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 문틈 시인
  • 승인 2012.10.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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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가을날엔 흔히 코스모스를 보러 드라이브를 나간다. 코스모스는 도시를 벗어나 마을 이름도 모르는 시골길가에 연해 무더기로 피어서 하늘댄다. 그 가녀린 코스모스를 보노라면 왠지 마음 한쪽이 서늘해온다. 무슨 슬픔 같은 것, 무슨 애처로움 같은 것이 잔잔히 물결쳐온다.

코스모스는 여름에도 피지만 여름에 피는 코스모스는 낮에 나온 반달처럼 어쩐지 어색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가을길에 피어 바람에 흔들대는 모습이 제격이다. 코스모스는 흰꽃, 분홍꽃, 빨강꽃들이 뒤섞여 피는데 색깔들이 맑고 투명해서 전체적으로 말쑥한 차림새다. 달리는 차창으로 손을 내밀어 마구 흔들어주고 싶어진다. 마치도 나를 환영나온 가을날의 전령들 같다.

코스모스의 본래 고향은 저 먼 멕시코라고 한다. 그 먼 나라에서 유럽으로 건너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선교사의 성경책과 함께 이 땅에 들어온 꽃이다. 하지만 100년도 못되어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 가을 논밭, 가을 길과 딱 어울려 피는 우리나라 꽃이 되었다. 주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를 따라 피어나기에 사람들과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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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해 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대통령이 지나는 길가에 울긋불긋 옷차림들을 하고 늘어서서 정겹게 손을 흔들어대던 모습이 흡사 이 길따라 쭉 피어난 코스모스를 연상시킨다. 코스모스는 바다로 가는 가을 강처럼 나의 이 설레이는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이 삶의 나즈막한 아픔을 알고 있을 것이다.

코스모스는 무더기로 길가에 피어 지나가는 내게 입을 모아 무언가를 외치는 듯하다. 힘을 내라는 것일까. 외치지 않는다면 흔들리는 몸짓으로 무언가를 내게 말하려는 듯도 하다. 마음을 비우라는 것일까. 좌우간 코스모스는 다른 꽃들과는 분명히 다른 표정, 다른 몸짓을 하고 있다. 다른 꽃들은 내가 보기에 한사코 제 모습을 아름답게 보이려고 가꾼 티가 역력한데 코스모스는 그냥 수수한 차림 그대로다. 가을걷이를 하러 밭에 나온 마을 처자들처럼. 아무런 꾸밈이 없는 그 차림이 외려 참해 보인다.

어릴 적 코스모스를 따서 책갈피에 끼워두곤 했는데 나중에 책을 펴보면 코스모스는 간 곳이 없고 그 페이지에 코스모스 꽃이 선연히 박혀 있는 것을 보고 코스모스에 영혼이 있는 것인가, 하고 혼자 생각해보기도 했다. 가을 운동회 연습 때 운동장 가에 핀 코스모스 잎을 따다가 내가 줄맞춰 서 있는 운동장 자리 밑에 파묻어놓고 유리조각으로 덮어두었다. 그리고는 연습 때마다 유리조각에 덮인 땅 속의 코스모스를 들여다보곤 했다. 나만이 나누는 코스모스와의 마음의 대화 장면이다.

코스모스는 홀로 피어 있지 않다. 무더기로 핀다. 씨앗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다음해 또 피어난다. 그런 코스모스를 보고 언젠가 묻는 사람이 있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는 국가에서 심은 것인가요?” 코스모스는 국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엇인가 진짜를 마음에 품고 그것을 잃지 않으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껴안고 흔들릴 뿐이다. 가을길의 코스모스는 무너지는 자신을 한사코 일으켜 세우려는 내 마음의 이미지인 것이다. 내년 가을에도 손을 흔들며 코스모스 길을 가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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