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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로는 회재 박광옥 선생의 호국 충정을 기리기 위해서 백운동(639-1)에서 풍암지구를 거쳐 농산물 유통단지를 넘어가면 그 유명한 매월동 오리구이 마을이 나오는데 매월동을 지나서 칠석동(950-1)까지 이어진다.
회재 박광옥 선생은 비문에 의하면 조선 중기(중종 21년 1526-선조 26년 1593년)의 성리학자로 나주목사 등 관직을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병활동을 했다. 회재 박광옥 선생의 유허비가 있고 그 유허비에는 전평제라는 이름이 나온다.
대동고 쪽에서 목교를 건너서 첫 정자가 있다. 그곳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일행 3명(50대 남자 2명, 50대 여자 1명. 매월동 거주)에게 저수지 이름을 물어봤더니 “매월저수지, 또는 매월연방죽”이라고 대답했다.
수월당에서 아코디언을 즐기며 5명(남자 1명. 여자 4명)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저수지 이름을 물어봤다. 아코디언을 즐기는 여인(50대)은 “연방죽 아닌가요?” 하며 확실한 답변을 못 했다. 그 외 여인들도 “매월동 저수지” 또는 “매월지”라고 답을 했다.
전평제는 회재 선생이 43세 때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기 위해서 방죽을 막았다. 그 방죽에는 인공섬을 만들어 수월당을 짓고 고봉 기대승과 성리학을 연구했다.
전평제의 명칭이나 유래를 모르는 것은 역사적 유적지이자, 광주 서구의 관광명소로 알 수 있도록 “교차로 교통표지판”에 명기하고 회재로에서 매월동 전평제 입구에 표지석을 세워 유적지에 관한 내용을 알렸다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평제는 역사적 유적지이자, 회재 선생의 애국충정을 기린 유허비가 있는 유적지이므로 관광명소답게 서구청의 많은 관심과 관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