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울게 하소서
가을에는 울게 하소서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4.11.1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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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끝난 들판은 텅 비어 있다. 가을에는 하늘조차도 끝없이 공활하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가을에는 쓸쓸한 기분이 된다. 가로수들은 낙엽을 떨구고, 뭐랄까, 계절이 나를 여기에 두고 어디 먼 곳으로 가는 듯 결별의 아쉬움을 느낀다. 그것을 쓸쓸함이라고 간단히 말할 것은 아닌 듯하다.
기러기들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온다. 철새들의 자리 이동이 시작된다. 새뿐만이 아니다. 이미 숲도 색채를 바꾼 지 오래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흔히 계절의 변화가 가져오는 미묘한 느낌을 잘 모른다. 그저 ‘오늘 비가 오나, 추운가’ 정도만 알면 족하다. 추우면 옷을 두껍게 입으면 된다. 그리고 어제처럼 회사로 간다.

나는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지 계절을 늘 의식하며 산다. 딱히 계절을 의식하고 살아야 할 직업이나 생활이 아닌데도 그렇다. 나에게 계절이란 창 밖에 있는 또 하나의 거처다. 그 집에서 살려면 계절 감각이 필수다.
오늘은 가을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려고 부러 밖에 나가 가을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어디 갈 곳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걷는다. 굳이 말한다면 그것을 나는 계절과 작별하는 의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머리며 옷에 낙엽들이 함부로 떨어졌다가 날아가고는 한다.
가을은 참으로 찬란하다. 그런데 내 마음은 어쩐지 빈 들 같다. 무엇인가 가득해 있던 것이 갑자기 비어버린 듯하다. 어떤 이는 가을에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일조량이 부족한 계절 탓이라 한다. 과학적으로 그렇다나. 뇌가 충분히 햇볕을 쬐지 못해 우울한 느낌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은 한 해의 할 일을 다 이루었다. 계절은 일을 마치고 가는데,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계절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회한에 감겨 쓸쓸해하는 것은 아닐까. 그 편이 더 맞는 해석 같기도 하다.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내려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늦은 가을날이다.
광주 무등산을 보며 반평생을 살았던 김현승 시인은,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가을의 기도 중)

라고 읊었다. 사실 나는 올 한 해 동안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분은 병원 입원 중에도 입버릇처럼 “우리가 참 할 일이 많은데 말야.” 되뇌이곤 했다. 성당의 아는 신부는 성직자 묘지에 나와 함께 갔을 때 묘지 앞 묘석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저 신부는 내 팔년 후배고, 저 신부는 내 이년 후배고..” 그러면서 자기는 작고한 신부들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데도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며 인생을 한탄했다.

나도 한 일이 없다.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가 싶어서 울적할 때가 있다. 이 가을에 더욱 그런 기분이 든다. 가을이 화려하게 이루어놓고 간 뒤에 서서 나는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깊은 회한에 젖는다.
남북을 가로지른 철조망은 그대로 있고, 나라는 여전히 시끄럽고, 사람들 사이는 더욱 사나와졌다. 대선배와 신부의 한탄을 알 것도 같다.
나는 오랜 세월 다른 사람을 위해서건, 나 자신을 위해서건 울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가을에 내 영혼이 쓸쓸해지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 속으로 흐느껴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마른 나뭇가지에 오른 한 마리 새처럼 머물러 보라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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