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님에게 드리고픈 편지
평론가님에게 드리고픈 편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젠가 모 도시의 영화제에 가서 입장을 기다리다가 반가운 선배를 만났다. 80년대 열열한 사회주의자였고 최근 만화광이 되신 선배와 나는 인사말도 못나눈 채 헤어졌다. 그 선배는 '패스'를 목에 걸고 기자와 평론가들만을 위한 다른 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줄은 우리 줄만큼이나 길었다.) 서로 무안히 헤어지며 나는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행위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놀랐다.

진부한 이분법이지만 세상에는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가 있다. 하루에 몇억씩 벌고 있다는 조폭영화를 제작한 어느 개그맨에게 '진보적'영화평론가께서는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그 개그맨의 대답은 많은 관객이 선택한 영화가 좋은 영화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여러분, 나는 지금 개그콘서트 재방송중이다. 웃어라!

아직 표정관리를 결정짓지 못한 독자분들을 위해 한마디 하겠다.
도대체 우리나라 영화판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진보를 표방하는 일간지에서조차 이런 시답지 않는 농담을 당당히 주고받고, 매주 주말 영화를 '팝콘' 취급하는 영화소개 프로그램으로 다이제스트 영화를 즐기며 극장은 이를 확인하는 곳일 뿐인 판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평론가라는 한무리의 직업군이 '대접받는' 판 말이다.

나는 영화가 장사로써만 평가받는 판을 그대로 두고 자신만 예술가인척 하는 평론가를 용납할 수 없다. 그중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소위 '20자평'이다. 도대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20자로만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어떻게 사랑을 버리고 그리도 쉽게 미움을 선택했을까 궁금해진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 중엔 글쓴이의 미움에 납득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감독을 잃었다. 아직도 가끔 패러디 당하는 '헝그리정신'의 창시자이자, 내가 한국 상업영화판에서는 나올 수 없는 걸작이라고 믿고 있는 '세기말'의 송능한 감독 말이다. 그는 '말'에 상처받고 추운나라 캐나다로 한국을 떠났다.

우리가 함께 해야할 책임에 대해 영리한 장사꾼과 언론과 철없는 젊은 것들과 조폭들에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나 영화판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평론가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구별하지 않고 '한국영화'에 대해 보여주었던 태도를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이 '개'판에는 그들의 일조가 컸다.

영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듯이 영화평론도 사회에(직접적으로 영화에) 영향을 미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나는 그들이 엉뚱한 장사꾼에게 묻듯 그들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행위가 미칠 사회적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묻기를 바란다.

추신 : 이 엉뚱한 편지를 읽는 독자님들이 모 평론가를 모욕하기 위한 글로 읽는다 해도 용서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