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출신 총리 지명은 사법권 독립 훼손 및 헌법정신 짓밟는 일
대법관 출신 총리 지명은 사법권 독립 훼손 및 헌법정신 짓밟는 일
  •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 승인 2013.01.3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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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김용준 총리 지명자의 사퇴는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권 행사에 대해 국민적 불신이 심각해졌지만 잘못된 일을 재빨리 바로잡은 점은 평가할 만하다.

박 당선인과 보좌진은 이번 일을 거울 삼아 국민들의 신망이 높은 인물을 새 총리 후보로 선정해 주기 바란다.

언론 보도를 보면 새 총리 후보로 하필 대법관 출신들이 여럿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지낸 이를 국무총리로 삼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는 권력분립(3권분립)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 헌법 교과서들에는 입헌적 의미의 헌법을 설명하면서 "권력분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는 헌법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을 늘 인용하곤 한다. 권력분립의 원리 하에서도 입법부와 행정부의 수뇌부를 이루는 정치인들 간의 인사교류는 항시 허용되지만 사법부 만큼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정치적 중립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정도이다. 사법권의 독립이야말로 권력분립, 더 나아가서 민주주의의 주춧돌인 것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은 사법부의 수뇌이다. 이들은 재임 중에는 물론 퇴임 후에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들이 행정부나 입법부로 가는 사례가 있게 되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하는 동안 다음에 또 한자리 하려고 정치권력을 쳐다보며 부당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의심을 받게 되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훼손된다. 사법부마저 정권의 시녀였던 불행한 역사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오늘 이 문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사실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특정 대선후보 캠프의 책임자가 되고 이어서 정권인수위원장, 총리 후보가 되는 것이 영 마땅치 않았다. 그가 사퇴한 마당에 박근혜 당선인이 다시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출신을 총리 후보로 지명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또한 대법관 출신 인사들은 설령 총리가 되어달라는 요청이 오더라도 사법부 수뇌를 지낸 분들답게 단호히 거절해 주기 바란다. 개인적으로도 행정권력의 보조자가 되기 보다는 영원한 대법관으로 남는 것이 훨씬 더 영예롭지 않을까? 대법관 출신 아니더라도 총릿감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 나 아니면 안된다고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대법관 출신을 총리로 지명하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고 헌법정신을 짓밟는 일이다. 대법관 출신이 총리가 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속했던 사법부에 흙탕물을 끼얹는 짓이다.

지금은 대통령과 정치권력이 사법부 위에 군림하던 유신 시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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