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무등산<상>-이제 아무도 오르지 못하리라?!
17.무등산<상>-이제 아무도 오르지 못하리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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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과 80년 5월.

무등산 자락 지금의 충효동(성안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며 문무를 익혔던 김덕령 장군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끝내 뜻을 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전쟁의 와중에도 당파대립과정에서 모함에 의해 감옥에서 옥사하니 그때 나이 29세였다.

구국의 일념으로 의병을 일으켰으나 제대로 뜻을 펴지도 못하고 꺾인 김덕령의 억울함과 한은 민주주의를 위해 떨쳐 일어섰으나 총칼 앞에 무릎을 꿀어야했던 80년과 그 어떤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김덕령 의병장이 감옥에서 읆었다는 시조 '춘산에 붙은 불'(春山火然之曲)의 피를 토하는 억울한 심정이 더욱 절절히 전해진다.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핀 꽃 다 불붙는다/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이 몸이 내 없는 불 일어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무등산은 이 한을 품고 있다. 무등산을 말할 때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무등산의 돌이며, 봉우리 곳곳에 그의 전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의병장 김덕령의 좌절된 구구일념이,
군사독재 총검 맞선 시민들의 한이,
고스란히 네 안에 녹아 있으니
너는 긴세월 묻은 역사의 덩어리

너와 함께 무등세상, 평등세상 꿈꾼다


80년도 마찬가지다. 그날도 그렇고, 그날이후에도 무등산을 향해 울부짇고 무등산을 향해 다짐했던 것이 그것이다.


"이제 아무도 오르지 못하리라/이미 저 산은 피가 묻어 있으므로/그 피를 하늘에 바친 靈性의 바람이 불고/이미 지상의 혁명을 완성한 사람들이 더 먼저 올라가/接神을 끝내고 고요한 적막에 꽃燈을 환하게 켜고 걷고/있으므로, 이제 참으로 아무도 오르지 못하리라/엎드려 돼지와 牛馬, 羊과 人畜을 宇宙天空에 바치어도/이미 우리들을 떠나 노래가 돼버린, 이미 地球 밖으로/날아가버린, 그날 저 완벽한 예술의 절정…無等山을/오늘도 혹은 내일도 아아 고름이 질질 흐르는/이 버틀거리는 腐敗한 몸뚱이로는"


80년 그날이후 새들도 숨을 죽이고 있던 그때,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로 시작하는 시를 발표했던 시인 김준태의 또다른 시 '무등산'이다.

그렇다. 무등산은 아무도 함부로 오르지 못할 산이다.


"무등산은 하늘을 향하는 산이 아니라 땅을 거두는 산이었습니다. 자신을 하늘에 높이 솟구쳐 올리는 산이 아니라 기쁨도 아픔도 모두 안으로 간직하는 산이었습니다. 스스로 대지가 됨으로써 아픈 역사를 그윽히 안고 있는 산이었습니다.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을 타고 걸어오다 잠시 멈추어 너른 벌판을 만들어놓고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 산이 무등산입니다. 삼한에서부터 백제, 후백제 그리고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그 긴 세월의 우여곡절속에서 모든 좌절한 사람들의 한을 갈무리하고 있는 역사의 덩어리였습니다. 과연 무등산 자락에는 곳곳에 사림의 고고한 뜻이 묻혀 있고 우국지사의 울분이 묻혀 있는가하면 유랑의 시인이 한많은 그의 생을 이곳에서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한이 한으로 응어리져 있지 않고 어느 것이나 빛나는 예술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적 정화는 역사의 격동기에 인내천의 평등사상으로, 식민지의 해방사상으로 그리고 군사독재의 총검에 맞서는 민주의 실체가 되어 역사무대의 한복판으로 걸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무등산의 너른 품이고 무등산의 무게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잘 알려진 신영복 교수(성공회대)가 지난 96년 7월 무등산에서 띄우는 편지다. 편지에서 신 교수는 무등산에 묻힌 역사를 읽을 것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무등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무등산의 메시지라고 적고 있다.

그것은 바로 무등(無等)세상, 평등세상이다.



■이어진 기사-무등산보호운동 앞장 박선홍씨

"광주 지켜주는 산 우리도 섬겨야죠"


"무등산은 광주시민의 신앙이다"

평생을 무등산보호운동에 앞장서온 박선홍씨(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이사장)는 "무등산은 광주를 지키는 산이며 광주사람들은 무등산을 섬기며 살아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광주토박이로 광주상공회의소 재건에 참여하여 40여년간 일해왔고 지역최초의 산악회를 창립멤버로 무등산보호운동을 펼쳐온 그는 또 "광주사람들은 해뜨면 무등산을 쳐다보고 또 해지면 저녁노을이 낀 무등산을 쳐다보며 하루종일 무등산과 함께 살고 있다"며 "광주와 무등산을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무등산 사랑은 지난 76년 무등산의 유래와 전설, 경관 등을 한데 묶어 책으로 펴낸 '무등산'에서부터 무보협과 무등산공유화재단 등 각종 무등산보호운동에 앞장선데서도 확인된다.

그래서 박 이사장은 "우리가 이만큼 했으니까 그만 손대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요새 장비가 좋아지고 외자유치니 하면서 무등산을 이용하려고만 하는데 그동안 우리가 (물려받은 무등산을)많이 망가뜨렸으므로 후손들에게는 이나마라도 물려주자"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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