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법(守法)과 범관(犯官)
수법(守法)과 범관(犯官)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3.04.0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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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인류가 문명사회를 유지해오면서 발견한 가장 큰 지혜 중의 하나는 법(法)이라는 제도를 창안한 일입니다. 유사 이래 통치의 기본 원리는 법을 지키는 일이요, 법에 의하여 사회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산도 “무릇 국법에 금하는 바와 형률(刑律)에 실려 있는 것은 마땅히 조심조심 두려워하여, 감히 함부로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凡國法所禁 刑律所載 宜慄慄危懼 毋敢冒犯:守法)”라고 『목민심서』에서 밝혔습니다. 그런데 다산의 지혜가 여기에 머무르고 말았다면, 국가통치의 당연한 원리여서 새삼스럽게 언급할 이유도 없습니다.

다산의 더 나아간 지혜가 너무 훌륭해서 또다시 언급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결같이 곧게 법만 지키는 일이 때로는 너무 구애받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다소의 넘나듦이 있더라도 백성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옛사람도 역시 더러는 변통하는 수가 있었다. 요컨대, 자기의 마음이 천리(天理)의 공변됨에서 나왔다면 법이라고 해서 얽매어 지킬 것이 없으며, 자기의 마음이 인욕(人慾)의 사사로움에서 나왔다면 법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라고 위의 원칙을 제대로 풀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다시 설명하면 법만 지키는 일에 구애받다 보면 세상에 그르칠 일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법을 융통성 있게 해석하여 나오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야지, 법만 묵수하다가는 민생(民生)이나 인권(人權)에 막대한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권위주의적 독재시대에 ‘법대로’라는 말이 우리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얼마나 괴롭히고 침범했었나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산은 더 부연합니다. “법을 범하여 벌을 받는 날에,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봐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 범한 것이 반드시 백성을 이롭고 편하게 한 일이니, 이 같은 경우는 법의 적용에 신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利)에 유혹 되어서도 안 되며, 위세에 굴해서도 안 되는 것이 고위공직자의 도리이다. 비록 상사(上司)가 독촉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守法)라는 대목은 법집행과 행정수행에 지켜야 할 도리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법에 어긋난다고, 행정지침에 어긋난다고 법대로만 해야 한다고 권력을 동원해 강제집행 하다 보면, 하소연할 지위와 능력도 없는 백성들의 딱한 사정들은 어떻게 해야 권력자들에게 전달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요즘 새 정권이 들어선 뒤, ‘법대로’라는 유행어가 등장하면서 권위주의 시절의 모양새가 나타나는 부분이 있어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다산의 지혜는 또 있습니다. 수법(守法)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잘못하는 관(官)에는 언제라도 범관(犯官)을 하라고 주장합니다. 관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반복하는 이유는 관의 잘못에 백성들이 제대로 항의하고 따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없는 백성들도 보다보다 못하면, 기다리다 지치면 관의 잘못에 범관을 서슴지 않을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제발 법을 융통성 있게 집행하고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삼가 주셔야 할 것입니다. 다산의 지혜에서 배워야 할 일이 많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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