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장애인 차별, 말할 곳 없다
광주시 장애인 차별, 말할 곳 없다
  • 권준환 기자
  • 승인 2016.01.21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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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장애인차별상담전화 예산 폐지
담당단체, 유사중복사업 논리는 허구·부당
市, 장애 당사자들에게 돌아가는 사업 하려는 것

광주광역시가 장애인차별상담전화에 지원해 온 900만원 예산을 유사중복 사업이라는 이유로 2016년부터 폐지한다고 밝혀 빈축을 사고 있다.

A씨는 중증장애인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일반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가능하다. 원활한 의사소통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천천히 대화할 수 있다.

A씨는 어느 날 활동보조인과 함께 통장 개설 및 인터넷뱅킹을 신청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공납금을 자동납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통장을 만들지 못했다. 은행업무 담당자는 A씨가 자필서명이 되지 않고, 어차피 인터넷뱅킹 이용도 못할 건데 왜 신청하느냐고 말했다. A씨는 자필서명을 할 수 있을만한 손 상태가 아니지만 엄연한 성인이었고, 활동보조인도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장을 개설해주지 않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A씨는 장애인차별상담전화(이하 차별상담전화)에 문의했다. 차별상담전화에서는 이 사안에 대해 개입하기로 결정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국가인권위의 조사가 진행됐고, 해당 은행 직원과 지점장이 직접 A씨의 집을 방문해 사과했다.

결국 해당 은행에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펜을 잡을 수 없는 경우, 당사자의 의지가 명확하다면 같이 간 대리인이나 보조인이 사인하고 동의한다거나, 같이 손을 잡고 사인을 하는 등의 대안책을 제시했다. 장애인 자신의 의사표명이 분명하면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일부 제도가 개선된 것이다.

B씨는 뇌병변 1급 장애인이다. B씨는 개인적인 일을 보기 위해 필요한 인감증명서를 발급하려고 주민센터를 찾았다. 인감을 등록하려고 하는데, 해당 주민센터 담당자는 인감등록을 해주지 않았다. 장애인이 인감등록하면 타인으로부터 남용될 위험이 있으니 등록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였다. B씨가 어떤 용도로 쓸 것인지 설명했으나 담당자의 거부는 계속 됐고, 결국 화가 난 B씨는 차별상담전화에 도움을 요청했다.
차별상담전화는 주민센터 직원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고, 결국 인감을 등록하고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차별상담전화 2009년 개통

장애인 차별과 관련된 상담전화 ‘1577-1330’은 지난 2009년 개통됐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2008년부터 이 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민간에서 모니터링하자는 목소리가 나와 장애인단체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전국 50여개 장애인 관련 단체가 장애인차별상담전화 전국네트워크 협약식을 가진 후 각 지역별 전화를 받아 장애인 차별에 대한 상담을 시작했다. 국가기관이나 행정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차별상담을 하자는 취지였다.

장애인 차별은 개인 대 개인뿐만 아니라 공권력에 의해 발생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민간단체에서 장애인 차별에 대한 상담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애인들이 차별에 대해 가장 손쉽게 상담할 수 있는 것은 전화라는 부분도 있다.

차별상담전화는 광주시로부터 2010년 예산 1천만 원,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매년 900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광주시는 2016년부터 차별상담전화가 유사중복 사업이기 때문에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용목 (사)실로암사람들 대표
김용목 (사)실로암사람들 대표는 “광주시가 이야기하는 유사중복의 논리는 광주장애인총연합회에서 하는 420전화(1588-0420)와 보건복지부의 129장애인전화, 시군구 행정에서 안내하는 장애인 민원전화와 비슷하다는 것이다”며 “하지만 이러한 전화들은 장애인복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복지제도와 관련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등 ‘복지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주장했다.

복지정보 제공하는 전화와 성격 달라

김 대표는 “차별상담전화는 정보제공에 초점을 둔 전화가 아니라, 명칭에서 나온 것처럼 장애인 차별을 상담하는 전화다”며 “차별상담전화는 전화를 통해 받은 사안에 대해 필요하다 싶으면 직접 개입을 하는 등 단순히 복지정보를 제공하는 전화와 성격 자체가 다르다”고 반박했다.

김용목 대표에 따르면 차별상담전화는 담당자가 직접 상담자를 방문해 만난다고 한다. 상담을 통해 추가적인 역할이나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 부분에 대해 다른 단체나 기관과 연계·연대해 문제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선다.

▲김용목 대표를 포함한 장애인 활동가들은 지난해 12월9일부터 18일까지 광주시청 앞에서 차별상담전화 폐지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인바 있다.
차별상담전화는 2015년 한해 총 249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이중에서 177건이 차별상담이었고, 72건이 일반상담이었다.

정현숙 차별상담전화 담당자는 “차별상담의 경우 장애인이기 때문에 겪은 차별에 대한 실질적인 상담이 이뤄졌고, 문제해결에 대한 활동들이 진행됐다”며 “일반상담도 대부분 활동보조를 신청했는데 잘못돼서 도와달라는 등 장애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상담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차별상담전화 ‘1577-1330’은 전화를 건 곳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연결되게끔 돼있는데, 이런 시스템에 대한 사용료가 있고 전화요금에 포함돼서 나온다”며 “상담하면서 사용되는 식대나 유류대 같은 경우는 예산에 포함돼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용목 대표는 “차별상담전화는 7억 원이 넘는 예산이 쓰인 장애인복지 관련 43개 사업 중 하나였다”며 “900만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우리가 하는 일들이 꼭 필요한 일이고,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행정에서 인정해준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 예산을 없애버린다는 것은 차별상담전화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상처가 컸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광주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장애인 단체의 존재 이유는 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있다”며 “인건비를 주면 하고, 주지 않으면 안 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이 사업(차별상담전화)에 예산을 지원해 온 곳은 광주시 뿐이다”며 “다른 복지를 폭넓게 하려는 것이고, 원래 장애인 단체가 그런 것(상담이나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市, 발달장애인지원센터 통해 차별 보호될 것

차별상담전화가 유사중복 사업으로 예산 지원이 중단됨으로 인해 어떤 다른 사업을 진행하게 되는지에 대해 시 관계자는 “첨단 시민의숲 공원에 시각장애인 산책로를 조성하거나, 중증장애인도 출입가능한 식당을 파악해 앱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며 “장애 당사자들에게 돌아가는 사업을 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또한 차별상담전화를 대신할 장애인 차별을 담당할 수 있는 사업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발달장애인이 의사표현을 못해서 차별이 이뤄지는 것인데,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통해 장애인 차별이 보호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900만원의 상담전화 예산을 삭감해 10억 원의 산책로 조성에 쓰인다는 시의 입장이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사업이 맞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시가 장애인 차별을 보호하는 시설이라고 밝힌 발달장애인지원센터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2016년 예산에 포함돼 있긴 하지만 정확히 언제 만들어질지도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중증장애인 C씨는 차별상담전화 예산지원 폐지에 대해 힘겹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가 차별받거나 곤란한 경우가 생길 때 가장 먼저 생각나고, 하소연할 곳이 차별상담전화인데, 그 루트마저 단절시킨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장애인의 권리를 묵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용목 대표를 포함한 장애인 활동가들은 지난해 12월9일부터 18일까지 광주시청 앞에서 차별상담전화 폐지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인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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