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송곳] ‘올바른 노동운동’을 위한 고군분투!
강추@[송곳] ‘올바른 노동운동’을 위한 고군분투!
  • 김영주
  • 승인 2015.12.10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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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 웹툰 윤태호의 [파인]과 최규석의 [송곳]을 이야기했다. 그 [송곳]을 이번에 JTBC에서 12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서 방영했다. 온 국민이 모두 보아야 할 드라마인데, 시청율이 2%쯤에서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지상파 채널이 아닌 종합편성 채널 방송의 시청율로는 크게 성공한 드라마란다. ) 왜 온 국민이 보아야 할 드라마란 말인가? 
 



지난 50년을 흔히 ‘격동 50년’이라고 말들 하는데, 난 그 말로도 부족하다고 여겨서 “온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졌다.”고 말하기도 하고, 나쁜 어감을 담아서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변화의 정도와 속도는 참으로 엄청나다. 이 ‘엄청난 속도’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난 500년의 유럽문명은 인류역사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런데 우리는 그보다 무려 10배나 빠른 50년 만에 이룩하였으니, 그 엄청난 변화 속에서 다시 또 엄청난 속도로 내달려 왔다.”고 말한다. GNP 1인당 100달러가 2만 달러까지 200배나 뻥 튀었다. 55년~65년에 출생한 우리 ‘베이비 붐’ 세대는 그걸 생생하게 온 몸으로 부대끼며 감당하고 살아왔다. 기적이나 개벽이란 낱말이 있는데, 이 낱말도 그리 적절하지 않다.

“이젠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으로 가야 한다.” 그 열쇠는 ‘경제민주화’이다. 그런데 그게 ‘이명박근혜 정부’로 처참하게 묵사발이 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난 이젠 늦었다고 본다. 너무나 처참하게 뭉겨져 버렸다. 다음 정부가 정권교체를 이룩한다고 해도,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진 수렁에서 허우적대며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 뒷감당하다가 그 죄악의 업보를 모두 뒤집어쓰는 ‘오욕의 정권’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난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패배해야 한다고 본다. 그럼 그대로 폭삭 망하는 꼴을 두고만 보아야 하나? 그렇다. 개선이나 정권교체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폭삭 망한 뒤에, 다시 새로 일어서야 한다.

그 새로운 모색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화두는 ‘복지 민주주의’와 ‘생태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생태 민주주의’는 지구촌 전체의 문제니까, 우선 선결과제는 ‘복지 민주주의’이다. ‘복지 민주주의’의 핵심 열쇠는 ‘경제 민주화’이고, 그 ‘경제 민주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송곳]이 갈망하는 ‘노동 민주화’이다. 지난 80시절 말기에 일어났던 ‘노동 민주화’의 불씨를 잘 살려냈어야 했다. 그 절호의 찬스를, 노동운동 주체가 너무나 추상적 이념이나 방법에 사로잡혔고, 김대중과 김영삼의 통탄스런 잘못으로 불어닥친 노태우 정부의 모래바람이 뒤덮어 버렸다.( 그들의 이 잘못으로 부산과 경남 지역이 ‘우리가 남이가’로 통째로 보수화 되어버린 지난 25년이 지금 이 ‘처참한 묵사발의 원흉’이다. 너무나 통탄스럽다. )

그러니까 ‘노동 민주화’에는 두 가지 커다란 장벽이 있다. 하나, ‘경상도 집단’과 그에 기생하는 ‘충청도 집단과 경기서울 집단’의 잘못된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 둘, 노동운동을 추상적 이념과 방법에서 벗어나 노동 현장의 생생한 현실에 깊은 공감과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것. 누가 이걸 모르나? 그렇다. 그런데 첫 번째 장벽은 도저히 넘어설 수가 없다. 그래서 겨우겨우 생각해 낸 게, 자폭하는 방법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패배해야 한다.” 아니, 그 다음 또 그 다음도.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두 번째 장벽은 어떻게든 넘어서야 한다. 예전의 노동운동은 이걸 ‘회색분자’의 농간으로 매도하였다. 그들이 이제는 이게 ‘회색분자’의 농간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 드라마 11회와 12회에서 이 점을 강조해서 보여준 게, 이 드라마의 화룡정점畵龍點睛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 그걸 [송곳]이 보여주었다. 예전의 경직된 노동운동을 반성하고 실속있는 현실적 노동운동을, 과격한 데모나 딱딱하고 무거운 공부나 강의가 아니라, ‘시시한 노동자들’의 초라하고 짜잔한 행태들 그리고 ‘갑질’의 주체이면서도 도구이기도 한 ‘중간 관리들’의 비겁하고 교활하지만 그들도 어찌 할 수 없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온 국민이 모두 보아야 할 드라마”이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tv/detail/video/view.do?tvProgramId=69141&videoId=71171316-5926025&t__nil_VideoList=thumbnail

웹툰으로도 감동했는데, 드라마론 더욱 감동했다. 좀 더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서 더욱 좋았다. 두 주인공, 안내상과 지현우의 연기력도 좋았지만, 외모도 그 캐릭터에 어쩌면 그렇게도 딱 들어맞는지 . . . . 안내상, 그 동안 여기저기서 만났지만, [송곳]의 노동상담소장 캐릭터처럼 단박에 화악 잡아당긴 건 처음이다. “저 사람이 저렇게 연기를 잘 했나?” 그 무슨 중고등학생 드라마의 학년주임 이미지에만 맴돌았던 내가 미안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작품에선 강렬하게 다가왔다. 눈빛 몸짓 말투 · · · , 모든 게 달랐다. 그보다도 더욱 놀란 건, 그가 ‘광주 미국문화원’에 사제폭탄을 설치한 혐의로 감옥살이를 한 드센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 뒤 끝에 “나도 노동운동을 조금 했지만 실패했는데, 구고신을 연기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그 구고신은 하종강씨를 모델로 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하종강은 “나는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구고신은 최규석씨가 수많은 노동운동가를 치열하게 취재해서 만들어낸 모자이크의 조합이다.”며 최규석의 고생과 역량을 강조했다. 그의 인터뷰도 감동이다. 이 땅에서 노동운동이 얼마나 척박한 고난 속에 오해받고 핍박받는지 구구절절하다. 거기에서 난 ‘올바른 노동운동’을 이룩하는 게 이토록 망가져 버린 우리나라를 그나마 새롭게 일구어낼 가장 소중한 ‘희망의 씨앗’임을 알 수 있었다.
 
