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단상 ⑪ 육법(六法) 위에 무법(無法)이다
5월 단상 ⑪ 육법(六法) 위에 무법(無法)이다
  • 김상집
  • 승인 2013.07.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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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집

우리 가족은 시청 지하실에서 나와 호송차에 실렸다. 차로 이동하는 중에 형수님이 몸은 괜찮냐고 물었을 때는 걱정하실까봐 ‘네’ 하고 겨우 대답했지만 사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게 하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어느 군부대 건물에 들어섰는데, 방안에는 중령이 있었다. 그 중령은 가끔 우리 가족을 돌아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없었고 가끔 보초가 방안을 들락거리며 우리를 감시했다. 얼마 뒤 해질 무렵 우리를 호송했던 사복 차림들이 다시 나타나 우리 가족을 차에 태웠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505 보안대였다.
그때에야 사복 차림들이 보안사 요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보안사 놈들이 계엄군을 지휘하여 녹두서점 일대를 포위하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몽땅 잡아들인 다음 우리 식구들만 분리하여 보안대로 압송해 온 것이었다.
보안대에서 보니 이미 27일 새벽 도청 지도부가 끌려와 종일 고문을 당하며 취조를 받고 있었다. 505 보안대 지하실은 끌려온 사람들로 넘쳐나 우리 녹두서점 식구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우리가 갇힌 방은 상병 하나가 지키고 있었는데, 가끔 사복 차림의 험상궂은 녀석들이 살펴보고 갔다.
나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으나 형수님과 형수 동생 분이 몹시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포로가 된 몸으로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으랴. 놈들은 가끔 들락거리며 자기들끼리 “어쩌지, 아직 멀었는데” 하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아마 지하실에 있는 도청 지도부의 조사가 어느 정도 끝나야 우리 순서가 되는 모양이었다.
피를 말리는 대기 상태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 다른 방에는 홍남순 변호사도 계셨다고 한다. 홍남순 변호사는 무릎을 꿇리고 두 손과 엉덩이를 들고 벌서게 했는데 왔다갔다하던 수사관 중 한 녀석이 홍 변호사님에게 “야, 네가 육법전서에 통달했냐? 임마 나는 칠법에 통달했다. 육법 위에 무법이다.”라고 하더란 것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어느 녀석이 들어서더니 “야, 안되겠다. 영창에 쳐 넣어 삐라!” 하고는 나가 버렸다. 우리 가족은 한밤중에 지프에 실려 상무대 헌병대로 옮겨갔다. 그리고 형수님과 헤어졌다.
헌병대에 끌려와 신원 확인이 끝난 다음 다시 연병장으로 끌려나와 작신작신 두들겨 맞았다. 연병장에서는 아예 작심하고 패는 것 같았다. 엉덩이와 허벅지를 번갈아 패는데 천천히 몽둥이를 하늘높이 치켜 올린 다음 힘껏 내리쳤다. 그렇게 끝도 없이 내리쳤다. 엎드리지 않으면 머리고 팔다리고 무자비하게 난타하였다.
세워 놓고 몸무게를 실어 가슴과 배를 뻥 뻥 차면 그대로 뒤로 나뒹굴어졌다. 그러다 잠시 ‘엎드려 뻗쳐’를 하며 쉬려나 싶었는데, 웬 공수 녀석이 나타나 일으켜 세우더니 가슴과 배를 샌드백 치듯 신나게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자기 전우가 진압 중 죽었다면서 두들겨 패는 놈의 눈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사복 차림의 수사관이 그만 두라고 말했지만, 매를 든 공수 놈은 대꾸도 않고 우리를 팼다. 헛바람에 술냄새가 훅훅 내 얼굴로 끼쳐왔다. 그는 도움닫기로 뛰어올라 군화발 뒷꿈치로 내 등짝을 힘껏 내리찍었다. 아마 내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내가 몇 번 나둥그라지자 사복수사관이 그를 제지했다. “야, 그만 하랬잖아. 계속 수사 방해할래?” 사복수사관이 왼쪽 겨드랑이에 있는 권총에 손을 대고 눈을 부라리자 그제서야 공수 녀석은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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