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의 그림자
'학폭'의 그림자
  • 문틈 시인
  • 승인 2021.03.0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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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20년 전 과거 학창 시절에 폭력을 행사한 사실 때문에 한창 잘 나가는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들이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을 본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예수는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을 돌려대라’고 말한다. 비폭력 선언과도 같이 들린다. 인도의 간디가 이 말씀을 좇아 비폭력 독립운동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폭력을 휘두를지라도 그 악한 자에게 스스로 깨닫고 뉘우치게 하라는 뜻의 말씀이다.

그러나 폭력을 당한 자로서는 따르기 너무나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다. 그것이 저항의 한 방법일지라도. 오죽하면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 말이 있겠는가. 개인과 집단, 가족은 물론 때로 국가도 폭력을 행사한다.

대선배한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고교 시절에 같은 반 학생으로부터 폭력을 당했다. 그 분노가 얼마나 심했던지 졸업 후 같은 대학에 진학하게 된 선배는 대학 교정에서 다시 한번 고교 시절의 일로 다툰 끝에 폭력으로 그를 응징했다고 한다.

몇 십 년 전 나는 학부모로서 아들이 다니는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교사가 아들에게 언어폭력을 가해서 이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사과를 받고 돌아온 것으로 끝났다. 새삼 옛 일들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당한 일이 있을 것이다.

몸이 약체인 나는 이 생전 누구와 주먹다짐을 해본 기억이 없다. 폭력이 일어날만한 장면이 생기면 늘 피하며 지내왔으니까. 그래도 느닷없이 폭력을 당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지금도 그때 일이 잊히지 않는 것을 보면 폭력이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주는지 짐작할 만하다.

우리말에 때린 사람은 발 오그리고 자도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잔다는 말이 있지만 그러나 맞은 사람은 두고두고 아픔으로 남는다. 오죽하면 오래 전 일을 가지고 지금 와서 복수전까지 하기에 이르겠는가.

수년 전 어느 재벌 회장이 뉴스를 탔다. 아들이 학교에서 얻어맞고 오자 어깨들과 함께 야구방망이를 들고 학교를 찾아간 일로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이다. 학폭은 폭력을 당한 사람뿐만 아니라 부모에게까지 씻지 못할 분노와 상처를 안겨 준다. 폭력의 아픔이 그만큼 크고 무섭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 밖에서 맞고 들어오면 ‘맞지 말고 너도 똑같이 때려.’ ‘맨날 당하고만 올래?’ 자식에게 맞서 싸우고 와야 한다며 자식을 나무라기도 한다. 이처럼 폭력은 복수를 수반하기 일쑤다.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시절에 겪은 학폭의 상처는 평생 갈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주변에 그런 피해자를 한 사람 알고 있다.

법적으로야 연한이 지나 죄를 물을 수 없어도 폭력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연한이 없다. 늦었지만 사과를 해야 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 폭력뿐만 아니라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곧바로 사과하는 것이 답이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칙이다.

혹여 옛날 일을 가지고 지금 와서 잘못을 꾸짖는 것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한 사람의 마음의 상처와 원한을 헤아리면 그런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아들은 최근 일고 있는 학폭 고발 사태를 보고 옛일이 도져 요 며칠 마음이 헝클어진 상태다.

학폭 대상자가 샐럽인 경우는 사과라도 받을 기회가 있지만 대부분 사과를 받지 못하고 지낸다. 하기는 모 장관도 학창시절 학폭 연루 의혹을 받는 지경이니 학폭은 오래된 고질병 같기도 하다.

학폭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한 팟캐스트에 나와 자신이 학창 시절 주먹을 내두른 일을 고백해서 놀라게 했다. 중학교 때 탈의실 청소를 하는 중에 자신을 향해 인종 차별(racial slur) 발언을 한 농구팀 동료에게 주먹을 날려 코뼈를 부러뜨렸다고 고백했다.

오바마는 말했다. “나는 가난할 수 있다. 나는 무지할 수 있다. 나는 못된 사람일 수 있다. 내가 못 생겼을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불행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나서 “하지만 내가 아닌 게 뭔지 아는가?” 결론은 단호했다. “나는 당신이 아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말이다. 사람은 신의 형상을 본받아 창조된 존재라지 않는가. 폭력은 엄숙하게 말하면 신을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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