<예고편들> http://movie.daum.net/tv/detail/video/view.do?tvProgramId=69141&videoId=71171315-5926025&t__nil_VideoList=thumbnail

우리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이렇게 드라마로 대중화할 수 있는 값진 기회를, ‘노조 없는 기업’의 상징인 삼성그룹과 매우 친밀한 중앙일보 계열의 JTBC에서 최초로 만들었다는 아이러니가 참 슬프다. 이 어려운 작업에 앞장 서 주신 최규석 작가님과 이 드라마의 연출자님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 아래에, 하종강씨의 인터뷰와 안내상씨의 인터뷰를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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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5년 12월 7일 (월) 오후 7시 0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하종강 교수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 구고신, 여러 실존인물들을 모델로 한 인물
- 많은 활동가들 이야기, 최규석에 전했다
- 송곳작가는 완벽주의자, 100명 넘게 노동자 만나
- 참여정부? 당시에도 노동운동 힘들었다
- 송곳 이후, 노동강의하기 수월해져
- 노동소득비중이 너무 낮은게 한국의 문제
- 드라마 '송곳'엔 PPL, 대기업광고 거의 없어

◇ 정관용> 최근에 드라마로 제작돼서 인기와 화제를 모았던 ‘송곳’ 여러분 혹시 보셨나요? 이게 원래 웹툰이었고 이번에 드라마로 제작됐던 건데요. 노동문제, 특히 노동조합과 관련된 이야기를 아주 속속들이 세세하게 다룬 그런 작품입니다. 여기 주요인물로 노동상담소장 구고신 이런 인물이 나오죠. 이 사람이 원래 현재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이시고 또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이신 하종강 교수이십니다. 제대로 드라마에서 그렸는지 확인해보려고요. 저희가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하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하종강>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거 원래 본인을 그렸다는 것 알고 계셨어요?

◆ 하종강> 그렇게 말하기는 좀 어렵고요. 사실 구고신은 한 사람은 아니고 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들을 모은 거지만 여러 사람을 모은 캐릭터거든요.

◇ 정관용> 여러 사람이 하나로 전형화된?

◆ 하종강> 네.

◇ 정관용> 하종강 교수를 보고 그린 것 아니에요?

◆ 하종강> (웃음) 최규석 작가가 이 노동만화를 처음 구상할 때 찾아온 사람이 저였고 그게 2008년 10월이었거든요.

◇ 정관용> 2008년.

◆ 하종강> 제가 날짜도 기억하는데요. 2008년 10월 3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노동만화에 대한 구상을 만나서 많이 했고 저랑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 구고신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제 이름도 끼어서 이야기 할 분이지 사실은 ‘하종강이 구고신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어려워요.

◇ 정관용> 그래요?

◆ 하종강> 그 드라마를 보면 맨 첫 장면이 중국집에서 6개월 동안 일했지만 월급 한 푼 받지 못한 청년배달부 월급을 통쾌하게 받아준 장면 나오잖아요. 실제로 지금도 그 택배노동자노조를 조직하려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는 활동가의 이야기고요. 실제로 제 후배 중에 저랑 같이 잡혀서 고문당했던 후배가 그 고문 후유증으로 심부전증을 20년 뒤부터 앓고 직접 상담소에서 하루에 4번씩 복막투석 해가면서...

◇ 정관용> 투석을 상담소에서.

◆ 하종강> 그러면서 일반노조를 조직한 사람은 지금도 부산지역에서 활동하는 제 후배고요. 제 장면은 데모하다가 잡혀갔을 때 고문하던 수사관이 처음부터 첫 질문이 ‘북한 언제 갔다 왔냐?’ 그런 장면. 그 고문 사이사이에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내가 청평에 있을 때 거기서 수상스키를 잘 탔다’ 그런 것들을 자랑하는 장면. 거기 제가 열심히 이 사람에게 내가 맞장구를 쳐서 좀 호감을 가지게 하면.

◇ 정관용> 좀 덜 맞겠다.

◆ 하종강> 고문의 강도가 약해지지 않을까. 이런 게 정말 절실하게 느껴졌던 이런...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부끄러운 장면 이 정도가 제 얘기고요.

◇ 정관용> 그래요? 본격적인 노동상담소 하시고 이럴 때 이야기는...

◆ 하종강> 상담소도 저도 했죠. 그리고 그 상담소에 구고신과 같은 활동을 많이 했지만 실제로 이수인 씨 역할은 김경욱이라는 실제모델이 있는 거고요.

◇ 정관용> 실제 그 노조를 만들었던.

◆ 하종강> 네, 육군사관학교 졸업하고 장교로 예편했다가 ‘까르푸’라는 대형마트에서 관리자로 일하다가 노동조합위원장까지 했던 실제 인물은 있었어요.

◇ 정관용> 김경욱.

◆ 하종강> 네. 김경욱 씨고. 김경욱 씨가 까르푸에서 처음 노동조합 활동할 때 드라마의 구고신처럼 실제 많은 도움을 줬던 사람은 김재광 노무사를 비롯한 부천 지역의 활동가들이고요. 한 사람은 아니에요.

◇ 정관용> 아. 하종강 교수가 그 김경욱 씨를 직접 도왔던 건 아니고?

◆ 하종강> 그건 사실 드라마나 만화에 나오는 사건 끝난 다음에 김경욱 씨하고 저하고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됐고요. 그리고 김재광 노무사를 제가 그저께도 김포에서 만났어요. 그런 얘기를 하면서 김재광 노무사도 ‘전국에 구고신이 많아’ 이렇게 이야기했거든요.

