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가는 생명에 희망 불씨 당기다”
“꺼져가는 생명에 희망 불씨 당기다”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9.03.10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생명나눔실천 광주전남지역본부

지난달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두 명의 생명에게 빛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기증 소식은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생명 나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매년 2천여명의 어린이들이 소아암 백혈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불쑥 찾아와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백혈병은 생존율도 높지 않아 난치병으로 불린다. 질병을 앓는 환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증자와 혈액으로 인해 치료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소아암 백혈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생명나눔실천본부에서는 다양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장기기증을 비롯 생명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생명나눔실천 광주전남본부는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다.

(사)생명나눔실천본부(이하 생명나눔)는 기증자와 수혜자를 결연시키는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장기이식 등록기관이다.

헌혈을 포함한 장기기증운동을 비롯 환자들의 수술비 지원 등 생명 살리기 운동을 실천하는 민간단체. 1998년 설립한 생명나눔 광주전남지역본부(본부장 현지스님)는 ▲장기기증운동 및 홍보사업(사후 각막기증 시신기증 접수, 생전 신장 기증 결연, 뇌사시 장기기증 및 골수기증 접수, 장묘문화 개선사업) ▲혈소판헌혈 공여사업(혈액질환자를 위한 혈소판 헌혈 공여 프로그램 운영, 혈소판 헌혈봉사자 운영) ▲투병환우 지원 사업(치료비 및 수술비 지원, 헌혈증서 지원, 정서지원 프로그램 운영) 등을 전개하고 있다.
  
본부장인 현지스님은 “1년이면 광주전남지역에 소아암 난치병 환자가 300명 가까이 늘어난다”며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우리 생명이거늘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많다”고 실태를 전했다.
  
혈소판 혈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백혈병의 경우 혈액이 부족해 겪는 어려움이 크다. 전혈과 달리 혈소판 헌혈은 3~5일 정도 보관이 가능해 필요한 경우에 따라 즉각 헌혈을 해야 한다. 백혈병 환자에게 혈소판 혈액은 없어서는 안 될 생명줄인 셈이다. 때에 따라 필요한 혈소판 혈액을 위해서는 충분한 혈소판 헌혈 봉사자가 필요하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
  

주명오 사무국장은 “전혈에 비해 헌혈 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혈소판 헌혈을 생소해 하기 때문에 지원자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며 “백혈병 환자들에겐 혈소판 혈액 확보가 관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다가오는 난치병 백혈병은 현대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 장기이식만이 유일한 치료 수단이다. 생명나눔은 장기이식과 헌혈증서 모집 등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10년째 생명나눔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정희원(주부. 45)씨는 “백혈병 지원 홍보 캠페인을 나가보면 무심히 지나가는 시민들이 대다수다”며 “그런 이들을 붙잡고 생명나눔 필요성을 알리고, 동참하는 걸 보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생명나눔이 앞장서 장기기증 홍보 캠페인을 펼치곤 있지만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장치는 미미한 상태다.
  
주 국장은 “정부가 나서서 장기기증을 적극 권장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해 줘야 하는데 이조차도 쉽지 않다”며 “사회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불법 장기매매를 탓하거나 장기기증 수가 적다고 탓할 순 없는 노릇이다”고 못 박았다.
  
▲ 소아암 병동에서는 매달 생일잔치가 열린다. 힘든 치료를 잘 이겨내고 있는 환우들을 격려하기 위해 생명나눔실천 광주전남본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것. 이때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환우들을 위해 다과는 물론 재미난 공연도 펼쳐진다.

일례로 장기기증자는 일반 보험회사에 가입되지 않는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라 하지만 정부에서 보장해줘야 할부분인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주 국장은 “시간적 제약을 받는 직장인들이 골수기증을 위해 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며 “법적으로 골수기증을 위해 병가를 낼 수 있도록 돼 있긴 하지만 일주일 정도 걸리는 검사기간을 회사에서 좋게 볼 리 만무한데다 비용 또한 자부담이다”고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골수기증을 하더라도 기증자와 환자의 골수가 일치할 확률은 8만분의 1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도개선이 절실한 시점이다.
  
올해로 11년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활동을 꾸준히 펼쳐온 생명나눔은 ‘실천봉사’의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주 국장은 “지역에서 10년 동안 난치병을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는 게 성과라면 성과”라며 “올해부터는 단체를 정비해 소외받는 이웃들에게 더 큰 힘을 줄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고 밝혔다. 후원문의 062)234-6602.

[백혈병 완치기]

   
“교복입고 학교 가는 게 꿈만 같아요”
정아영(화순 능주고 3학년. 19) 학생

“교복입고 학교 가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는 고등학교 3학년 정아영 학생은 밤 12시가 넘어 끝나는 학교생활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앳된 얼굴에 수줍음 많은 모습이 여느 여고생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한때는 백혈병으로 생사를 걱정하던 환자였다.
  
“백혈병은 TV에서나 봤지, 제가 걸릴 거라곤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아영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3년 5월 14일 청천벽력 같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 정영출(53)씨는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이 그 힘든 치료과정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싶어 할 수 있다면 대신 아파주고 싶었다”고 눈물을 훔쳤다.
  
