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자
광주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자
  •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 승인 2018.10.04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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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걷는다. 광주에 주민등록을 두고 살기 시작한 지 40여년이 되었는 데도 아직도 모르는 광주의 기억들을 찾을 때마다 새롭기만 하다. 신문기자 생활을 30여년 했으니 제법 오래 했고 문화원장을 맡은 지도 4년이 지났다. 자연스레 지역문화에 애정을 쏟고 있다.

지난해 <양동시장에서 서창 들녘까지>라는 서구지역 문화자원을 집대성한 책을 내놓으면서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매월 발행되는 서구소식지에는 <서구를 걷다>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벌써 45회차이다. 이를 읽어보신 분들 가운데 가끔 고맙다는 분도 있다.

최근에는 마을답사를 원하는 주민들과 광주의 곳곳을 답사하고 있다. 현장을 다니면서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광주의 기억들이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도시발전, 재개발 등을 이유로 옛 기억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당연시 됐다. 광주는 아파트 비율이 80%가 넘는다는 데 말이다.

바람이 있다면 재개발을 하면서 하나의 기억이라도 보존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최근 재개발이 추진된 계림동, 양동은 물론 앞으로 진행될 광천동 등 이제라도 광주의 기억에 대한 중요성을 알았으면 한다.

문화도시 광주는 선비문화의 깊은 내력이 있다는 점에서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다. 광주문화재단에서 환벽당 등에서 풍류행사를 하는 것으로 그런 연유일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 광주의 누정을 정리한 책을 낸 바 있다. 당시에는 227개의 누정을 데이터 개념으로 글을 썼는데 그 뒤로도 추가 조사하니 300개가 넘는다. 아직도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를 일이다.

광주천과 극락강, 황룡강을 따라 어마어마한 정자가 있었다는 데 그 흔적을 복원하면 광주를 내놓을 수 있는 문화 스토리가 될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우리 지역의 인물을 오버랩해서 정자가 복원된다면 좋은 관광자원이 될 만하겠다.

광주의 건축물 미술작품을 정리한 책도 내놓았다. 일정 규모의 건축물마다 미술장식품을 설치해야 하는 의무조항으로 세워진 작품들이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광주의 내로라하는 작가,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만든 상당수의 작품들의 수준이 필자가 볼 때는 참으로 가관이었다.

작가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작품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작품 앞에 붙은 설명은 그럴싸했다. 특히 아파트에 설치된 작품들은 거의 대동소이하고 내용도 비슷했다. “콘크리트 속의 마을을 형상화하고 화목한 가정과 동네 사람들”과 같은 미사여구일 뿐이었다. 아무리 작품을 뜯어보거나 그냥 봐도 감동은 일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작품들은 현장의 역사성이나 장소성을 감안하여 보는 이들에게 재미를 주거나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아파트 건축미술작품들은 대부분 형식적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문제는 광주시가 이런 일에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광주가 지향하는 문화도시의 비전을 고려하고 심사를 제대로 했어야 한다. 아마도 미술장식품심의위원회가 제대로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거의 무용지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광주의 곳곳을 걷다보면 이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한심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건축주와 작가 간에 모종의 계약이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비밀이 아니던가. 이런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문화원에서는 주민들과 함께 서구는 물론 광주의 이곳저곳을 답사차 돌아다닌다. 때로는 여러 문화단체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와 현장답사를 반드시 할 필요성이 있을 때가 많다. 수시로 주변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현장을 다녀보면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할 때가 있다.

최근에는 비석 2개에 얽힌 이야기로만 전해온 서창나루 마지막 뱃사공의 박호련에 대한 사진과 족보, 1930년도의 신문기사를 찾아내 공개한 적이 있다. 확실한 증거를 통해 그 분의 나눔에 대한 기억을 살려야 할 일이다.

또 용두동 봉황산의 현와 고광선 선생은 문인이 650여명이나 됐다는 데 그 분에 대한 이야기는 을사늑약 이후 귀를 닫고 은거했다는 엄이재와 고종 서거 이후 눈물바위라는 읍궁암에서 3년간 눈물을 흘렸다는 것에 그쳤다. 이 또한 고광선의 영정을 찾아냈다. 석지 채용신 화백의 작품으로 알려지자 서울의 고서화 전문점에서 벌써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올해는 광주의 기념탑, 동상, 비석, 기념물 등을 정리하고 있다. 이들은 돌과 쇠에 새겨진 명문이 있다면 더 좋은 광주의 기억이 될 것이다. 글 속에서 찾아낸 아름다운 이야기는 광주의 문화콘텐츠로 스토리텔링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용섭 시장께서 얼마 전에 말했다. 이러한 우리의 문화역사자원을 잘 활용하여 도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우리의 경쟁력 있는 자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부디 그 약속이 임기 내에 시작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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