◇ 정관용> 아, 그래요.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 지금 사람 이름이 줄줄 나오는데.

◆ 하종강> 그러니까 이건 이 사람 얘기고 이 사람 얘기다라는 걸 전체적으로 다 아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은데.

◇ 정관용>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을 작가인 최규석 씨한테 알려준 사람은 하종강 교수잖아요.

◆ 하종강> 제가 제일 많이 얘기했고 시나리오 얘기도 가끔 하고 이러니까 제일 많이 알고 있는 거죠.

◇ 정관용> 작가 최규석 씨는 원래 알던 사이였어요? 아니면?

◆ 하종강> 작품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랬는데 먼저 연락을 했더라고요, 2008년도에. ‘최규석입니다. 그런데 한번 뵙고 싶습니다’ 그분이 그때 ‘100℃’라는 6월 항쟁을 그린 만화를 완성하고 나서 6월 항쟁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들이 그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걸 자기가 완결하지 않으면 다른 작업하기 좀 어렵겠다. 그런데 대부분 6월 항쟁 때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들이 정관용 씨도 마찬가지지만 노동운동 다 한두 번씩 경험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고 찾아왔더라고요. 손문상 화백이랑 같이 왔었는데.

◇ 정관용> 손문상 화백이랑.

◆ 하종강> 일주일에 한 번씩 토요일마다 만나서 몇 시간씩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녹음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최규석 작가가 묻고 싶은 걸 노트에 쫙 적어와요. 10시간씩 얘기를 하는 거죠.

◇ 정관용> 꼼꼼한 취재과정을 겪은 거네요.

◆ 하종강> 그 후에 만난 노동자가 100명이 넘을 겁니다.

◇ 정관용> 본인이 이걸 그리려고?

◆ 하종강> 네. 그 사람이 완벽주의자라서요.

◇ 정관용> 최규석 작가가?

◆ 하종강> 만화에 보면 환경미화노동자들 얘기가 잠깐 나오거든요. 그러면 제 생각에는 그 이야기만 듣고도 충분히 만화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소개 받아서 직접 만나서 청소수거차를 타고 새벽에 나가서 몇 시간을 같이 다녀요.

◇ 정관용> 직접? 말만 듣는 게 아니고?

◆ 하종강> 네. 그리고 진압하러 나온 경찰의 심리를 정확히 묘사하고 싶다. 그러면 경찰을 또 소개 받아서 만나서 몇 시간 동안 술 마시고 밤새 얘기 듣고. 그래봐야 만화에 몇 장면 나오거든요. 경찰 얼굴 두세 장면.

◇ 정관용> 진짜 완벽주의자군요.

◆ 하종강> 그래서 이 만화를 준비할 때 오래 걸렸어요. 그래서 만화 구상이 계속 바뀌었는데.

◇ 정관용> 그러다가 이제 실제인물 한 명을 잡았군요. 김경욱 씨.

◆ 하종강> 김경욱 씨를 만났는데 굉장히 호감을 느낀 거예요, 서로. 책에서의 표현은 노동운동가들은 자기가 이해하기 어렵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김경욱 씨는 충분히 자기가 이해할 수 있겠더라는 거죠. ‘내가 김경욱이면 저렇게 살았겠다. 그런데 나 솔직히 하종강처럼은 못 산다. 당신처럼은. 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못 스리겠다’ 이런 농담도 했고요.

◇ 정관용> 그런데 정작 그 웹툰 송곳은 결말을 못 봤지 않나요?

◆ 하종강> 아직 연재중이고요.

◇ 정관용> 아직도.

◆ 하종강> 드라마는.

◇ 정관용> 그중에 한 부분만 또.

◆ 하종강> 사실 드라마는 아직 만화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까지 앞질러가서 끝났어요. 그 시놉시스만 건너간 상태에서 드라마가 제작됐기 때문에 그래서 마지막에 11회, 12회 정도에서는 약간 사람들이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만화에서는 많이 보완될 겁니다. 거칠게 다뤄지면서 끝난 점이 있거든요.

◇ 정관용> 그러면 드라마가 웹툰의 예고편처럼 그렇게 되는 셈이 됐네요? 이제 앞으로.

◆ 하종강> 네. 감독님이 자기가 이 만화에 대한 팬심으로 이걸 만들게 됐다. 그래서 정말 대사 하나 다르지 않게, 장면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화면으로 옮겼고요. 콘티를 보면 그냥 만화 장면을 콘티에 넣어놓았더라고요. 따로 만들지 않고.

◇ 정관용> 우리 웹툰이나 드라마나 얼마 전 영화 ‘카트’가 나와서 인기를 끌었고. 카트의 감독이 저희 방송에 나왔을 때도 저한테 똑같은 질문을 당했어요. 아니, 너무나 일상으로 우리 주변에 벌어지는 일인데 그걸 다룬 영화라고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게 문제 아니냐. 이런 영화가 수없이 많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 똑같은 걸로. 이런 웹툰, 이런 드라마 진작에 있었어야 하고 지금도 옆에서 막 만들어지고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왜 이런 게 없을까요?

◆ 하종강>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굉장히 특별한 점이 있는데요. 이 만화를 보면 드라마의 첫 장면에도 나오지만 ‘2003년도에 있었던 사건을 실화로 만들어 구성된 작품이다’ 이게 나오거든요. 왜 최규석 작가가 굳이 2003년을 배경으로 삼았을까. 그때가 참여정부 때였거든요. 그러니까 한국 노동운동은 참여정부 때 상당히 힘들었다, 어려웠다. 이런 것을 암시하고 있는 거고요. 노동운동이나 노동문제에 대한 비정상적인 혐오감이 한국사회에 있으니까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거죠. 그러니까 송곳도 보면 웹툰에는 어떤 반응이 많았느냐면 이거 우리 회사에서 똑같은 일이 있었다.

◇ 정관용> 그럼 그게 왜 불편해요? 공감이 느껴지는 거죠.

