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몽구칼럼]선심과 민심 사이
[박몽구칼럼]선심과 민심 사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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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오늘]박몽구 시인.문학박사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벌써 25주년이 되었다. 당시 스물다섯의 청년이었던 나는 실로 그 갑절의 연치가 되어 버렸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필자는 그날 아침 계엄 선포 소식과 함께 학교 소식이 걱정되어 전남대 정문 앞으로 갔다.

그 자리에서 착검을 한 계엄군들에 의하여 굳게 닫힌 교문을 보았고, 학생회 간부 등 다수의 학생들이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몇 번 학생들과 학교 진입을 시도하다가 착검을 한 채 무차별로 진압하는 군인들을 보면서, 결국 시민들에게 소식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10시경 200여 명의 후배들과 함께 스크럼을 껴고 금남로까지 진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광주민중항쟁의 시발의 한 실마리가 되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필자는 갑절의 시간을 보내면서 광주민중항쟁에는 이른바 투사로 알려진 이들보다, 그야말로 묵묵히 헌신하면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5월 26일이던가 YMCA에서 진압군에 대항하여 결사 항전대를 모집했을 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찾겠다며 결연히 항전대에 지원한 간호사 누이, 저격병의 총탄에도 굴하지 않고 장갑차 위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안은 채 도청으로 나아가던 몇몇 소년들….

이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5월이면 덤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필자 자신 5월민주유공자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광주민중항쟁을 그야말로 부끄럽지 않은 역사의 혁명으로 끌어올린 이들은 숨어 있음을 느낀다.

최근 들어서 5.18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전국 곳곳에서는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런 행사에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걸 보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가운데 최근 서울시청이 ‘경축 5.18 광주민주화운동 25주년’이라 제한 선전탑을 서울역 광장에 세운 것은 실로 깊은 우려를 자아내는 사태라고 본다. 5.18이라고 해서 경축(慶祝)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법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사가 정착되려면, 진실이 규명되고 그 정신이 우리 현대사에 확고하게 정착된 시점이어야 할 것이다.

오늘처럼 역사의 진실이 흔들리고, 심지어 예전 독재의 하수인들이 마치 전무후무한 투사가 되어 떠드는 현실은 진실의 역사가 씌어지려면 더 많은 시각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양김씨의 정권 및 현재의 참여정부에 이른바 이른바 민주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5.18을 둘러싼 작전일지 하나 제대로 공개되지 못하는 걸 보면, 미셀 푸코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권력’이 오욕의 역사 배후에 완강하게 숨어 있음을 실감케 하고도 남는다.

그런 점에서 5월만 되면 마치 광주민중항쟁의 수호신이라도 된 듯이 행사장에 얼굴을 내밀다가 며칠이 안 되어 썰물처럼 사라지는 정치인들이며 지도층 인사들의 면면을 우리들은 똑똑히 보아 두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념이나 몇 푼의 보상이 아니라, 5.18을 둘러싼 역사의 의혹을 한 점 남김없이 푸는 일이다. 국민들을 행사장에 뻔질나게 얼굴을 들이미는 인사들이 아닌, 역사의 진실편에 선 이들을 선택하고 표를 던질 것이다. 최근 들어 개혁을 표방해온 모 정당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는 현상도, 필자가 보기에는 겉과 속이 다른 처신 탓이 적지 않다고 본다.

차가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몇몇 인사들이 광주 전남과 자매 결연에 나서는 등 부산하게 지역적 연대에 나서고 있는 것도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결국 ‘경축’이라는 관사는 광주민중항쟁에 오점을 찍는 행위요, 역사적 진실 규명에 대한 무책임의 한 증좌이다. 광주를 찾는 인사들은 모름지기 선심성 인연 맺기로 표밭을 갈겠다는 생각보다, 솔직하게 역사의 진실 규명 의지를 보여줄 때 민심을 얻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몽구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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