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생활임금제’ 도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1)
영국의 ‘생활임금제’ 도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1)
  • 이재열 시민기자
  • 승인 2016.04.07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재열 S&Lee 컨설팅 대표
영국에서는 기존의 최저임금에 생활임금(National Living Wage)을 신설한 최저임금법이 이번 달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생활임금은 물가를 반영해 근로자와 그 가족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 개념으로 주요 선진국 가운데 처음 도입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25세 이상 근로자 기준으로 시간당 7.2파운드, 약 1만2000원 정도를 받게 된다. 영국은 생활임금을 앞으로 연평균 6.25%씩 인상해 2020년까지 시간당 9파운드, 약 1만5000원까지 올릴 계획이다. 영국의 물가상승률이 작년부터 0.2~1.2%로 기록적인 낮은 수준에 있고 2018년까지 상승률 전망도 1~3% 임을 고려할 때 이는 파격적인 인상률이다. 또 기존 최저임금 인상 속도인 2.1%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다. 닉 볼스 기술담당부장관은 "서구 정부 역사상 최대 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최저임금은 1998년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에서 도입했다. 이때 현재의 집권 보수당은 ‘최저임금제가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를 했었다. 지금과 같은 보수당의 극적인 태도 변화는 최저임금을 바라보는 기존 경제학계의 시선 변화와 함께 한다. 시장의 균형 임금 이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면 실업이 발생한다는 이론이 현실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국 최저임금위원회(Low Pay Commission)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장기간에 걸쳐서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에 거의 아무런 부정적 효과를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이 도입되면서 노동을 착취하는 극단적인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지고, 저소득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성이 높아졌다. 또한 비용이 일시적으로 증가한 것 보다 생산성 향상 등으로 사용자가 누리는 이익이 더 크게 나타고 있다며, 생활임금 도입이 상당히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보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지난해 최저임금을 올린 이후 오히려 실업률 하락을 보였다. 2014년 9월 법안이 논의될 당시 독일의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제로 임금이 인상되면 최대 90만명이 실직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독일의 실업률은 2014년 12월 4.8%에서 지난해 10월 4.5%로 줄었고, 올해 1월에는 4.3%로 더 떨어졌다. 이는 지난 26년 간 독일의 최저 실업률로, 평균 실업률이 9.3% 수준인 유럽연합 내에서도 가장 낮았다.

독일의 최저임금은 현재 시간당 8.5유로, 약 1만1000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50% 인상하기로 했다. 시애틀, 뉴욕 등의 도시에서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 약 1만7000원으로 인상하려 하고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와 같은 개발도상국도 최저임금 인상에 적극적이다. 말레이시아는 부를 좀 더 공평하게 재분배하고 노동자들의 계층 간 이동을 촉진하는데 최저임금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물론,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영세자영업자와 소기업 등의 경영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이와 관련된 문제는 다음 지면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각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최저임금이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 5명 중 1명인 342만 명이 최저임금의 영향권에 들어와 있다고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밝혔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들에게 늘어나는 소득이 적극적인 소비증가로 이어져 우리 경제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번 4.13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관련 최저임금법의 개정안은 17개나 발의되어 있었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임기를 마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최저인금 인상에 관한 공약들을, 실질적으로 실천할 정당을 가려내 투표를 통해 실력행사를 하는 것이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