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맞은 광주-애증·딜레마·자유...
김대중 대통령 맞은 광주-애증·딜레마·자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광주에 왔다. 대통령 취임이후 다섯번째다.

13일 김 대통령을 맞은 광주시민들의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애증, 딜레마, 자유 등 김 대통령과 지역민들과의 복잡한 관계를 연상하며 하루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기대에 너무 못미치고 있다
그러나 남은 기간이라도 잘하라

정권교체 초심으로 돌아가 민심수습
'성공한 대통령' '지역책임패러다임'을


대통령 방문에 맞춰 전례없이 600명의 지역사회 인사들이 서명한 시국선언이 발표됐고 일부에서는 시위를 계획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아예 관심도 갖지 않는다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 애증


"기분 좋은 자리가 돼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김 대통령의 광주방문에 맞춰 13일 오전 광주YMCA 무진관에서 열린 시국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은 정찬용 광주YMCA 사무총장이 회견을 마치며 한 말이다.

실제 이날 분위기는 대체로 무거웠다. 국민의 정부 '안방'이라는 광주에서 600명의 지역사회 노·장·청년층이 함께 전례없이 DJ를 비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회견은 DJ에 대한 '애증'이 집약된 자리이기도 했다. 선거때마다 등장했던 '미워도 다시한번'이 되풀이 되는 듯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성명서를 낭독한 강신석 목사는 기자와의 일문일답에서 "우리는 DJ를 신뢰한다. 재야시절 탁월한 경륜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그리고 지적능력 등 모든 것을 신뢰했기에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98%의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김 대통령은 우리 기대에 너무 못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이어 "그럼에도 아직 남은 1년반의 임기동안 김 대통령이 우리가 신뢰했던 만큼 강고한 의지로 개혁을 실천해 달라는 애정어린 호소이며 요구"라고 이날 회견배경을 설명했다.

문병란 조선대 명예교수는 한발 더 나아갔다. 문 교수는 "우리는 그분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라면서도 "앞으로 지켜본 뒤에 (우리의 요구에 대해)아무런 반응이 없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혼란만 거듭하면 또다시 나설 것"이라고 밝힌 것.

■ 딜레마


"다른 지역이나 야당에서 악용할 소지가 있고 이심전심으로 알아들을 것으로 알고…"

문병란 교수는 이날 성명이 과연 밑바닥 민심을 가감없이 반영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DJ에 대한 호남의 '딜레마'가 여전하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사실 호남에서 DJ비판은 딜레마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옷로비의혹, 파업유도의혹, 3.30재보선 선거자금 과다사용 의혹 등이 터져나오면서 DJ정부의 위기론이 확산됐고 서울과 영남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DJ의 각성을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서명운동이 한창일 때도 그랬다.

국민의 정부가 더 큰 화를 범하기 전에, 특히 대선전에 DJ에 대한 지지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누구보다 원칙적인 비판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는 취지로 드디어 광주에서도 지난해 6월16일 영호남 32개 시민사회단체의 시국성명이 발표됐다.

그러나 이 성명이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뒤따랐다. 국민의 정부 '심장부'에서 DJ를 '나무 위에 올려놓고 흔들어서는 안된다'며 성명발표를 반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 심지어 당시 성명에는 마지못해 참석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았던터라 '몸따로 마음따로 노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불평을 털어놓는 젊은 실무자도 있었다.

그만큼 호남에서의 DJ비판은 뜨겁다는 것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문 교수의 발언이 그 반증이다.

사실 이번 성명이 나오기까지도 적지 않은 내부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성명을 제안했던 실무자들은 중단없는 개혁, 민주당 쇄신과 함께 지역현안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과 대안제시는 물론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치와 분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 마련 등을 주요 골자로 보다 분명하고 강력한 요구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8일 김 대통령의 전격적인 민주당 총재직 사퇴로 인해 김이 빠졌고 그 연장선에서 이제 DJ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분위기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여전히 DJ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갖고 있는 일부 인사들과의 논란을 미연에 막자는 차원에서 수위를 낮췄다는 것이다.