◆ 하종강> 웹툰에는 불편하다는 반응보다는 너무 똑같다, 이게. 내 얘기 같다. 그리고 마트를 배경으로 선택한 것도 저는 이게 신의 한수라고 표현을 했는데 만약 이게 제조업체, 생산직, 블루칼라 노동자들 이야기였다면 화이트칼라 사무직 노동자들은 남의 일처럼 생각했을 겁니다.

◇ 정관용> 그렇죠.

◆ 하종강> 만약 미생처럼 사무직 노동자들의 화이트칼라들의 이야기이면 생산직 노동자들은 저건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했을 텐데, 유통은 이게 중간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어요.

◇ 정관용> 그리고 모두 가 옆에 가서 보잖아요.

◆ 하종강> 네, 그래서 이게 굉장히 절묘한 선택이다, 이런 생각도 했고. 그 웹툰 게시판에 보면 ‘우리 회사에서 똑같은 일이 있었다’ 이런 반응이 많았는데 드라마에 대한 소감은 너무 똑같아서 불편했다.

◇ 정관용> 똑같아서 불편했다?

◆ 하종강> 네.

◇ 정관용> 그런가요?

◆ 하종강> ‘노동조합을 해보려는 사람들을 강렬하게 탄압하는 게 너무 사실적으로 나오니까 보고 있기가 굉장히 불편하더라’ 이런 반응이 드라마에는 많았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저는 재벌들 집안에 무슨 어머니가 달랐네, 사생아인데 알고 보니 형제였네. 이런 게 더 불편하던데. 그런 드라마는 차고 넘치고 이런 드라마는 없고. 이번 송곳이 계기가 되겠죠?

◆ 하종강> 계속 작은 불씨가 돼서 사람에게 익숙하게 다가섰으면 좋겠는데요. 지금까지 노동문제를 다룬 드라마들은 좀 있었어요. 부분적인 소재도 있었고 전면적으로 미생 같은 드라마도 있었는데.

◇ 정관용> 저는 노동조합운동 이렇게까지 간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요.

◆ 하종강> 최규석 작가가 농담처럼 장그래가 노동조합 만들까봐 보면서 조마조마 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 정관용> 자기가 최초로 해야 하는데.

◆ 하종강> ‘내가 본격적으로 다룰 내용인데’ 이런 농담 우리끼리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물어보니까 윤태호 선배가 그럴 계획은 없다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 정관용> 그렇죠. 노동현장을 좀 얼핏얼핏 다룬 것들은 있죠. 그러나 노동조합운동 이런 건 없잖아요.

◆ 하종강> 그렇지만 사실 그렇게 묘사되는 캐릭터들은 굉장히 거칠고 대화할 때 눈 부릅뜨고 얘기하고 이런 캐릭터들이었잖아요. 그런데 사실 제가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냥 보통 사람들이거든요. 장그래 같은 사람들이 노동조합 만들고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고 최규석 작가도 어떤 표현을 썼냐 하면 ‘송곳은 특별히 뾰족해서 뚫고 나왔다기보다 그냥 구부리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주변에서 다 구부릴 때 자기 혼자 바로 서 있으니까 이 사람이 송곳 같은 존재가 된 것이지 송곳이라고 해서 특별한 존재들은 아니다’ 이런 말을 최규석 작가가 했거든요.

◇ 정관용> 저의 질문과 답변이 상징하듯이 지금 우리의 노동운동의 현실, 드라마에서 최초로 다뤄질 만큼 2015년에 와서야. 참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있고. 그게 왜 안 바뀌고 있나. 우리 하 교수님은 노동운동 근처에서 직접적으로 관련된 걸로 치면 몇 년이죠?

◆ 하종강> 제가 처음 상담 일을 시작한 것이 81년이었으니까요.

◇ 정관용> 그러면 34년이 흘렀네요.

◆ 하종강> 네. 그런데 사실 지금 더 어려워졌죠, 그때보다 많이.

◇ 정관용> 더 어려워졌어요? 조금 좋아진 것 아닙니까?

◆ 하종강> 그러니까 87년 대투쟁이라고 부르는 그 시기 이후에 상당히 노동조건이 향상됐는데 지금은 대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그게 많이 해당되는 내용이고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노동운동은 많이 후퇴했거든요.

◇ 정관용> 그렇죠.

◆ 하종강> 드라마도 보면 구고신이 공장 앞에 길바닥에서 교육할 때 그런 내용 나오거든요. 이제는 한 사람이 벌어서 내 가족 네 명을 다 먹여 살릴 수 있는 이런 시대는 다시는 안 올 것이다. 외환위기 당했을 때 우리가 다 금 갖다 바치고 정리해고 받아들이고 비정규직 다 뽑아가면서 다시 경기가 좋아지면 회복될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 한 번 빼앗긴 권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거 열심히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제가 드라마가 만들어진 다음에 강의하기 좀 편해졌어요. 사람들이 제 얘기 듣는 것보다 드라마의 그 장면 보는 걸 훨씬 더 몰입해서 사람들이 보더라고요. 외환위기 이후에 굉장히 더 어려워졌죠.

◇ 정관용> 그러니까 81년에 시작하셨고 87년 노동자 7, 8월 대투쟁 그때 정말 폭발적으로 분출했고.

◆ 하종강> 그랬죠.

◇ 정관용> 노동조합 조직도 그 이후에 엄청나게 많이 늘어났고. 그러다가 IMF 때까지는 쭉 그나마 성장세였죠.

◆ 하종강> 그렇죠.

◇ 정관용> IMF 이후에 와르르 무너진 겁니까?

◆ 하종강> 거의 재앙처럼 그게 닥친 거죠. 사실은 우리가 그런 외환위기를 겪었던 이유가 양극화의 성장 속에서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구매력을 형성할 수 없는 경제구조 속에서 그 태풍을 맞은 거잖아요. 그래서 사실 그 동안 노동자들의 요구를 정부가 충분히 받아들였으면 우리가 외환위기라는 외풍을 그렇게 혹독하게 겪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인데 오히려 그게 반대로 된 거죠, 한국에서는.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노동자들도 양보해야 하고 목소리를 낮춰야 하고 노동자들이 양보함으로써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처럼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 바람에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그 영향을 미친 거죠, 한국사회에서는.

