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길 신호등’ 글방을 열면서
‘큰길 신호등’ 글방을 열면서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5.12.03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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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산(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다. 영욕이 교차한 일생이었지만 언론은 그에게 민주주의는 가치와 신념을 넘어 목숨과 같은 의미였다고 평가하였다.

박정희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전두환정권에 맞섰다고 그의 일생을 회고하였다. 그의 민주화에 대한 신념은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로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또한 그가 즐겨 썼던 ‘대도무문’이라는 휘호로 그의 호연지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거산 김영삼 대통령. 문 없는 큰 길을 마음껏 산책하고 내달리는 큰 산 같은 사내의 호연지기는 홍진에 찌들린 졸장부들의 가슴마져 후련하게 만들어, 남다른 그의 인품에 감동하여 그와의 만남을 영광으로 기억하기도 하였다.

그분은 속세를 훌훌 털고 가셨지만 남은 우리들은 안타까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살 수 밖에 없음에 전율하는 요즘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악법 강행은 새누리당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이 조성한 평지풍파이다.

당신들이 끔찍하게 애용하는 민생을 위해서 평지풍파의 망동은 그쳐야 한다. 어느 유수한 평론가가 지적하다싶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은 “현 역사교과서는 우리 현대사를 정의롭지 못한 역사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단정, “자기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쑤 밖에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당신은 역사를 어떻게 잘 배웠는지 되묻고 싶음을 참으면서 이 땅의 대부분의 역사학자와 역사학도들이 국정화에 반대하는 그 진정성을 성찰할 것을 바란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은 헌법파괴적 폭거이다. 우리의 헌법정신인 자유민주주의는 사상과 양심을 기본으로 하면서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역사는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 온고이 지신하는 출발점인데, 특정 정치세력이 국가권력을 점유한 기회를 틈타서 국정화라는 방법을 통해 역사를 전유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국가의 미래까지도 장악하겠다는 망발이다. 역사를, 역사해석을 막창길로 내몰려는 배짱은 파시스트나 신정정치를 꿈꾸는 자들의 폭거이다. 역사 국정화는 역사에 대한 특정인의 편견을 국가권력의 강제력을 동원해 온 국민에게 주입시키려는 시도라는 지적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즐겨 사용한 대도무문은 왜소해지기 쉬운 시정인들의 호연지기를 고무해서 당당하고 불굴하는 시민을 기대하지만, 권력의 무한질주에 집착하는 대권무문은 우리의 헌법정신인 민주주의를 가릴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위업을 훼손하여 통일을 달성하고 선진화를 이룩해야 할 한국인들의 대동단결을 그 기저에서 파괴하는 폭거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 지도자의 독선과 불통 때문에 나라의 미래가 전도되고 민생이 유린되며 반목과 질시가 만연되어서는 안된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기만적 강변을 통해 독재적 국가권력을 통해 민주공화국의 역주행에 성공할 뻔 했던 유신의 달콤한 추억에 젖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모두에게 강제할 수 없는 것은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지위에 오래 있다 보면, 권력이 일시적으로 위임 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 있는데 은퇴의 절차가 없는 독재자들의 말로가 웅변한다 할 것이다. 이제 우리들에게 정치적 비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제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정신이 온전해야 하고 국민이 주권자라는 사실을 권력자들이 명심할 때 보장된다.

권력자들이 견강부회적으로 활용하는 국민은 권력에 압도당하거나 정치적 낙수에 삶을 기대는 소수자들, 곧 공화국의 민주시민 됨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들을 말한다. 노예적 심성에 길들어 있거나 갖가지의 역사적 연유로 민주주의에 대한 공포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독재자와 공동운명체적 일체감 속에서 심리적 편안함에 젖어 있는 것을 탓하고 지탄하기에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자명한 불의와 부정을 편들어 공화국의 보편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 공화국 파괴는 반국가임을 명심해야 한다. 집회·시위·결사의 자유가 있음에도 갖가지 실정법 장치를 빙자하여 최루탄과 물대포로 사람을 살상의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까지 변명해 주는 노예적 시민이 없기를 바란다. 노예는 시민이 아니다. 이는 국정화가 아니라도 역사가 가르쳐 준다. 그래서 큰 권력의 변덕과 무한 질주를 걱정하는 마음들이 큰길에도 신호등을 달자고 제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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