반면 밑바닥 민심은 대통령에 대한 이같은 '배려'와는 꼭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광주를 방문한 김 대통령에 대해 예전처럼 시민들의 따뜻함이 드러나지 않은 것. 실제로 취임이후 4차례 광주를 방문한 김 대통령에게 시민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연도에 나와 박수를 보내기도 했으나 올해는 좀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13일 오전 지역인사들과 김 대통령의 오찬이 진행됐던 무등파크호텔을 지나 산행길에 나서던 박모씨(75·남구 방림동)는 "대통령 방문이 금시초문"이라면서도 "뭐하러 왔데요. 임기나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씨는 또 "개혁을 할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랬다 저랬다 하니까 민심을 잃은 것 아니겠냐"며 "호남사람들은 김 대통령을 그렇게 믿었는데 그만큼 못해주니 자존심이 상한 것"이라고 나름대로 민심이반 배경도 분석했다.

■ 자유


이제 DJ와 호남의 관계는?

정권교체직후부터 지역사회에 그럴듯하게 나돌 듯 '광주로부터의 DJ의 자유', 'DJ로부터의 광주의 자유'는 성공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8일 김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로 이 '자유론'이 다시한번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13일 기자회견은 여전히 '자유론'이 성공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호남과 DJ가 여전히 과거 정권교체를 위한 '운명공동체'적 관계임을 이심전심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정서가 아직도 남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무슨 실익이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자유론'의 핵심은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나아가 호남인들도 실익을 찾자는 의미도 있었다. 바로 '자유론'의 의미가 정치적으로는 DJ가 호남인들을 더 이상 선거의 '볼모'(텃밭)로 인식하지 않고 호남인들도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에 매달리지 말 것, 경제적으로는 DJ는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고 호남인들은 '지역책임패러다임'<시민의 소리 3월9일자>에 입각해 스스로 비전을 제시하고 지역발전을 이룩할 것 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호남의 현실은 어떤가. '자유'는 여전히 진행형인가.

취임후 다섯 번째로 광주·전남을 방문하는 대통령과 이를 맞이하는 지역민들에게 던져진 질문이 아닐까.


## 이어진 기사-지역인사 600명 시국선언 기자회견


중단없는 개혁 자치와 분권 실현
도청문제 결단 광주지하철 지원


13일 오전 김대중 대통령의 광주방문에 맞춰 이뤄진 시국기자회견은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단체 30∼40대 실무자들이 대통령 방문에 맞춰 현시국과 지역여론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을 제안하자 시민사회단체 지도층인 50∼60대가 수용하면서 나왔다.

이에따라 이날 회견문에는 강신석 목사, 문병란 교수, 이광우 5·18재단 이사장, 조비오 신부, 김용채 광주시민사회단체협의회 상임대표, 김영집 참여자치연구소장, 김현성 겨레사랑청년회장 등 600여명이 서명에 참여, 광주·전남지역 노·장·청년층이 한목소리를 냈다.

이날 회견에서 참여자들은 우선 "국민의 정부 출범은 더없이 큰 감격과 기쁨이었으며 IMF극복과 6.15남북정상회담 성사는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김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오늘의 현실은 국가위기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 원인으로는 개혁정책의 일관성 부족과 민주적 국정운영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며 무엇보다 정권교체를 열망했던 민주개혁세력을 밑으로부터 결집하지 못해 국민의 기대가 좌절된 까닭을 들었다.

이들은 이어 국정과제로 ▲ 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 정치개혁과 자치·분권 실현 ▲ 재벌개혁과 민생안정 ▲ 언론개혁 ▲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 등을 제시했고 지역현안으로 ▲ 도청이전과 관련 광주전남 공동발전과 주민갈등 해소차원의 대통령 결단 ▲ 쌀값문제에 대한 정부의 획기적 대책마련 ▲ 광주도심지하철로 인한 광주시 재정파탄 대책마련 등을 촉구했다.

또 시국선언 참가자들은 "국민의 정부가 때를 놓치고 실정을 거듭해 민심이 이반하는 현실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며 "김 대통령이 여야 모두의 정파적 이해를 초월해

오직 국정개혁만을 화두로 삼아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정부로 탈바꿈하라"고 주장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