◇ 정관용> 그때 바로 얼마 전에 새누리당의 서청원 최고위원은 IMF 사태가 당시 노동개혁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했거든요. 그 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하종강> 지금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기업의 이익이 마치 나라 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가 뭐냐면 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데 그중에 노동소득 비중이 너무 낮거든요.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우리 노동소득비중이 너무 낮으니까 자영업자 소득을 노동소득에 포함시키잖아요, 한국정부는. 그래도 굉장히 낮고, 더 심각한 문제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 외풍이 닥쳤을 때 한국경제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고 이런 위기가 항상 있는 건데.

◇ 정관용> 노동소득비중이 낮다는 건 그만큼 내수기반이 약하다는 것이고.

◆ 하종강> 그렇죠.

◇ 정관용> 외풍이 닥쳐서 수출이 안 됐을 때 내수가 버텨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얘기고.

◆ 하종강> 외환위기 때 우리가 어떤 공익광고를 1년 내내 봤냐 하면 여성 코미디언이 100원짜리 동전을 들고 나와서 ‘똑똑하게 소비해 주세요’ 호소하는 공익광고가 있었어요. 허리띠를 허리가 끊어지도록 졸라매면서 너무 절약하면 괴롭습니다.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 정관용> 돈 쓰자는 얘기였죠.

◆ 하종강> 네. 경제위기를 겪고 다 난리가 났는데 오히려 ‘소비해 주세요’ 이런 광고를 정부는 할 수밖에 없었던 거거든요. 그게 한국경제가 그동안 양극화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수출주도형 성장 속에서 생긴 코미디 같은 일이었는데 이 교훈은 여전히 아직도 유효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이 좀 부담이 되더라도 적정한 고용을 유지하면서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올바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경제학 A, B, C를 우리 정책 담당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 거죠.

◇ 정관용> IMF 위기 이후에 지금 말씀하신 그런 광고를 했지만 그러나 위기극복의 방향이라고 하는 것은 힘세고 맨 위에 있는 사람들을 더 살리기 위해서 밑에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이 일단 그 자리를 다 떠나 달라. 해고당하고 이른바 구조조정 되고, 그걸 통해서 비용 줄여서 생존한 기업들은 더 큰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방식.

◆ 하종강> 단기적인 처방은 될 수 있겠지만 그 문제점이 계속 누적되고 있어서 이명박 정부 때 더 심해졌고 그게 박근혜 정부에서 고스란히 그걸 이어받았기 때문에.

◇ 정관용> 지금도 저성장의 기조는 변함이 없는 상황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으로 보여지지 않습니까, 우리 경제는. 그럼 우리 노동운동은 계속 힘들어지는 겁니까?

◆ 하종강> 당분간은 그럴 것 같아요.

◇ 정관용> 당분간이라는 게 얼마나?

◆ 하종강> 노동자들에게 강의할 때 이 시기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안 끝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여기서 어떤 방향의 선택을 하고 노력해야 하는가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며 장하준 교수가 그 책 속에서 보면 친필로, 못 쓰는 글씨로 쓴 글 중에 ‘미국의 노예제도가 철폐되는 데 200년이 걸렸다. 여성이 투표권을 갖는 데 100년 걸렸다’ 이런 거 쓴 것이 있어요. 그러면 노예제도 철폐를 위해서 열심히 활동한 사람 중에 그것 보지 못 하고 죽은 사람 얼마나 많았겠냐고. 그렇지만 그런 노력이 쌓여지지 않았다면 아직도 노예제도가 철폐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렇지만 우리가 계속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 여기서 끝나고 돌아가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잡혀가서 고문당할 걱정을 안 하지 않느냐.

◇ 정관용> 이제는 그런 걱정 없죠.

◆ 하종강> 우리가 여기까지는 왔고 우리 같은 노력이 보이지 않을 뿐이지 계속 사회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장한 얘기를 하면서 강의를 마무리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내용이 드라마 송곳 속에 구고신 대사로 나와요. 그런 부분은 제 얘기라고 할 수 있는 거죠.

◇ 정관용> 그 정도 각오를 하고 죽을 때까지 노동운동이 조금 빛을 발하는 시기를 못 볼 수도 있다는 각오를 임하고 해야 한다.

◆ 하종강>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이 저는 제가 이런 방송에 나와서 이런 얘기를 마음 놓고 하게 된 시기가 제 삶에 이렇게 빨리 올 것이라는 각오는 또 안 했잖아요, 우리가.

◇ 정관용> 하긴 또 돌아보면 그러네요.

◆ 하종강> 그리고 공무원노동조합이 언젠가 생길 것이다. 다른 나라가 다 수십년 전에 했으니까. 그런데 3000명이나 징계를 당하면서 대한민국 공무원이 이렇게 노동조합 깃발을 빨리 들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 정관용> 또 그러네요.

◆ 하종강> 사실 무상급식도 보면요, 무상급식이라는 화두가 우리 사회에 그렇게 급하게 닥칠 거라고 아무도 짐작을 못했습니다, 어느 시민운동가도. 그래서 어려운 시기를 참고 견디면 87년 노동자 대투쟁 같은 시기를 우리가 또 볼 수도 있다.

◇ 정관용>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네요. 우리가 이뤄놓은 것도 생각하면 또 그만큼 많이 있네요.

◆ 하종강> 네.

◇ 정관용> 해야 할 일도 너무나 많지만. 그렇죠?

◆ 하종강> 그래서 그런 것들이 송곳 보면 그 만화, 드라마 대사 곳곳에 사실 녹아 있습니다.

◇ 정관용> 현장에서 그런 문제를 느끼고 정말 오거나이저(organizer)가 되어야지. 심지어 거기까지는 못 한다 하더라도 노동운동을 해야 돼. 이렇게 변하는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있죠?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까?

