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토론에는 ‘사람’이 안 보인다
박근혜 토론에는 ‘사람’이 안 보인다
  • 김종철·언론인/전 연합뉴스 사장
  • 승인 2012.12.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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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저녁 8시부터 시작된 대통령후보 세 사람의 토론을 1시간 50분 동안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선거일을 9일 앞두고 박빙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새누리당 박근혜와 민주통합당 문재인의 표정과 발언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박근혜가 토론 내내 상당히 굳은 얼굴인 데 비해 문재인은 가벼운 웃음을 띠고 상대를 주시하면서 중요한 대목에서는 메모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앉은 이정희는 때로는 미소를 띠고 어떤 때는 정색을 한 채 주로 박근혜에게 직설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지난 6일의 1차 토론 때보다는 강약 조절을 적절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지난 11월에 치러진 미국의 대통령선거 시기에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의 미트 롬니가 두 차례 토론을 한 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이 신속하게 승자와 패자를 가려 보여줌으로써 유권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믿을만한 ‘성적표’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월등히 앞선 보수신문들과 KBS와 MBC를 비롯한 친여 방송사들이 새누리당 후보와 야권 후보들을 엄정하게 비교하지 않은 채 박근혜와 문재인이 비슷하거나 박근혜가 앞섰다고 평가를 내리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경제민주화이다. 극심한 빈부양극화를 해소하고, 저성장의 수렁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특히 젊은 세대를 위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후보가 누구인가를 가려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서 토론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나는 세 후보에 관한 선입관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토론을 보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토론이 진행될수록 ‘박근혜가 과연 준비된 여성대통령인가’ 하는 의문이 짙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법과 경제적 윤리에 대해 올곧은 지식과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사례를 차례로 들어보겠다.

 

박근혜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자의적으로 쓸 재량 지출을 줄이고 세입 확대는 비과세 감면 제도 정비나 지하경제를 활성화 한다든가 해서 5년간 135조원을 마련하겠다.”

‘지하경제’는 마약이나 불법도박, 총기류 거래, 밀수, 비밀 사채 등 세금을 내지 않고 은밀히 행하는 경제행위의 총칭인데 135조원 가운데 얼마를 지하경제를 활성화해서 거두어들이겠다는 뜻인가? 일부 언론은 박근혜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활성화’라고 잘못 발음했다고 선의로 해석했으나 그럴 가능성은 미미하다.

왜냐하면 그는 지난 8월 23일 새누리당 출입기자단과의 오찬간담회에서도 ‘지하경제 활성화’ 방안을 밝혔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어 지하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미국으로 치면 마피아를 합법화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박근혜가 공정한 납세에 관한 지식과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결정적 증거는 이번 토론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지난번 1차 토론 때처럼 이정희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이 도화선이었다. 1차 토론에서 이정희는 박근혜를 향해 “유신정권 당시 장물로 월급 받고 살아온 분이라 (권력형 비리 근절대책을) 믿을 수 없다”며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준 6억 원을 스스로 받았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 박근혜의 대답은 이랬다.

“당시 아버지도 흉탄에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이었다. 아무 걱정 문제 없으니 배려 차원에서 해주겠다고 하는데 경황없는 상황에서 받았다. 저는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다. 나중에 사회에 환원할 것이다.”

2차 토론에서 이정희는 박근혜가 전두환한테 받았다는 6억원 문제를 다시 거론한 뒤, 2007년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캠프가 제기했던 문제를 공개적으로 되살렸다.

“살아온 길을 보면 살아갈 길도 알 수 있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는 18년 동안 청와대 살다가 1981년에 경남기업 회장이 무상으로 지어준 성북동 자택으로 옮겼다. 박 후보는 (그 주택과 관련한) 증여세·취득세·등록세를 내지 않았으며 이 집이 지금 공시지가 20억원이 넘는 삼성동 주택이 된 것이다. 박 후보가 집이라는 한 글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정희의 날카로운 공격에 대해 박근혜는 대답 대신 반격에 나섰다.

