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치 만난 천정배 ‘메기론’
가물치 만난 천정배 ‘메기론’
  • 박호재 주필/부사장
  • 승인 2015.12.2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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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정국이 ‘安 뜨고 千 멈칫’ 쪽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내달 말 창당을 예고한 천 의원의 처지가 곤혹스러워졌다. 탈당 일성으로 역시 음력 설 전 창당을 선언한 안 의원의 세력화 기세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솔직한 면이 있는 사람인 터라 당혹해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물론 천 의원도 安의 탈당을 예감은 했을 것이다. 영입 의사를 밝히며 安의 탈당을 자신의 정치 확장의 기회로 삼으려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安과 나란히 야권 재편의 쌍봉으로 서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시나리오가 흐트러졌다. 탈당한 안 의원이 신당 창당까지 치고 나갈 줄은 예상 밖이었던 듯싶다.

호남권의 여론조차 安에게 기울고 있으니 더욱 난감한 상황이다. 현역의원들의 합류 움직임도 심상찮다. 자신이 품었던 꿈이 남의 터 밭에서 영글고 있는 셈이다.

천 의원은 지금 ‘정치는 생물이다’는 DJ의 경구를 새삼 새기고 있는지 모른다. 뉴 DJ의 깃발을 들었지만 정작 DJ의 정치 병법을 놓친 형국이 됐다. 현재로선 내년 총선에 30명 이상의 뉴 DJ를 내세우겠다는 기병지의 포부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자신이 두었던 바둑을 이제 복기를 해봐야 할 시간이 됐다는 얘기다.

천은 우선 정치 시간표를 잘못 짰다. 정치 에너지가 충만한 시기에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세력을 즐겼다. 동력을 만들어 준 유권자의 표심이 정권교체라는 대의에 있음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천 의원의 행보는 새민련 너머에 있어야 했다. 문 대표와의 대척도 정권교체를 위한 강한 추동과 맞물려있을 때 의미를 지닌 정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천 의원은 새민련 대안세력의 수장으로서의 존재감만 과시했다.

정권교체를 외쳤지만, 집권을 위한 도모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았다. 차별화된 혁신 도그마에 갇혀 지나치게 사람을 가렸다. 진보의 길을 택한 정동영 조차 그의 혁신노선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물며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적 동행에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하는 모습이 너무 빈번했다. 하지만 평범한 유권자들의 눈엔 그들 모두가 정권교체의 길목에서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제 사람들은 천정배가 뜻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정치는 토목공사의 터파기와 비슷해 보인다. 깊게 파려면 우선 넓게 파야 한다. 성급한 마음에 비좁게 파들어 가다 보면 측벽이 무너져 갇히거나 헛수고가 되기 십상이다. 그동안 천의원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홀로 비좁은 땅을 파들어 간 느낌이다. 이제 그 비좁은 갱도의 외연에서 안철수 발 정치공사의 진동이 격해지고 있으니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서구 을 재보선 출마의 명분이었던 千의 ‘메기론’이 떠오른다. 무력한 새민련을 긴장시켜 수권세력을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야당을 혼내주겠다는 메기론은 시간이 지나며 신당 창당으로 확장됐다. 금붕어를 겁주는 역할을 끝내고 어항을 뛰쳐나갈 순간이 된 것이다. 한데 어항 밖에서 살아가야 할 수조가 미처 마련되지 못했다. 어항이 아닌 수조는 규모가 있기에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 일을 혼자 하려다 보니 공기를 맞출 수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수조가 완성돼도 안철수라는 가물치까지 한 수조에서 살아가야 할 판이다.

출병의 명분이었던 천정배의 메기론이 향후 정국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갈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필자는 그의 성공을 빈다. 역할에 대한 기대도 크다. 어떻든 그는 여전히 호남정치의 특급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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