◆ 하종강> 오늘도 제가 새벽기차를 타고 광주에 가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왔거든요. 나와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여고생이, 오늘은 청소년이 대상이었거든요. 교복 입은 여고생이 제 옆에 오더니 ‘우리 어머니가요, 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 초창기 때 시작하던 분이신데요. 전 그게 굉장히 밉고 싫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강의를 듣고 그게 정말 좋은 걸 알았어요.’ 이걸 막 눈물 그렁그렁 하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런 학생이 조금씩 많아지는 거죠. 계속 그래도 보면. 이게 우리 사회의 희망인 거죠.

◇ 정관용> 송곳 드라마가 그런 사람들을 늘리는 데 기여하겠죠?

◆ 하종강> 할 겁니다.

◇ 정관용> 그렇죠?

◆ 하종강> 삼성에 있던 회사 몇 개가 한화로 넘어갔잖아요. 거기에 노동조합들이 거의 대부분 바로 생겼거든요.

◇ 정관용> 바로 생겼죠.

◆ 하종강> 그런데 노동조합이 생길 때 어떤 일이 있었느냐면 노동조합 만들고 조끼를 처음에 지급했어요. 점심시간에 조끼를 다 착용합시다. 그랬는데 선뜻 그걸 입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겁니다, 처음이니까. 그런데 식당에 점심시간에 여성들이 별로 없는 사업장인데 여성조합원 2명이 그 조끼를 입고 식당에 나타난 거예요. 어떤 남자조합원이 그 사진을 멀리서 찍어서 노동조합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그 남자조합원은 뭐 느끼는 것 없냐고. 그날 저녁에 조끼가 모자랐어요. 그런데 송곳에 보면 노동조합활동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조끼 처음 입던 날에 계산대 밑에서 숨어서 겨우 입고 일어나서 확인해보는 이런 장면 나오거든요. 한 일주일 전쯤에 안산 지역에 가서 제가 강의할 때 그 장면만 같이 봤어요. 그런데 그것 보면서 줄줄 우는 사람 많이 있었거든요.

◇ 정관용> 자기 일이니까.

◆ 하종강> 그러니까 이게 벌써 몇 십 년 전의 일이 계속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 정관용> 어느 곳 현장에선가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죠.

◆ 하종강> 그렇죠. 그래서 이런 것이 작은 불씨가 돼서 우리 사회에 많이 공론화되고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이 좀 피부에 가깝게 닿을 수 있는 이상한 문제가 아닌, 그런 생각이 됐으면 좋겠다.

◇ 정관용> 송곳2, 송곳3 이런 것 빨리빨리 나와야 되겠는데요.

◆ 하종강> 그건 최규석 작가를 빨리빨리 압박해야죠. 너무 힘들어서요, 지금 보면.

◇ 정관용> 아니 최규석 작가 혼자만 쓰라는 법은 없고 다른 작가들, 다른 드라마 연출자들, 다른 영화감독들. 이 방송 들으시면 진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자기 허벅지를 꼬집으며 생각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 하종강> 네. 그런 생각을 저도 하면서. 사실 이번 드라마에 보면 대기업 광고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리고 PPL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드라마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것보다 칭찬을 많이 해야 이런 용기 있는 선택이 앞으로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앞으로도 그런 드라마는 기업 광고 별로 없을 거예요. PPL 잘 안 붙을 거예요.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하종강 교수였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하종강>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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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안내상과의 인터뷰

그는 '송곳 같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물음에 "상식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사진=JTBC 제공)배우 안내상(51)의 말과 몸짓은 평온했다. 지난 18일 늦은 밤, 서울 가산동에서 진행된 JTBC 드라마 '송곳'의 마지막 촬영을 마친 그였다. "이거 하려고 연기했구나 싶다"라는 그의 말에서 평온함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라는 금기의 영역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건 놀라운 사건이죠. 지금 8회까지 방송되는 동안 어떤 제재나 불이익이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좋다' '왜 이제 나왔냐'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동안 많은 발걸음을 해 왔구나'라는 고무적인 생각이 들더군요."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던 드라마 속 안내상의 모습은 현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날이 선 통찰과 엉뚱한 유머를 버무려낸 그의 답변은 '왜 구고신은 안내상어야만 했나'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부당해고를 자행한 사측에 맞서 노동조합을 조직해 싸우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라는, 지금 한국사회 현실을 꿰뚫는 드라마의 중심에 안내상이 서 있다. 공교롭게도 이날 그의 마지막 촬영장은 지난 시절 노동자들의 피땀이 서린 가산동, 그러니까 옛 구로공단 터였다. '안내상은 여기에도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것만 같다'는 선입견은 그의 해학 앞에서 초반부터 여지없이 무너졌다.

"가산동? 여기가 가산동이야? 그것도 몰랐네, 하하하. 촬영하다 보면 그런 걸 느낄 새가 없어요. 자다가 바로 촬영하고, 또 매니저가 차로 실어다 주면 내려서 대본 숙지하기 바쁘거든. 되게 단순한 삶의 반복이죠. 때로는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해요.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웃음)"

안내상이 연기한 부진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은 노무사다. 과거 학생운동과 공장에서의 조직 활동으로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고신은, 그 후유증으로 얻은 만성 신부전증 탓에 하루에 5번씩 신장투석을 한다. 그럼에도 체불·산재·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들 곁에서 그들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도록 늘 함께 호흡하며 싸우고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안내상도 1980년대 학생운동의 한복판에 있었다. 연세대 신학과 4학년이던 지난 1988년 2월에는 광주 미문화원에 사제폭탄을 설치한 혐의로 구속 수감돼 8개월을 복역했다. 출소 뒤에도 1년여 동안 농민·노동 운동에 매진했다.

