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풍수적 관점에서의 환경 (1)
청산도, 풍수적 관점에서의 환경 (1)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9.05 00: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청배의 청산도 이야기]완도군 청산도 화랑포 해안도로 공사현장을 중심으로
지난 8월 16일 본지 [시민의 소리]에 현장르포 '서편제가 앓고 있다'는 제목으로 청산도 난개발 문제를 지적했던 자유기고가 전청배씨가 다시 풍수적 관점으로 화랑포 현장을 재해석한 글을 보내왔다. 인간의 탐욕 앞에 제 모습을 잃어버린 화랑포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묻어나는 필자의 글을 3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녹수청산(綠水靑山)이요 청산여수(靑山麗水)라. 푸름을 좋아하는 신선이 살아 선산도(仙山島)라 불리던 곳, 뭍에 지리산 청학동이 있다면 바다에는 청해진으로 알려진 완도군 청산도가 있다. 고려 목종 10년(1007년), 제주도 근해에서 7일 동안 대지진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바다가 넘쳐나고 산들이 흔들렸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운무에 덮여있던 바다에서 홀연히 운무가 사라진 후 큰 산이 솟아올랐다. 나라에서는 이를 상서로운 징조라며 청산도(靑山島)와 짝을 이루는 이름을 지어 주었으니 지금의 여서도(麗瑞島)이다. 청산도는 신선의 섬이다 신선의 섬, 청산도에 사람들은 언제부터 살고 있었을까? 읍리마을의 지석묘군(전라남도 지방문화재 자료 116호)으로 미루어보아 선사시대부터 상당한 문화수준을 지닌 사람들이 이 섬에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섬의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지상에는 상석만 있고 묘실은 지하에 두는 전형적인 남방식 무덤이다. 덮개석이 덩어리로 되어 있으며 일제 때 이 부근에서 마제석검을 비롯한 석기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 전남 완도군 청산도 읍리마을 고인돌 /시민의 소리
통일신라시대에는 청해진이 설치된 완도읍의 장도를 바다에서 척후하던 전진기지로 눈이 좋은 수군들이 범바위에 올라 제주도 근해까지를 관측하였으리라. 이 섬의 동촌리와 도청리에는 봉수대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강진현에 속하였으나 왜구들의 노략질과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정이 내린 도서금주령(島嶼禁住令)에 의해 사람이 살지 않았다가 1608년에 주민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숙종 7년(1681년) 수군만호진이 당리마을에 설치되어 서남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역할을 담당하였다. 고종 3년(1866년)에 이 섬의 당락리에 청산진 첨사 조재승이 청산진성을 축성했다. 1896년 고금도에서 9년간의 귀양살이를 하다 풀려난 전라도 관찰사 이도재(李道宰)가 영암, 강진, 해남 3군에 속해 있던 완도의 여러 섬을 합해 완도군을 설군하여 완도군에 편입되었고 1981년 12월 23일 소안도, 보길도 등과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청산도는 학문의 섬이다

청산도는 이웃하는 소안도, 거문도와 함께 서남해 도서3학도(島嶼三學島)로 불리는 섬이다. 거문도가 낳은 근세유학자 귤은 김유(橘隱 金劉)와 만회 김양록(晩悔 金陽祿)에게서 수학한 이 섬 출신 제자들의 간청으로 귤은 선생이 직접 청산도에 머무르며 강학하였다고 한다. 귤은은 청나라 수군 제독 정여창이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 수군과 협상하려고 거문도에 왔을 때 제자들과 함께 필담을 나누었는데 이들의 학문에 놀라 3도로 불리던 섬이름을 학문이 큰 섬이라는 뜻의 거문도(巨文島)로 칭했다고 한다.

청산도는 유인도 5개와 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완도군 청산면의 중심 섬으로 완도 남동쪽 19.2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섬은 남쪽의 매봉산(385m), 보적산(321m)과 북쪽의 대봉산(379m)이 있어 비교적 산지가 발달했고 서쪽 및 중앙의 읍리와 양중리 부근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해식애와 난대림이 넓게 분포하여 경관이 뛰어나다.

구들장논은 세계적인 농경문화 유산이다

돌이 많은 섬이라 집 담장과 밭담을 돌로 쌓아 거센 바닷바람을 막고 부족한 농토를 넓히기 위해 층계식의 다락논과 구들장논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경작하고 있다. 특히 구들장논은 전세계 쌀농사문화권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조상들의 땀과 지혜가 담긴 소중한 경제적, 문화적 자산이다. 구들장논은 마치 온돌방에 구들장을 놓는 것처럼 넙적한 돌을 깔고 흙으로 돌 사이를 메우고 다시 흙을 올려 다져 만든 논이다.

