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눈으로 웅비하는 2010년을 바라며”
“호랑이의 눈으로 웅비하는 2010년을 바라며”
  • 명등룡
  • 승인 2010.01.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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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등 룡(광주비정규직센터 소장)

호랑이 해,그것도 귀한 백호의 해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올해는 그동안 미루어 온 소망이 이루어지기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여기 저기서 절절하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는 참을성 부족한 동물로, 흔한 민화(民畵)에는 담뱃대를 물고 까치와 노는 천진하고 친숙한 동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위엄있는 서민대중의 영웅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신령스런 존재이기도 하다. 호랑이에 대한 민담과 설화, 전설이나 신화가 우리나라만큼 많은 나라도 드믈다 한다. 그래서일까? 오죽했으면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호담지국(虎談之國)이라고 불렀다 한다.

문헌상의 기록으로 보면 적어도 일제강점 초기까지도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꽤 살고  있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일본 고관들이나 장군들이 포수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포획에 나선 이후부터 호랑이는 급격히 줄어든다. 그러다 분단의 철책이 둘러쳐진 이후로 적어도 남한에서는 멸종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왕성한 에너지의 바탕에는 풍부한 먹잇감을 보충할 수 있는 넓은 서식지가 필요한데 60년이 넘는 분단의 철책은 그 용맹한 호랑이조차도 넘기 힘든 장벽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호랑이의 역사는 우리민족의 애환을 그대로 닮은 듯하다.

일본놈들이 우리나라의 형상을 호랑이에서 토끼로 교육시킨 것은 그 상징일 것이다. 그 결과 식민의 어둠을 걷어내기도 전에 더 크고 힘센 미국이라는 나라의 종이 되었고, 허리가 잘리우고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동존상잔의 피를 흘렸다.

50년 전 4.19는 그러한 역사의 청산을 위한 호랑이의 첫 포효였고, 40년 전 전태일 열사는 그 기상을 이어받은 역사의 주체로서 외침이었다.

5.18 민중항쟁은 4.19와 전태일을 넘어 식민과 분단의 장벽을 부수고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위대한 승리와 희망의 불씨였다.  87년은 민주대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일제강점 이후 지난 100년의 역사 중에서 우리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를 경험한 최초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마침내 10년 전,  21세기의 원년(2000년)에는 갈라진 남북의 정상들이 최초로 만나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우리민족의 단합과 번영을 알리는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10년의 역사는 우리민족 앞에 새로운 도전을 내놓았고,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마지막 응전을 치루고 있다. 새벽이 가까울수록 어둠은 깊듯이, 같잖은 권력자들이 날뛰면서 또다시 호랑의 혈맥에 삽질을 하고, 서서히 풀어져 가던  허리의 철책을 더욱 단단히 조이면서 무릎을 꿇으라 협박을 하고 있다.

우리 시민개개인과 모든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정치조직(정당 등)들은 지금 엄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 저들의 위협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맞서 싸울 것인가? 일제강점 말기 돌아선 우둔한 민족반역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해방의 그날을 확신하고 싸우던 독립투사가 될 것인가?

겁에 질린 토끼가 아니라 어둠속에서도 형형한 저 호랑이의 눈빛을 보라!!

 2010년, 호랑이의 해는 우리민족이 그런 물음에 답하고 새로운 창조와 번영의 시대로 웅비하는 첫해가 되어야 한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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