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교육지표’ 선언 35주년 기념식 참관기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 35주년 기념식 참관기
  • 안길정 작가· 한국사연구자
  • 승인 2013.07.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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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육지표’ 선언 35주년 기념식이 지난 6월 27일 관계자 및 내빈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남대학교 안에 있는 용봉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주관처는 전남대 5·18연구소와 우리의 교육지표기념사업회였다. 기념식은 모두 3부로 이루어졌는데, 1부는 기관장들의 기념사· 환영사· 축사로, 2부는 3명의 발표로, 3부는 만찬으로 꾸려졌다.
1부는 국민의례와 민주영령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했다. 내빈 소개는 당시 시위조직자인 정용화 교육지표기념사업회장이 하였다. 주요 내빈으로는 당시 서명교수 11명 가운데 작고하신 성내운· 배영남· 명노근· 이방기· 김명수· 이석연 교수와 정양중이신 송기숙 안진오 교수를 제외하고, 김현곤· 이홍길 교수가 참석하였고, 참여학생 쪽에서는 작고한 전남대 6·29시위 주모자 노준현의 누님·동생인 노영숙·영희 자매, 그리고 당시 조선대 구속학생으로 작고한 김용출의 아버님이 참석하였다. [사진1]
기념사에서 홍성흡 5·18연구소장은 ‘우리의 교육지표’는 폭압적인 유신체제의 교육 이데올로기를 근원에서부터 비판한 것으로, 지식인 집단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무를 되새기게 한다고 말하고, 앞으로는 세미나를 곁들여 유신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후배들도 이 선언의 내용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2]
뒤이어 영상 환영사에서 지병문 전남대총장은 타계하신 교수들을 일일이 거명하고, 정양 중이신 두 교수의 쾌유를 빌었다. 이어 장휘국 광주시 교육감은 축사에서 이 선언이 지니는 실천적 의미와 교육적 가치를 조명하였다. [사진3]
2부는 ‘우리의 교육지표’의 역사성· 현재성을 조명한 연구 발표였다. 단상이 정비되고 3인이 등단했다. 첫 발표자 박병기 전남대 철학과 연구교수는 ‘우리의 교육지표’가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을 어떻게 비판하였고, 그것이 지니는 현재적 가치는 무엇인지를 요약 제시했다.
발표자는 국민교육헌장이 ①일본제국주의의 교육칙어를 연상시키고, ②전체주의와 복고주의 색채가 강하며, ③능률주의와 권력에의 순응을 조장하고, ④민주주의보다는 반공주의를 앞세우고 있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제정과정을 보면,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1월 18일 대통령이 문교부장관에게 지시함으로써 착수되었고, 박종홍(청와대 특보)· 이인기(서울문리대 교수)· 이은상을 중심으로 이선근·이병도 등 각계 인사 44명이 대거 동원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사실상 유신체제의 철학적 기초이자 전주곡이었다고 평가하였다.
다음으로 이홍길 전남대 명예교수는 ‘교육지표 사건을 통해서 본 박정희’를 발표하였다. 박정희는 어린 시절 자아가 강한 과묵한 소년이었으며, 별명이 악바리 대추방망이였다. 박정희에게 식민지 조국, 고향, 아버지는 트라우마의 원천이었지 결코 지향할 모델이 될 수 없었으므로 그는 자발적으로 황민화 체제에 편입하였다. 어린 시절 각인된 트라우마는 ‘독살스런’ 유신통치를 준비하는 성격적 요인이었다고 분석된다. (대추나무는 박달나무만큼이나 단단하여 도장을 새기거나 다듬이 방망이를 만드는데 쓰인다. 대추나무방망이란 성질이 모질고 단단한 사람을 일컫는다.)
마지막 발표로, 문승훈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지도위원이 긴급조치 재심경과를 보고하였다. 이에 따르면, 지난 3월 헌법재판소에서 긴급조치 1·2·9호의 위헌결정이 내려진 이후, 이 지역 관련자 50명 가운데 24명이 우선적으로 민·형사 소송을 청구했으며, 무기정학 등의 징계를 받은 학생 9명도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보상청구자들은 수령액의 5% 이상을 공익재단에 출연하여, 민주화를 위한 사업과 부조를 실행할 예정이다.
[사진4: 3인의 발표]
참관자는 기념식을 치르면서 생각했다. 오늘의 30대 이하 세대들이 긴급조치 시절의 ‘독살스러움’을 상상할 수 있을까? 1972년 10월 국회는 해산되고, 비상계엄이 선포된 가운데 모든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다. 국회 대신 비상국무회의가 헌법개정안을 의결하였으며,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1/3을 임명하고 유정회라 하였다. 새 대통령은 체육관에 모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되었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박탈되었으며, 위반자는 영장없이 체포되었다. 학원에서는 학도호국단 아래서 유신헌법을 이수하고 병영집체훈련을 받아야만 졸업이 가능했다. 길거리에서는 ‘초전박살’ ‘멸공’ ‘총화유신’의 구호가 넘쳤다. 일인 종신집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여차하면 전쟁이 터질 듯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올 10월이면 그런 칼바람이 부는 유신체제가 성립한지 41주년이 된다. 그 체제의 철학적 기반을 흔드는 교육지표 선언이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에 있었다. 권력의 남용과 헌법 체제를 유린하는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오늘, 민주주의를 온전히 세우려는 사람들의 열망이 커지고 있다. 교육지표의 정신이 실천적 가치로 각인되어 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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