▲ 온돌방에 구들장을 놓는 것처럼 넙적한 돌을 깔고 흙으로 돌 사이를 메우고 다시 흙을 올려 다져 만든 청산도 부흥리 구들장논. ⓒ오마이뉴스 김은주 돌이 많은 땅이라 물을 가두어도 쉽게 빠져버리기 때문에 무논을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석축을 쌓고 바닥에 Y자 모양으로 돌을 얹어 Y자 모양의 수로를 따라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계속 이어지게 만들었다. 구들장논은 우리 조상들의 귀중한 농경문화 유산이다. 문화재 당국이 나서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중요 사적으로 지정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청산도만이 가진 문화유산이다. 청산에 어울리는 꽃이 있는 형국 신선이 사는 청산이라도 구색에 어울리는 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화리(菊花里)가 있고 화랑포(花浪浦)가 있다. [이 섬 북쪽에 위치한 국화리(菊花里)는 산이 초자형(艸字形)인데다 마을 형국은 미자형(米字形)으로 한자의 菊字를 형성하며 또한 들국화가 무수히 자생하여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최창조의 ‘한국의 자생풍수Ⅱ, 556쪽) 섬의 남쪽에 위치한 권덕리에는 범바위가 있다. ▲ 남쪽 바다로 힘차게 고개를 내뻗은 거북이 형상의 화랑포 /시민의 소리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맑은 날이면 제주도의 한라산이 선명하게 조망되는 곳이다. 망망의 남쪽바다에서 밀어 닥치는 파도가 바위절벽에 부닥쳐 피워내는 꽃이 화랑포다. 절벽에 부닥치는 파도를 꽃으로 보아 낸 조상들의 안목이 존경스럽다. 참으로 탁월한 시각이다.

겨울철이면 내륙에서 불어오는 강한 북서풍을 대봉산이 막아내고 여름의 태풍은 매봉산과 보적산이 바람길을 돌리니 그야말로 신선이 살만한 안락한 형국은 일단 갖춘 셈이다.

▲ 장익호 著. [유산록] 77쪽. 금구망해형 이 섬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지맥은 도락리와 당리 사이에 곶(串)처럼 바다로 돌출된 거북 형상의 화랑포이다. 꽃 화(花), 물결 랑(浪), 이름 그대로 해안 절벽에 부닥치는 물결이 꽃처럼 피어나는 곳이다. 도청리에 위치한 면사무소 뒷산으로 이어진 진산(眞山)의 주맥이 바다를 향해 낙지(落地)의 혈을 뻗다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나지막한 당리마을 황토고개를 이루고 다시 힘차게 행룡(行龍)하여 결맥(結脈)한 곳이 바로 화랑포이다. 화랑포는 여수 돌산도 향일암(向日庵)의 형국과 흡사하다.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남해안의 2대 관음도량으로 알려진 향일암은 바다로 헤엄쳐가는 금거북이의 등을 타고 앉은 형국이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형국을 금구진수형(金龜進水形), 또는 영구망해형(靈龜望海形)의 명당이라고 한다. 향일암의 다른 이름이 영구암(靈龜庵)인 까닭은 바로 암자터의 풍수적 해석에 있다. /2회로 이어집니다. 청산도, 풍수적 관점에서의 환경(1) ▲ 전청배
글쓴이 전청배
자유기고가. 1959년 신안군 하의도 生.
조선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관으로 활동.
현재는 광주에서 집필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05-09-06 23:13:26
너무 반가운 글이다.

전국 섬의 60%를 가진 광주전남에서 이런 섬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드니,
무슨 이윤가?

섬은...

그 섬들에 가고 싶다.

섬개구리 만세!

소리지기 2005-09-06 17:06:08
청산도 환경 훼손에 관한 지난 번 기사를 읽고 그렇잖아도 이후 대책이 궁금했다. 지난 번 기사에 따르면 이미 상당부분 훼손된 자연을 돌이킬 수 없다. 생각해보라. 청산도 바닷가의 바위나 바위틈의 해풍를 맞고 자란 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선 그 오랜 시간을. 이것들을 빌려 의지하고 살고 있는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시간들이다.

인간은 아주 단순하게 당대의 편의과 이윤을 위해서 조물주가 그토록 오랜 시간 공들여 이룩해놓은 대자연의 섭리를 아주 한순간에 거스르고 만다. 해안선의 새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바닷속의 물고기와 어패류들이 갈 곳이 없다면 인간 또한 마땅히 발붙이고 서야할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면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풍수적 관점으로 환경을 논한 차분한 어조의 이 글은 청산도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히 목격되는 가공할 환경부재의식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다음 글이 궁금하다.

전통지리학인 풍수는 국토가 우리의 몸과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손톱 밑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연약한 인간의 몸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금 자연에 행한 폭력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국토의 파괴하는 행위는 우리의 몸을 파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장 공사를 중단하고 환경 훼손의 실태를 면밀히 파악한 후에 원상태로 복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청산도는 우리가 지켜내야 할 우리의 몸이다. 우리 몸이 건강해야 후손이 있고 미래가 있다. 병든 청산도를 살려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