안내상은 "구고신은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웹툰과 드라마를 통해 구고신을 만나면서 무참히 깨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제 과거 삶이 그랬으니 구고신을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지금 무침히 깨지고 있어요. 저는 구고신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았어요. 길을 몰랐던 것 같아요. 그 점에서는 '왜 그걸 몰랐을까' 후회가 많죠. 예를 들어 좌파, 우파, 극좌, 극우 말이 많은데, 저는 한때 '극'으로 나아갔어요. 비타협적이고 강경했죠. 당시 학생운동을 하지 않던 친구를 인간 취급 안하는 지경까지 갔으니까. '어떻게 이런 불합리한 환경에서 혼자 잘살겠다고 도서관에 처벽혀 있냐'고 나무라는 거예요. 당시 친구들은 그런 나무람에 대해 화를 내지 않고 미안해 했어요. 시대 분위기가 그랬으니까. 내가 최고인 줄 안 거지. 그 친구들을 아우르고 보듬어 안고 사는 게 아니라, 배제하는 삶을 산 거죠."

그는 "구고신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의 삶을 지키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구질구질하고 시시하다고 취급받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이가 구고신"이라는 것이다. "저는 그런 걸 싫어했는데, 구고신은 같이 가는 삶을 선택한 거죠. 그런 삶을 저는 생각도 못해 봤어요. 극으로 향하면 상대를 적, 배신자로 낙인 찍는 등 선명성을 내세울 수 있으니 오히려 편해요. 그러면서 어느덧 세상의 논리에 순응하면서 살고 있네요. (웃음) 구고신의 삶은 당위로서의 삶이 아니에요. '그건 지병 같은 거다. 그냥 앓고 사는 거다'라는 그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삶은 아프고 힘든 삶인 거죠. 어떤 삶이 맞냐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갖고 한 걸음 내딛느냐라는. 결국 구고신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안내상은 '과거 사회 변혁을 위해 애쓴 경험이 현재의 삶을 이끄는 동력이 되고 있냐'는 물음에 "연기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데, 삶의 동력으로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직업이 배우니까요. 학생운동만 한 게 제 인생은 아니죠. 유년기도 있었고, 교회를 열심히 다닌 시절도 있고, 학생운동을 그만 두고 호프집을 했던 삶도 있어요. 다양한 삶의 경로를 거치는 와중에 학생운동이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지, 제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건 아니죠. 지금은 또 전혀 다른 삶을 살고요." 그는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 데 대해 '탈출구' '몸부림'이라는 표현을 썼다. 왜 하필 배우였을까.

"(사회 변혁운동을 그만 두고)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어요. 지치고 우울했죠. 그런 걸 떨쳐 버리려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다시 한 번 세상에 적응하는 기간을 거쳤고, 사람들과 다시 어울리고 싶어지더군요. 우연히 어떤 선배가 '연극이나 해 보라'고 해 연극계에 발을 들였고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웃음) 그렇다고 지금 행복하냐? 그건 또 아닙니다. 제 인생도 한 번은 정리할 시기가 올 겁니다. 예전 같으면 그런 문제제기를 받으면 다 버렸을 텐데, 이젠 안 놓칠 겁니다. 아무리 작은 것도 펼쳐서 자세히 들여다 보면 뭔가 있더라고요. 성찰의 시간을 가질 때가 슬슬 오는 것 같아요."

◇ "구고신이 이상적인 인물이라면, 정부장은 우리 현실을 비추는 거울"

▶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의 대사가 웹툰의 것을 그대로 인용하고는 있지만, 웹툰이 주는 뉘앙스와는 또 다르더라.

= '구고신도 빈틈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의 틀 안에서 고신을 표현하면 적절하지 않을까라는. 저보다는 연출을 맡은 김석윤 감독님의 의향이 컸다. "사람답자" "일반 노무사 같은 느낌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 의향에 따라 '문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고신의 모습'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 가장 인상적이었던 고신의 대사를 하나 꼽는다면.

= 전부 다 인상적이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촬영도 마쳤으니 전체 대본을 앞에 두고 다시 한 번 읽으면서 갈무리할 생각이다.

▶ 극중 구고신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푸르미마트 노조를 억압하는 정부장(김희원 분)이다. 그는 소위 '마름'의 전형으로 다가오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 아픈 사람이다. 구고신이 다소 이상적인 인물이라면, 정부장은 우리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밑바닥부터 열심히 일해서 올라간 자리이니 놓치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인생이다. 지위도 가족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벌지 않으면 가정을 꾸려갈 수 없는 절박한 삶을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부장이라는 위치가 그런 것 아닐까. 아랫사람보다는 윗사람의 눈치를 더 봐야 하는.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문제다.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맞닥뜨리면 죽일 놈이다. 개인을 두고 봤을 때는 또 이해를 안할 수 없다. 이게 딜레마다. 직원들을 해고하라는 윗선의 지시에 이수인(지현우 분)처럼 "불법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현실에서 얼마나 될까. 결국 구조의 문제다. 이를 개인의 탓으로 돌려서 "너는 나쁜 놈"이라고 선을 긋고 배척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드라마를 하면서 동료 배우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모습을 접했는지.

= 아직까지 확인은 못해 봤다. (웃음) 그러나 그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캐스팅이 너무 잘 됐다. 현장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 송곳을 너무 좋아하는 게 보인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변화라는 건 쉽게 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 등을 보면 코믹 연기도 맛깔나다.

= 연극하면서 코미디를 많이 했다. 관객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 즐거웠다. 연구도 많이 했다. 그런데 영화를 하면서는 코미디를 안 주더라. 인상이 지적이라나. (웃음) 그러다 우연히 거침없이 하이킥을 만났다. 코믹 연기는 따로 없다고 배웠다. 연극하면서 아주 잘 배웠다. 코믹 연기도 그 상황에서는 진지했던 연기다. 그러니 코믹 연기를 했다고 말할 수 없다.

▶ 과거 경도됐던 신앙과 마르크시즘은 안내상에게 무엇이었나.

