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릴레이95] 사람이 ‘희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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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05.14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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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 전라북도지사 김동수 회원홍보팀장

대한적십자사는 재난이 발생한 곳에 항상 먼저 긴급구호 지원을 한다. 전쟁터에서 적군과 아군의 구별 없이 부상자들을 구호할 목적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인도주의 사상과 생명을 매우 중시 여긴다.

그러한 대한적십자사에서 2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근무해온 김동수(50)씨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어린 학생들의 생명을 빼앗아간 세월호 사고 직후에도 현장에 바로 구호활동을 나갔다.

세월호 현장, 긴급구호활동으로 유가족 아픔 함께해

사고 첫날의 유가족들은 희망이라도 갖고 있었지만 26일 지난 이후에는 절망으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수많은 봉사단체와 수천 명의 봉사자들이 몰렸던 장소인 만큼 역할분담을 해주는 역할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어 유가족의 심정과 같은 마음이라던 김 씨는 “식사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구호급식차량과 함께 현장에 도착했지만 체육관에 계신 유가족들은 식사 마저도 거르고 계셨다”며 “안타까운 마음에 체육관으로 들어가 직접 끼니를 가져다 챙겨드렸지만 차마 눈을 마주치기도 너무 죄송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지난 2013년 광주시 재난피해자심리지원센터장을 지냈던 그는 “미국의 경우 9·11테러 이후 국민들의 심리적 치료를 위해 국가가 수천억의 예산을 쓰고 있다”며 “현재 우리 정부도 유가족들은 물론 지금부터는 생존자, 동료, 일반 국민들까지 외상 후 스트레스를 관리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어린 시절 유복하기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 자라온 그는 행정학을 전공했었다고 한다.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검사가 되는 것처럼 행정고시를 보고 출세를 할 생각을 했지만 군 제대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전역 이후 김 씨는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이후 나에게 맞는 일이 아니구나 생각으로 더 공부를 하고 적십자사에 입사를 해야겠다 생각했다”며 “사회정의를 위해서 정책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직접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혜자 삶 변화시키는 봉사 하고 싶어

그는 지난 1992년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에 입사하고 2014년부터 전북지사에서 회원홍보팀장을 맡고 있다. 그렇게 김 팀장은 2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늘 봉사현장에서 지내면서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왔다.

또한 수년 동안 봉사자들을 만나고, 수혜자들을 만나 봤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겪어왔다. 한 사례로 한쪽 팔이 없는 외팔이 50대 남성이 파지를 주우면서 번 돈을 10년 동안 무기명으로 기부하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늘 수백 명의 봉사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간혹 그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이나 욕심으로 갈등을 발생하기도 하는 게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김 팀장은 봉사자들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서도 중재 역할까지 도맡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보통 봉사는 ‘나도 할 수 있겠지’라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어영부영하는 부분이 아니다”며 “사람은 전부 성격과 생각이 다르다 보니 봉사 분야에 따라 ‘어떤 봉사는 봉사가 아니다’라는 등 표현이 잘못되다 보니 왜곡되어 비춰지는 경향도 있다”고 설명한다.

앞으로도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을 발굴하는 게 목표라는 김 팀장은 “봉사를 통해 수혜자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봉사를 하고 싶다”며 “기회가 되면 나중에 외국이나 동남아 지역에 어려운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나눔 모금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미래 모습을 그려나갔다./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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