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만 바라보면 그림자를 못 본다
해만 바라보면 그림자를 못 본다
  • 나금주
  • 승인 2010.04.2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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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금주 참여자치21 운영위원

해마다 4월 20일이 되면 ‘장애인의 날’이라고 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대대적인 장애관련 행사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각 지자체마다 장애인을 위한 큰 잔치를 벌여서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많은 장애인들이 행사장에 모였다.

그런 장애인의 날 행사를 바라보는 일부 장애당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굳이 장애인의 날이 필요 하느냐? 장애인의 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장애를 갖고 있어도 지역사회 안에서 지자체와 시민(비장애인들)들이 사회적인 정책이나 환경, 그리고 올바른 장애인식만 갖고 있다면 하루 아니 일 년 내내 장애인의 날로 기억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생색보다 바른 인식과 정책이 중요

최근 들어서 장애인시설 개편작업이 본격적으로 논의 중이다.

사실 장애인을 떠올리면 지역사회와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서 그것도 대규모시설로 비장애인과 격리된 채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의 얼굴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장애인을 위한답시고 오히려 비장애인과 분리시키고 마치 별똥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앞으로 장애인생활시설 및 그룹홈, 단기시설들을 장애인거주시설로 개편하고, 생활시설을 신설할 때 30인 이하의 소규모생활시설들만 신설 운영이 가능하도록 개편하여 지역사회통합과 장애인의 선택권 보장을 강화한다고 한다.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서 생활하고 있는 뇌병변 장애인 2명이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에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 규정(복지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으며, 서비스 변경 신청도 할 수 있으며, 서비스 신청이 있으면 해당 지자체는 조사와 평가, 보호계획수립, 서비스를 제공하게 돼 있음)을 들어 지난해 12월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겠다는 사회서비스 변경 신청을 음성군에 냈다. 이들은 주거와 경제적 지원, 활동보조·교육 등의 사회서비스를 요구했다. 하지만 음성군은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최저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주택공급규칙에 따라 국민주택을 순서대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등 관련법을 설명하는 수준의 공문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서울시에서는 올해부터 장애인이 자립을 원하면 3∼4명씩 6∼12개월 동안 머물며 사회적응 훈련을 받는 ‘체험홈’을 운영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험에 의하면, 생활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던 장애인들이 한두 명씩 자립해서 지역사회에 나가서 살아가기 시작하게 되면 그 이후로는 걷잡을 수 없이 탈시설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탈 시설화 현상 충분한 대비해야

조만간 우리 지역에서도 머지않아 도미노현상처럼 지역사회에 나와서 자립생활을 하겠다는 사회서비스 변경 신청을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때 가서 뒤늦게 허둥지둥 갈팡질팡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도 충분한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 때문에 가족과 멀리 떨어져 생이별해야 하며, 평생을 주체적인 삶이 아닌 타인에 의한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이 또한 인권침해가 아니겠는가?

장애로 갖고 태어나면서부터 이웃과 지역사회부터 교육, 직업, 사회참여·활동영역에서 수많은 차별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 이 땅의 장애인들의 삶은 이제는 더 이상  비장애인들의 알량한 동정이나 생색내기 정책·예산 확보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국가나 지자체가 마지못해 시행하는 장애인복지정책을 통해 비장애인에게 면죄부를 씌워주는 그런 후진적인 발상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오늘도 이 땅의 장애인들은 집 밖을 나서면서부터 주위의 따가운 시선들을 뒤로 한 채 목숨을 걸고 외출한번 하기 힘들다면 말이 되겠는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동시에 지닌 헬렌켈러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얼굴을 해가 있는 쪽으로 향하면 그림자를 볼 수 없다”

그렇다. 우리는 자꾸만 앞만 보고 정작 봐야 할 앞뒤와 좌우를 두루 살펴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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