= 다른 것이 아니었다. 옳은 것, 그 길만이 진리라고 믿었다. 결국 진리를 찾아가는 삶이었다. 세상의 근본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니, 그분을 따르고 영화롭게 하는 게 제 인생이라 생각해 목사가 되려 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세상은 물질의 변혁을 통해 새롭게 창조된다는 마르크시즘을 접했다. 그것을 신앙처럼 섬겼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삶'이라고 여겼기에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것이 이도 저도 아니게 됐을 때 길을 잃은 것이다. 섬길 대상이 끊어져 버린 셈이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섬기기에는 너무 힘들고. (웃음) 여기서 나 혼자 먹고 살기 급급한 삶을 선택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내 존재나 생계를 위해서만 사는 게 또 싫더라. 그때 '이제 그만 살아야 하나'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고, 세상과 결별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한 공허함이 제 속에 가득 차 있었다.

▶ 결국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인가.

= 선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람이 선했고,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자도 선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주체, 주인이니까 주인이 주인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너무나 정당한 이야기. 그러면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환상이 너무 컸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 사람이구나. 결국 사람이구나.' 개별 개별의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상처를 얻었다. 물론 구조의 문제처럼 여러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어디서부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 지금은 어떤가.

= 무관심하다. 세상으로부터 귀 닫고 눈 감고 있다. 이제 그 세계는 다시는 나에게 오면 안 된다. 물론 그 시절의 열정과 순수함에 대한 애정이 있지만, 그 세계에 다시 한 번 내 모든 것을 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른 나만의 길을 찾고 있다. 그것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니 뭐라 하지 마라. (웃음). 송곳을 통해 얻은 치열한 고민들이 있다. 그 중심에 사람이 있는지도 고민 중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내 안에서 뭔가가 찾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그것을 밖에서만 찾으려 했다. 내가 바뀌는 과정 안에서 사람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다고 본다.

▶ 사람 안내상은 '꼰대'인가, 아닌가.

=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후진 건 하지 말자는 게 제 삶의 방식 중 하나다. 내가 싫었던 건 남에게 강조하지 말자는 거다. 권위 있는 척하면서 진지함을 강요하는 사람이 꼰대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생각을 남에게 주입하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물론 누군가는 나를 꼰대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꼰대가 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점은 알아 달라. (웃음)

◇ "비상식이 잘 통하는 우리 사회…상식 말하는 순간 송곳이 되는 아이러니"

안내상(왼쪽)이 드라마 '송곳' 촬영장에서 후배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사진= JTBC 제공)안내상에게 '스스로를 노동자로 여기고 있는지' 묻자 표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아니다. 그런 개념이 나에게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솔직히 그 문제로 큰 상처를 얻었고, 많이 아팠어요. 회피가 아니라 너무 아파서 '이제 그만'이 된 거죠.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한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진짜 배가 불러서 그런 지도 몰라, 하하하. 하지만 아파 본 사람은 알 겁니다. 쉽게 활자화 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요. 여전히 노동자는 신성한 존재라고 믿어요. 이 사회를 만들고 사회의 모든 것을 이룩해 놓은 존재, 다시 말하면 천지창조를 한 셈이죠. 그네들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는 것이 죄송스럽습니다. 실체를 들여다 봤을 때는 여러 문제가 발생하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노동자는 이 사회의 주인공이죠."

인간이 지닌 논리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신이 그렇고, 사랑이 그럴 것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다. 안내상에게 노동은 '침묵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함부로 말하고 규정내리는 게 죄라고 생각해요. 옳다, 그르다라고 구분짓는 순간 많은 오해가 생기니까요. 그러한 문제에 대해 쉽게 공론화해서 규정내리려 하는 태도는 오류라고 봐요. 그런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는데도 여전히 반복되는 걸 보면 안타깝습니다. 구고신의 대사 중에 '좀 더 고민해 보시고, 더 고민하다 보면, 더 고민스럽게 되는 때가 온다'는 말이 있어요. '끝까지 고민해 보라'는 그 말이 좋은 이유는 무엇이든 답을 쉽게 내릴 수 없다는 데 있어요. 그럼에도 스스로 '답을 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어리석은 거죠." 그는 "송곳은 결국 인간에 대한 고민을 담은 이야기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인간으로 귀결되는 와중에 노동 문제가 포함 됐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문제제기를 받았어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 갖게 되는 현실과의 괴리감 같은 것도 앞으로 고민해 나갈 문제죠. 지금까지 정신 없이 구고신이라는 인물을 담아내기 바빴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뭔가를 계속 생각하고는 있었죠. 그런 것들에 대해 이제 깊이 고민하고 성과물을 내야할 때가 오는 것 같아요. 뚜렷한 고민거리가 나와서 '이쪽으로 가자'라는 확신이 서면 제 삶을 객관하시키기 위해 일도 멈추고 파고들 생각입니다."

안내상은 '송곳 같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물음에 "상식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평범하지 않을 것을 보고 '평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 비상식적인 것을 보고 '비상식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결국 송곳 아닐까요? 거창한 게 아닙니다. 비상식이 잘 통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상식을 말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송곳이 됩니다. 극중 이수인 과장이 부당해고를 지시하는 윗선에게 "불법입니다"라고 상식을 말하는 순간 송곳이 되는 것처럼요. 치열하게 뚫고 나오는 게 아니라, 내몰려지는 거죠. 상식으로 한 걸음 내딛기 위해 많은 결의와 각오가 필요하다는 화두를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다고 봐요."

현실의 안내상 역시 송곳 같은 삶을 살아 온 인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나는 상식에 무관심해졌던 사람이다. 이번에 반성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너무 지쳐서. (웃음) 세상을 거부하고 있었던 거죠. 나 혼자만의 치열함. '나 들여다보기도 바빠'라는 마음으로 살아 왔어요. 이번에 받은 문제제기는 '그런 네가 누군가의 옆에 있어 줘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런 점에서 송곳은 저를 다시 상식으로 만들었어요. 누군가는 송곳 같은 인간을 '사차원'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삼차원입니다. 이 세상에 정확하게 두 발을 딛고 뚜벅뚜벅 걷는 사람, 험한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거기 길 아니다. 여기 좋은 길 있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이들이 송곳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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