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지리산자락 두레네 집에서 음악회가 열려요
27일 지리산자락 두레네 집에서 음악회가 열려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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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의 일이다. 비온 후 쌀쌀한 오후였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 웬 작은 아기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듯, 너무 어린 고양이였는데 왜 이곳에서 울고 있을까. 길을 잃을리는 없어 보였다. 아마도 누군가 못 키우고 버린 것 같다는 청소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녀석을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일단은 몸을 녹이고 배를 채워야 할 것 같아 따뜻하게 덥힌 우유를 주니 녀석이 그릇 밑바닥까지 핧아먹는다. 배고프고 추웠던 것이다.

그렇게 우유를 먹고 있는 아기 고양이를 보니 섬진강가 작은 학교에서 강아지들과 살고 있는 두레네가 생각난다. 얼마 전, 그곳을 갔을 때 두레엄마도 강아지에게 이렇게 우유를 먹이고 있었지.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는 나는, 그렇게 강아지들과 잘 살고 있는 한 가족을 생각하며 이 고양이를 어찌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구례 작은학교에 집 만들어 사는 네식구
생태학교 만들어 장애 아픔 나누고파


지리산 자락에 붙은 섬진강 변의 작은 학교.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어린학생들이 공부했을 이 곳에 지금은 한 가족이 살고 있다. 그 구성원은 안윤근(41), 박윤주(41)부부와 두레(12), 이레(10) 남매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0여 년 전까지는 서울에서 출판업에 종사했던 안윤근님과 박윤주님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도시사람'이다.

출판업에 종사하던 시기, 안윤근님의 몸과 마음은 극도로 쇠약해졌단다. 집에 돌아오면 말도 못 붙일 정도로 피곤에 절어 지쳐있는 남편을 보며 도시의 경쟁시스템과 성장일변도에서 뛰쳐나오고자 함이었을까. 서울을 탈출해 93년부터 경기도의 한 기독교공동체에서 생활했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 믿음으로 6년간 꼬빡 공동체생활을 한 후, 지난해 여름 지금 살고 있는 구례로 들어왔다. 연고가 있는것도 지리산에 특별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귀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태체험학교를 가지고 싶었고 그 일에 적합한 학교를 찾다가 구례 토지면 송정분교를 만났다.

지금 12살인 두레는 만 세살 때 자폐아 판정을 받았다. 두레를 키우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 가족의 아픔을 나누고 싶어서일까. 이곳 학교에서 장애아와 함께 할 수 있는 생태체험학교를 가지고 싶어한다. 이 사회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와 가족은 힘들다. 그 힘겨움을 함께 나누고 발산할 수 있는 공간. 내년 봄부터는 그런 자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자리가 잡혔다. 어떤 프로그램을 할 것인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늘상 생각하는 것이다.

장애인 두레를 돌보아주는 담임선생님,
봄이면 매실, 가을이면 밤, 겨울엔 산수유
무엇이든 풍부한 지리산에 감사하고
세상 모든 것에 감사, 감사하며 살아요


지리산 자락에 있는 이 곳은 무엇이든 풍부하다. 봄이면 메실, 가을이면 밤, 겨울에는 산수유을 딸 수 있는, 나무며 새며 온갖 식물과 동물이 함께 하는 지리산 자락. 모든 것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일부러 만들고 계획하지 않아도 그냥 그 속에 안기면 된다. 바로 그것이 체험이고 놀이이다.

작년 여름, 두레네가 이곳에 처음 들어올 때 마을사람들은 의아해했단다. 이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식을 서울로 보낸다. '자제분들은 어디에 계세요?'하면 '서울에 있지'하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어른들이다. 그런데 그 서울에 살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내려왔다니 참 이상한 모양이다. 그래서 두레엄마는 아예 '이곳 사람들이 다 서울에 가니 서울 사람이 이곳을 지키러 왔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방인의 출연이 이상한 듯 대하던 어른들도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들의 삶을 인정하며 이것저것 함께 하자고 말한단다. 올 가을에는 밤을 따러 마을사람들과 같이 산을 뒤지고 다녔다.

두레엄마 박윤주님은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산다. 감사할 것이 너무도 많아 그럴 수밖에 없다며... 장애를 가지고 있는 두레를 잘 돌보아주는 담임선생님의 이야기를 만날때마다 한다.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이 되었음에도 두레를 돌보기 위해 토지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을 연장했단다. 한동안 멀리 두었던 특수교육도 다시 공부하며 두레를 잘 보살핀다며 너무도 감사한다고 말한다.

또 감사하는 사람은 지리산 포탈 사이트(www.ofof.net) 운영자 오용민님. 두레네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사이트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게 된 두레아빠가 이 사이트에 몇번 글을 올렸다. 글을 본 운영자가 어느 날 그 홈페이지에 두레네 집이라는 란을 만들고 싶다는 제의를 해왔고 안윤근님은 고마워하며 승낙했다.

이 사이트를 통해 두레네 집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하고 민박형태로 운영하는 쉼터의 예약을 받는다. 얼굴한번 본적도 없는 오용민님이 두레엄마는 너무도 고맙다. 이 사이트를 통해 알려진 두레네 집은 웹진과 방송을 통해 소개되었다. 구례뿐 아니라 전라도와 연고가 없던 두레가족은 이런 매체를 통해서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번은 광주의 한의사가 방송에 나온 두레를 보고 두레의 장애를 고쳐주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 직접 찾아와서 맥을 짚어보고 난 후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를 물었단다. 그 후로 약을 보내준다. 한달 분을 다 먹을 때 즈음, 다음달 분을 또 보내주었다. 너무도 감사한다. 그 정성과 마음씀씀이에 박윤주님은 감사한다는 말을 할 뿐이다. 차 보급 운동과 음악회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박성일님과의 인연도 참 아름답다. 첼로소리를 좋아한다는 두레엄마의 말에 박성일님은 아예 음악회를 하자는 뜻밖의 제의를 해왔다.

그냥 운동장 한켠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 놀았으면 좋겠다고 하던 그 꿈이 음악회라고 하는 형태를 갖추어 준비되기에 이른 것이다. '동서가 만나는 지리산 음악회'라는 이름으로 이번 토요일(27일)에 두레네 집에서 이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감사할 일과 사람은 이곳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같은 여성이어선지 나는 박윤주님에게 관심이 많이 간다. 결혼을 해서 새 인생을 살면서 참 많은 인생의 고비가 있었을 터. 절망하고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을텐데. 신앙의 힘도 있었겠지만 '가족'이라는 절대 놓을 수 없는 그것이 그를 붙잡고 있었으리라. 부모에게 자식이라는 의미는 그렇다. 어떤 경우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그렇게 지켜오고 세워온 가족을 내 가족, 내 자식으로만 국한 짓지 않고 다른 가족, 다른 자식으로 넓히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자칫 생태적, 대안적 삶이 자기 만족으로 머물러 버릴 수도 있지 않은가.

박윤주님은 그 환한 웃음처럼 세상을 밝게 비춰준다. 장애가 있든 없든 모두가 더불어 하나되는 세상을 꿈꾸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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