로 2편 3편 4편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를 이렇게 만들면, 3편 4편을 냅두고 눈앞의 2편이 깜깜하다. 그 한 편마다 하나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대부]나 [007]을 보라! 그 하나로서 완성도가 있지 않은가! 이 영화는 전혀 그렇질 못했다. 흥행을 이미 자만하고 만든 모양이다. 우스꽝스런 자만이다.

[글라디에이터]의 웅장함과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담이 함께 있다고 하였다. 그런 점이 좀 있다. 첫 장면의 전투장면 지하동굴의 떼거리 괴물들. 거대한 마법사 성과 커다란 석상들. 독특하고 삼빡한 불꽃놀이. 문어괴물 불괴물 그리고 위기일발의 지하다리 탈출. [다이너소어]나 [화이널 환다지]에서 이미 절절하게 느꼈지만, 컴퓨터 그래픽의 위력은 참으로 엄청나다. 압도하는 스펙타클도 있고 빠짝 조이는 긴장도 있다. 그런데 그게 속도감과 긴박감이 들도록 이어지지 못하고, 넓은 운동장에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따로 따로 떨어져 있다. 3시간이나 이런 저런 눈요기가 있으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보검이라도, 주인을 따라 악검이 되고 명검이 된다. 아무리 컴퓨터 그래픽의 위력이 엄청나더라도, 컴퓨터 그래픽이 없었거나 지금처럼 엄청난 위력을 갖지 못한 채 만들어진 [스타워즈] [레이더즈] [쥬라기공원1]에 [반지제왕]은 '새발의 피'이다. [레이더즈] [스타워즈] [쥬라기공원1]의 잔바리 새끼들인, [인디아나 존스] [스타워즈 에피소드] [쥬라기공원2] [쥬라기공원3]보다도 상당히 못하다.

모든 일이 돈하고 재주가 만나서 일어서지만, 돈이나 재주만으론 길이 간직할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 그 나름의 혼이 알알이 배어들어야 쓰레기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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