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탄 피우는 법
번개탄 피우는 법
  • 문틈/시인
  • 승인 2013.06.0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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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번개탄은 연탄을 피우기 위해 만들어진 보조탄이다.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신경을 썼던 시절 번개탄은 요즘말로 창조경제로 칭할만한 혁신제품이었다. 연탄은 아래 연탄이 꺼지기 전에 올려놓아야 위 연탄에 불이 연명되니 어디 나갔다가도 늘 연탄불이 신경 쓰인다.
그런데 번개탄이 발명되면서 그런 걱정을 덜게 되었으니 번개탄은 정말 대단한 물건이다. 이런 번개탄이 전기 만능 시대에도 살아남아 아직도 연탄을 때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신문에는 이따금 번개탄을 피워놓고 누가 생활고로 자살했다느니, 주식투자 실패로 목숨을 끊었다느니 하는 기사가 나온다. 번개탄이 원래의 사용목적에 반하여 엉뚱한 데에 쓰인 나쁜 사례다. 번개탄을 피워놓고 번개처럼 사라지는 목숨들이 슬프고 안쓰럽기만 하다.
그런데 그 기사는 너무나 자세해서 차 안의 창문 틈을 테이프로 다 틀어막아놓고 수면제나 술을 진탕 마시고 신문지를 불쏘시개로 번개탄에 불을 붙여 번개탄에서 뿜어 나오는 가스를 들이마시고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을 자세하게 써놓고 있다.
사실 나는 번개탄으로 자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신문을 보고나서야 알았고, 차 안을 밀폐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테이프가 필요하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번개탄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손쉽게 불을 붙일 수 있고, 그리고 손쉽게 생명을 버릴 수 있다는 것도 신문이 알려준 것이다. 신문은 자살 기사를 왜 그토록 마치 미술대학생이 세필화를 그리듯 자세하게 보도하는 것일까.
자살 방법을 가르쳐 주기라도 하는 양 친절하게 세세히 소개한다. 마치 백김치 제조법을 가르쳐주기라도 하듯 말이다. 그냥 생활고로 죽었다고 보도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면 국민의 더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까. 남의 자살기사를 자세하게 보도해야 할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하여튼 번개탄은 신문보도에 의하면 확실히 자살자들에게는 연탄보다는 간편한 도구가 될 성싶다. 신문이 이런 보도를 하고 나면 한동안 번개탄을 이용해서 죽는 자살자들이 잇따른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신문을 자살 방조자로 몰아가려는 것은 아니다.
신문은 사회가 어찌 되든 독자를 끌려고 선정적이고 충격적인 기사를 싣는다. 그래서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알지 못해도 상관없는 기사를 국민에 널리 알리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죽기로 하면야 번개탄만 있겠는가마는 번개탄 이용법은 아무래도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것은 너무 쉽게 불이 붙어 자살을 결행해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틱 낫한 스님은 자살에 대해 “강렬하게 일어나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것”이라며 “하나의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 우리는 그 감정보다 훨씬 큰 존재다. 왔다가는 사라지는 그 감정에 따라 왜 우리 자신을 죽여야 하나?”라고 반문한다.
나는 그 분의 말씀에 큰 위로를 받았다. 그렇다. 바람이 불 때 호수에는 물결이 일지만 그 바람이 지나가면 호수는 잠잠해진다. 지나가는 감정에 자신의 전 존재를 맡길 일이 아니다. 자기 마음 바깥으로 나가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단박에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번개탄은 마음에 일어나는 순간의 감정에 불을 붙이는 것치고는 너무 쉽게 생겨먹은 물건이다. 신문지 같은 것으로는 불붙이기 어려운 번개탄이 새로 나와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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