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과 대학 자율성의 위기
반값등록금과 대학 자율성의 위기
  •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 승인 2013.03.0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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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사학하면 비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사립대학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도 언론도 기업도 사립대학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1980년대 이후 대학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과정에서 대학답지 않은 대학들이 난립된 것이 사립대학의 비리와 질 저하를 초래했다. 1960년대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6%에 불과했고, 1970년대 말에도 28%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80%를 넘어 세계 1위가 되었다. 이렇게 난립된 많은 사립대학들이 이제는 등록률 50%를 넘기지 못해서 교육부에서 대학 구조조정을 하려고 하는 부실사립대학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정치권과 교육당국이 대학의 난립을 조장하고 나서 이제 부실 사립대학을 구조조정하면서 세계 경쟁력을 갖춘 사립대학에 대해서도 같은 규제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등록금 인상규제로 인해서 같은 정원에 교수 숫자가 세배 이상 차이나고 교육여건이 현저하게 달라도 사립대학들 간에 등록금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획일적 반값등록금 열풍으로, 재정위기에 몰린 대학가

정부가 나서서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겠다는 반값등록금 이슈가 대학가를 흔들고 있다. 유럽과 같이 대학을 사회의 공공재의 개념으로 보고 정부가 전적으로 재정지원을 하면 모르지만 정부지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에게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라는 것은 교육의 질을 낮추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전체 대학예산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에 불과한 대학이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대학을 불문하고 정부가 일률적으로 반값등록금을 유도하고 있어서 우수 사립대학의 재정은 심각한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아무리 재정압박이 있어도 공무원들의 봉급은 최소한 물가인상률만큼은 인상되지만 지난 5년간 대부분의 사립대학에서는 봉급이 거의 매년 동결되었다. 대학등록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속에서 봉급을 인상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사립대학에서는 학생들 등록금부담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교수들이 봉급에서 장학금을 위한 기부금을 각출하기도 했다. 게다가 관리비 절감을 위해 겨울에는 실내온도가 20도가 넘으면 난방이 자동 차단되고 여름에는 28도 넘는 찜통더위도 견디어야만 한다.

재정위기보다 더 심각한 건 대학의 자율성이 문제

하지만 재정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대학 자율성의 위기이다. 반값등록금 열풍으로 지난해 사립대학에 대한 교육부와 감사원의 대규모 감사가 있었고 교육당국의 사립대학에 대한 규제는 더욱 심해졌다. 올해에는 대학회계의 투명성이라는 이유로 교육부의 기준에 맞추어 대학의 예산비목까지 획일적으로 변경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게다가 대학인증평가를 통해 우리나라 대학을 일정한 기준으로 줄세우기를 한다. 많은 평가항목 가운데 예를 들어 전체 개설되는 강의에서 학생수가 20명 이하가 되는 강의 비율은 25% 이상이 되어야 하고 100명이 넘는 강의비율은 2.5% 이하가 되어야 한다. 즉 100개의 강의가 개설될 때 3개 이상의 강의에 학생수가 100명이 넘으면 그 대학은 대학인증평가에서 나쁜 평가를 받게 되고 그러면 교육부는 예산지원에서 불이익을 준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정의란 무엇인가?"를 강의하는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더 교수와 같이 5~6백 명의 학생들을 놓고 하는 대형 명강의는 쉽게 개설되기 어렵다. 대학의 자율을 지키기 위해 대학들이 정부의 이런 인증평가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대학평가에 대한 여론이나 향후 교육당국과의 관계 때문에 이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지식사회라고 하고 대학은 지식생산의 최첨단에 서있다. 지식생산은 규격화된 틀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있다. 이제 세계에서 인정받는 우리 대학들이 나오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 대학들이 이런 평가기준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다른 나라에서 안다면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만일 반값등록금 때문에 정부가 대학재정을 일부 지원하면서 대학을 더욱 획일적으로 규율하고 대학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기 시작한다면 우리 지식사회의 생태계는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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