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기록이 없다
광주에 기록이 없다
  •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 승인 2018.09.1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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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광주에 쓸 만한 기록이 없다. 책이나 잡지를 출판하거나 광주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사진, 영상, 설화, 역사적 자료 등 원스톱서비스가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기반 기록이 없다는 이야기다. 기록 하나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검색을 하는 데 들이는 시간 허비가 많다.

물론 기록은 있다. 광주광역시와 일선 5개 구청, 여러 지역 단체 등에서 발행하는 각종 기록들이 있다. 문제는 이런 자료들이 각각으로 존재할 뿐 광주를 알리는 데 필요하도록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필요한 기록을 찾을 때마다 중복되고 반복적인 절차를 거쳐야 겨우 찾을 수 있다.

사진이나 영상의 경우 기록의 현재성 때문에 알맞은 이미지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뒤따른다. 이미지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지적재산권 때문에 사용하기 어려운 난제가 있다. 이런 기록들은 광주시가 주도적으로 확보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상 제공할 필요가 있다. 광주를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전주시는 2016년부터 1년에 두 차례씩 기록유산 수집활동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천년의 기록을 찾습니다’라는 주제로 벌써 제5회 전주기록물 수집공모전을 벌이고 있다. 대상작에 대한 전시회도 갖는다.

기록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기록문화의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기록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기록이 존재함으로써 정치나 행정 행위는 물론 학자와 활동가들의 의사결정에 판단의 근거를 제공해준다.

기록문화에 나타난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선행연구가 없어 이를 설명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과거를 기록하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필수적인 행위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록은 기억을 동일하게 재현하고 확산하는 데 필수적이다.

디지털 기록이 있기 전에는 목판이든 활판이든 인쇄된 책을 통해 기록을 전달했다. 사진은 필름이나 인화를 통해 전달하였다. 이런 경우 기록이나 보급의 한계가 있었다. 오늘날 기록은 디지털화되면서 기록이나 보급에 추가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모두가 공유하며 사용할 수 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우리 지역이 갖고 있는 문화의 고유성은 우리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핵심근거이면서 차별화된 문화콘텐츠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세계 속의 ‘한류’를 만들어낸 근원은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에서 이루어낸 문화적 쾌거이다.

‘문화광주’의 브랜드 가치를 어떻게 높일까. 지역경제의 부를 창출하고 문화관광예술분야에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싶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전통기록유산에 주목해야 한다. 그 속에 깃든 문화적 가치를 찾아내고 이를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유산으로 남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광주에서는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에서 ‘호남기록문화유산’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고문헌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나마 옛 기록을 찾는 수고로움을 일부 덜어주고 있어 반갑다. 인물, 목판, 금석문 등 필요한 기초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게다가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사이트를 통해 1000개의 역사문화자원 기록화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웹툰 50개와 스토리 100개, 기타 광주 관련 자료 목록들을 제공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근현대 자료들이 풍부하지 않다는 것이다.

광주 서구문화원에서는 올들어 기록문화유산에 대한 몇 가지 사업을 시도했다. 하나는 광주를 주제로 한 한시와 현대시의 모음이다. 한시는 번역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광주에 관한 글을 쓰려면 관련된 시 한 수를 인용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광주의 풍광이 시를 통해 상상 속에서 그려질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업은 일제강점기 당시 을사늑약 이후 서구 용두동 봉황산에 은거하며 650여명의 문인들을 가르친 현와 고광선 선생의 기록을 정비하고 있다. 우선은 <현와유고> 문집 가운데 시편을 초벌번역하고 있다. 고종이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눈물을 흘렸다는 ‘읍궁암’ 바위를 소재로 스토리텔링 콘텐츠도 만들고 있다.

이에 앞서 필자는 2016년 광주의 정자 227개를 정리해 내놓았고, 올해는 광주의 금석문을 전남대 김대현 교수와 함께 정리 중이다. 개인적으로 광주문화재단의 일부 출판비 지원을 받아 2017년 광주의 건축물미술장식품을 정리했고, 2015년 광주의 공공미술품 현황과 대안을 내놓는 등 광주의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할 수 있는 내용들을 수집 정리 중이다.

이들 사업은 모두 시간이 필요하고 출판 등의 비용 문제로 어려움이 따르기는 하지만 소명의식으로 몰두하고 있다. 이런 자료들을 누구든지 한 곳에서 보며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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