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역사와 감회
6월의 역사와 감회
  • 기세문
  • 승인 2010.06.1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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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문(통일운동가)

분단과 독재와 외세의 억압으로 얼어붙은 겨울공화국에서 청년학생들의 희생으로 민주주의를 꽃피운 4·19혁명, 5월의 신록을 피로 물들인 5월 광주항쟁을 이어서 기어이 군부독재를 까부시고 이뤄낸 6월 민주항쟁의 승리, 마침내 통일의 문을 활짝 열어준 6·15공동선언….

1987년 1월 박종철 학생의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수십만 학생들의 반독재 민주항쟁은 마침내 최루탄에 숨진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결정적 승리를 이룬 6월 민중항쟁 23주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조국의 평화통일 노정을 확고히 제시한 6·15 남북공동선언 1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6월이다. 그래서 6월의 태양은 더욱 빛나고 6월의 신록은 더욱 푸르다.

한국현대사 전시장, 역사적인 6월 
 
6월은 이밖에도 잊을 수 없는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멀리는 1926년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 저항한 6·10만세운동,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고 평양에 가서 남북합작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가하고 온 백범 김구선생이 미 CIA요원 안두희 소위의 총에 맞아 숨진 1949년 6월 26일, 그리고 수백만 고귀한 생명이 무참하게 학살 희생된 6·25전쟁, 7·4남북공동선언을 파탄내고 나라를 영구 분단시키려는 박정희의 1973년 6·23선언, 1987년 6·3데모로 시작된 6월 항쟁의 승리인 6·29항복선언, 그리고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금년 6월 2일의 지방자치선거의 민주진영 연합세력 승리, 그리고 6월 10일은 6월 항쟁기념일이다.

6월에는 또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분들의 추모일이 많다. 강희남 범민련 의장을 비롯해 이한열 열사, 그리고 5·18계승과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제 몸에 불 붙여 분신 자결한 강상철, 김철수, 박래전 열사, 그 밖에 김학수, 김성수 열사들도 6월에 떠나갔다.

나 또한 독재와 분단치하에서 평생을 핍박받고 살았기에 분단의 아픔과 조국통일, 그리고 민주화에 대한 더 절실한 바람과 감회가 있다.

이처럼 6월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오늘의 6월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역사는 돌아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올바르게 살고 미래를 밝게 열어나가기 위한 거울이며 교훈이 아닌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오늘의 6월 정국이 너무나 잘못되고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으니 큰 우려와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평화와 상생만이 민족의 살 길

남북문제, 4대강, 세종시, 천안함 등 전 국민적 관심사인 큰 문제들로 정국이 어지럽다. 특히 4개강 문제는 4대 종단 종교인들이 모두 다 들고 일어나 반대하고 있으며 문수스님은 ‘소신공양’ 분신자결을 하였다.

이처럼 국가적으로 중대한 현안 문제들은 이번 6·2지방선거에서 국민적 심판을 보여주었는데도 그대로 밀어붙인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한숨 쉬며 안타까워남 한다고 해서 무슨 일이 바로잡아지며 역사가 바로 서는가. 행동을 해야 하며 행동도 혼자서나 소수의 행동이 아니라 다수대중의 전 민중적 행동이 있어야 한다. 즉 또 다시 6월 항쟁의 깃발을 들고 모두 일어서야 한다.

그리하여 죽어가는 금수강산을 살리고 전쟁으로 몰아가 수천만의 생명을 위협하는 남북관계를 평화와 상생의 길로 터나가야 한다. 6·15공동선언을 실현하여 8천만 민족의 살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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