아영이는 “검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차안에서 아빠가 ‘미안하다’고 펑펑 우시는 모습을 처음 봤다”며 “3년여의 치료과정보다 더 힘들었던 건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고 말했다.
  
이겨낼 수 있다고 몇 번이고 마음을 굳게 다잡았지만 힘든 나날이었다. 항암치료를 위해 머리를 삭발했을 때가 가장 속상했다는 아영이는 거울 보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같은 병실에 있던 아이가 결국 세상을 떠났을 때는 “나도 언젠간 저렇게 될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며 “백혈병이라는 게 완치율이 높지 않다 보니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게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오랜 시간 병원 생활을 한 탓일까 아영이는 제법 의젓했다. “그래도 저는 부모님도 있고, 치료 경과도 차츰 좋아져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며 “병실 친구들 중에는 합병증이 오거나 백혈병이 재발해 치료가 힘든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2006년 1월 아영이는 백혈병 완치 판결을 받았다. 병원 문을 나서며 아영이를 가장 기쁘게 한 건 “다시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치른 아영이에게 학교는 꼭 돌아가고 싶은,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정영출씨는 “백혈병 완치는 병이 다 나은 게 아니라 병원 치료가 종료됨을 뜻하기 때문에 완치판결 후 5년 동안이 중요하다”며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아 고등학교 과정 역시 검정고시를 보길 권했더니 기어코 학교를 고집하더라”고 웃었다.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학교였건만 아영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다. 아영이는 “학교만 들어가면 친구들과 금방 친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어렵더라”며 “친구들과 선생님의 지나친 배려로 학교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은 어떨까. 아영이는 “3년째 체육대회는 근처도 못 가보지만 그것 빼곤 다 좋다”며 “공부를 하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은 몰랐다”고 환하게 웃어 보인다.
  
백혈병 완치 후 아영이는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돕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백혈병 환우 여름캠프 등 생명나눔실천본부에서 주관하는 행사의 일일 미술교사를 자처한 것. 아영이는 “치료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만큼 베풀고 싶다”며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백혈병도 무서워서 도망갈 것이다”고 희망을 전했다.

 

[자원봉사자]

   
“아버지가 받은 사랑 되갚고 싶다”
혈소판 헌혈 자원봉사자 차익환(35)씨

차익환씨는 소문난 혈소판 헌혈 자원봉사자다. 전혈과 달리 혈소판 헌혈은 3일 이상 보관할 수 없다보니 필요할 때마다 헌혈을 해주는 게 관건이다. 익환씨는 “돌아다니는 직업이다 보니 남들과 보다 시간적 이유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고 겸손한 모습이다.
  
익환씨는 “아버님이 백혈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누구보다 백혈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며 “당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보답하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고 남다른 사연을 공개했다.
  
집안에 백혈병 환자가 있으면 온 가족이 같이 아픈 거나 마찬가지라는 익환씨. 대장암으로 한차례 고생했던 아버지가 느즈막하게 백혈병으로 고생하다 가신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는 익환씨는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으로 봉사에 임한다.
  
익환씨 아버지는 지난 2005년 백혈병 발병 이후 1년여 동안 항암치료 끝에 백혈병 재발로 세상을 떠났다. 익환씨는 “그렇게 좋아하시던 육류를 병원치료 때문에 가시는 날까지 못 드신 게 마음에 걸린다”며 “외아들인데 그렇게 아버지를 허무하게 보내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가슴 아픈 속내를 털어놨다.
  
누구보다 백혈병 환자의 고충을 잘 아는 익환씨는 “백혈병 환자들에게 혈소판 헌혈은 치료 과정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치료비용과 직결 된다”며 “비싼 치료비의 절반 이상이 혈소판 헌혈 비용이다”고 말했다.
  
혈소판 공유자가 많아야 백혈병 환자들의 치료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혈소판 헌혈을 생소해 하는데다 전혈과 달리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시간도 문제다.
  
익환씨는 “혈소판 공유자가 확보되지 못하면 부득이하게 전혈에서 혈소판을 채혈해야 하는데 양도 미미한데다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있어 좋지 못하다”며 “한 시간의 헌혈시간이 길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익환씨는 이어 “생각해 보면 헌혈을 하며 얻는 것도 많다”며 “생명을 나누는 것은 물론 건강 체크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헌혈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랫동안 자원봉사를 하고 있지만 도움을 받는 백혈병 환자와는 만남을 자제한다는 익환씨. “개인적으로 연락하던 백혈병 환우의 사망소식을 뒤늦게 접한 적이 있다”며 “혈소판 헌혈을 돕고 있긴 하지만 백혈병 환자의 대부분이 결국은 사망에 이른다”고 안타까워했다.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한 시점이다.
  
익환씨는 “한 달에 얼마씩 후원을 하는 것도 좋지만 혈소판 혈액이 필요한 많은 환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는 이들이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며 “혈액형이 AB형으로 귀한지라 앞으로도 꾸준히 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