“이 후보는 저번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저는 이미 답을 드렸다. 이 후보는 현실적인 코앞의 답부터 해결해야 한다. 문 후보와 단일화 의지가 강한데 대선 완주할 계획 있나? 끝까지 갈 생각도 없으면서 국고보조금 27억을 받는 것은 지난번 국회에서 논란이 됐던 ‘먹튀법’에 해당한다.”

이정희와 박근혜의 논쟁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박근혜가 청와대 ‘비밀금고’에서 나온 돈 6억원(당시 은마아파트 30채 값)을 어디에 썼는지, 그리고 33년간의 금리를 원금에 합산해서 사회에 환원할 것인지를 명확히 밝힌 뒤, 성북동 집을 증여받고 세금을 포탈한 데 대해 불법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일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정희가 아직까지 확언하지 않은 ‘문재인과의 단일화’를 전제로 그가 ‘국고보조금 27억원을 먹고 튈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것은 이 시점에서는 개연성에 불과할 뿐이고, 후보를 사퇴한다 해도 국고보조금은 현행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여기서 새삼 상기할 것은, 1979년 10월 26일 밤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죽음을 당한 뒤 박근혜가 졸지에 가장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공동선대위원장 김성주의 표현대로 ‘소녀가장’이 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소녀가장이라고 부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 27세였고, 여동생 근령은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라서 자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동생 지만은 육사 생도로서 국비로 생활하고 있었다. 게다가 박근혜가 두 동생을 데리고 돌아간 신당동 집은 대지 99평에 건평 39평의 단층 기와집으로 방이 5개나 있었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아버지의 유품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는 이유로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성북동 집을 ‘증여’받았다는 것이다.

2차 토론에서 박근혜가 문재인을 상대로 ‘참여정부의 경제 실패’를 맹렬히 공격하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은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문재인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박 후보도 이명박 정부를 실패한 정권이라고 했다. 민생만 실패한 게 아니고 남북관계, 안보, 지방 균형발전 등 모든 게 파탄이다. 물가도 가장 많이 올랐다. 가계부채도 새누리당 정부에서 가장 많이 늘었다. 새누리당과 박 후보는 4대강 사업·부자 감세·115개 민생법안을 날치기했다. 이명박 정권 실패에 공동책임 없나?”

박근혜가 2011년 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영입한 김종인은 지난 11월 11일자 한겨레와의 특집 인터뷰에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게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경제민주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벌 개혁을 비롯한 경제민주화 정책 문제에서 박근혜한테 외면당한 뒤 고립되어 당무를 거부하던 그는 2차 토론 전날 복귀했다.

박근혜식 경제민주화의 뼈대가 2007년의 ‘줄푸세(세율은 낮추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는 정책)’로 되돌아간 상태에서 ‘박근혜 당선을 위해’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2차 토론을 보고 내린 결론은, 박근혜는 민생 살리기와 국민대통합을 가장 강조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는 ‘사람’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는 빈부 격차를 최소화함으로써 최대한의 경제적 평등을 이루자는 것이 아니라 재벌이 중심이 된 독점경제체제를 개혁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소기업과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는 모순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민생’은 특권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 노동조합 가입률이 1.9%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 확장에 밀려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 골목상권 사람들, 온기가 없는 단칸방에서 간신히 끼니를 이어가는 독거노인들, 무상급식 없이는 점심을 굶어야 하는 어린이들, 쌍용차 사태로 목숨을 잃은 해고노동자 23명의 유족들이 바로 민생의 얼굴이다.

재벌과 특권층 위주의 ‘줄푸세’는 그 민생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사람’은 소외시키고, 부와 권력을 독과점한 극소수의 기득권만 더욱 키워주는 ‘반(反) 경제민주적’ 정책인 줄푸세를 고수하는 한,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오늘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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