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추석 달 바라보기
고향에서 추석 달 바라보기
  • 문틈/시인
  • 승인 2013.09.1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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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 일어나 기차표 예매를 하려고 서둘렀다. 그리고 인터넷을 열고 모든 준비를 해놓고 개시 시각 6시가 되자 1초도 지나기 전에 키를 눌렀다. 그런데 바로 예매가 되지 않고 화면에 떠오른 것은 7만8천여 명이 대기 중이라는 안내였다.
한참을 기다리자 다시 입력하라는 화면이 떴다. 이번에는 30만여 명이 대기중이라는 표시다. 나는 몇 번 더 해보다가 포기했다. 그리고 화가 나기보다는 대체 이것이 무슨 수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명절은 수십 년 전부터 서울 등 도시 사람들이 시골 특히 농촌으로 찾아가는 민족 대이동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는 바다. 한데 누구를 놀리는 것도 아니고 턱없이 부족한 차량을 마련해놓고 로또 식으로 예매를 하라니 이 무슨 국가가 하는 일이 이렇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갈 사람은 모두 편하게 가게 해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모든 귀성객들을 다 기차로 실어갈 수 있게 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뭐 자가용을 몰거나 버스를 타거나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교통편으로 수용이 안되는 사람들은 천상 기차로 편의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적어도 교통 수요가 폭발적으로 많은 추석이나 구정 명절 같은 경우는 기차표 예매뿐만 아니라 버스, 비행기. 기차 등의 예매를 함께 시작해서 그러고도 남는 수요는 특별 열차나 버스를 증편해서라도 고향에 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고작 전체 수요의 몇 퍼센트밖에 안되는 표를 놓고 새벽에 일어나 부하가 심하게 걸린 컴퓨터로 조작해서 예매 신청하라니 국민을 가지고 국가가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명절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 우스꽝스러운 작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차라리 그도 못하겠으면 전란 때 기차 지붕에 들러붙어 피난 가던 것처럼 기차지붕을 제공하던지. 선진국 반열에 들어갔다느니, 오이시디 국가에서 몇 번째라느니 이딴 허튼 소리 집어치우고 명절날 귀성객이 죄다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조치해주어야 한다. 도대체 서울에서 부산까지 아홉시간 걸린다, 이것이 무슨 제대로 된 나라에서 벌어지는 행태란 말인가.
이런 코미디는 늘상 그래왔으니 그러려니 당연시하고 있는 것이 국민이나 당국의 시각인 것 같다. 나는 다음 번 대통령 선거 때는 복지니, 통일이니, 군복무 감축이니 하는 허튼 소리하는 후보는 제쳐두고 명절 때 귀향을 편하게 하겠다고 하는 자에게 투표를 하고 싶다. 그것을 실행하는 후보라면 큰 국가정책도 친국민적으로 잘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추석에 어떻게 고향에 갈 것인지, 하고 나는 지금 한 걱정이다. 차라리 몇 날 며칠이 걸리든 도보로 갈까, 끔찍하게 하루 종일 달리는 버스에 다리 오그리고 가는 고행은 절말 인간으로서는 못할 것만 같다.
메뚜기 이마빡만한 땅에서 명절 때 고향 가는 교통편 때문에 속을 끓이다니, 고향에 가서 조상께 성묘하고 가족들과 만나 송편을 먹고 당산나무 위로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보고 싶은 이 소박한 염원이 교통편 때문에 헝클어지고 있으니 어디 가서 호소할 데도 없다.
누렇게 나락이 익은 황금 들판, 토실토실 영근 햇밤, 능금, 복숭아 그리고 온 가족 앞에 둥두렷이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살아 있음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데 교통편이 말썽이로다. 이 나라가 선진국이 되면 이런 일이 없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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