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릴레이92]봉사의 버팀목, 하늘에 계신 어머니
[칭찬릴레이92]봉사의 버팀목, 하늘에 계신 어머니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04.23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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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웨딩연합회 협동조합 이은수 대표이사

“봉사를 한다는 자체보다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2년 전 소·상공인 살리기 위해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처음으로 웨딩협동조합을 만든 이은수 (43)씨. 2006년부터 웨딩컨설팅 일에 뛰어든 그는 지난 2013년 8월 광주웨딩연합회 협동조합을 만들어 대표이사를 맡았다. 요즘 이 대표는 다문화가정 무료 합동결혼식 등 웨딩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웨딩사업으로 '다문화가정' 결혼식 후원

광주웨딩연합회 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경제적 환경이 어려워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다문화가정, 시골 어르신들을 위해 결혼식 사진촬영, 웨딩 앨범 제작 등을 해드리고 싶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는 것이 봉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웨딩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대표는 7~10개 정도의 다양한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한다.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모임 활동 외에도 한 달에 30여만 원 정도를 여러 곳에 나누어 봉사활동 후원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가 봉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머니’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무렵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어린 나이에 병수발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그의 어머니는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대학생인 누나와 군 생활을 하고 있는 형이 있었지만 집에 항상 남아 편찮으신 어머니 곁을 지켰다. 하지만 한창 사춘기를 겪고 지낼 나이인 17살 나이에 결국 어머니를 여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어린 나이에 병수발을 하면서 친구도 만나고 싶고, 밖에 나가서 놀고도 싶어서 화를 내본 적도 있었다”며 “하지만 돌이켜보면 불편하신 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면서 방황을 하지 않은 버팀목이 될 수 있었고, 요양원에서 봉사를 하면 어머니가 생각에 힘들어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어머니 생각에 시작하게 된 봉사활동

군 시절 운전병을 했던 이 대표는 군 생활 도중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브레이크 파열로 인해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길에서 멈출 수 없게 되면서 평지까지 내려오게 된 사고가 발생했다. 짧은 순간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어머니 얼굴부터 시작해서 검은 필름이 눈앞에 지나갔다고 한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정말 필름이 지나가면서 죽는 순간이 이렇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먼저 가신 어머니가 살려주신 것 같다”며 “그때부터 남에게 베풀고 살아야 하지 않나 싶어 봉사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1992년 군 생활 당시 강원도 꽃동네에서 처음으로 봉사를 접하게 됐다. 그곳에 생활하는 분들은 몸이 불편한 노인, 지체 장애인 등 타인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산골에 위치한 보호소 같은 곳이었다.

그는 제대 이후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임을 통해 크고 작은 봉사활동을 이어나갔다. 수많은 봉사를 하면서 한번은 몸살감기로 몸이 아팠지만 요양원으로 목욕봉사를 나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내 감기 때문에 목욕시켜드리는 분이 행여나 감기에 걸리실까봐 마스크를 착용하고 씻겨드렸는데 냄새가 나서 그러는 거 아니냐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며 “목욕을 시켜드리면서 사실을 털어놓고 나니 그분은 손을 놓지 않으셨고, 나중에 사진을 보고 나서 활짝 웃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 뿌듯했다”고 떠올렸다.

현재 그는 광주마중물봉사대 회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광주웨딩연합회 협동조합에서 다문화가정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봉사라는 게 현장에서 손으로 끝까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심이 없고 마음이 없는 사람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며 “사람들이 바쁘더라도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봉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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