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파도는 언제까지나
푸른 파도는 언제까지나
  • 문틈 시인
  • 승인 2012.08.0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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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사람들이 바다로 몰려가는 것은 태양을 피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뜨거운 태양을 만나고 싶어서다. 수평선 저 너머에서 파도가 넘실넘실 바닷가를 향하여 달려오고 사람들은 벌거벗은 몸을 하고 두 팔을 들어 파도를 껴안는다. 그리고는 파도와 뒤엉키어 마구 뒹군다.

파도가 사람을 궁굴리고 사람이 파도의 목에 매달려 떨어질 줄을 모른다. 마치 고래를 붙잡고 씨름이라도 하는 것처럼. 푸른 파도는 끊임없이 몰려오고 사람들은 파도와 놀며 여름날의 정수리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해 손을 흔들어댄다.

태양은 바다에 햇빛으로 짠 그물을 던진다. 그물에 걸린 푸른 파도들이 물고기처럼 파닥거린다. 여름이 끝나기 전 태양은 바다에 던진 그물을 당기지 시작한다. 모든 바다 풍경이 태양의 옆구리 쪽으로 끌려간다. 사람들은 태양의 그물을 간신히 빠져나와 레이스자락 같은 파도로 간신히 알몸을 감싼다.

파도와 장난을 치는 사람들의 온몸에는 태양의 뜨거운 입술자국이 나있다. 온몸에 새겨진 태양의 입술자국마다에는 은빛 비늘들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마침내 파도에 매달려 뒹구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 어깨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다.

사람들은 파도 속으로 잠수를 타며, 헤엄을 치며, 바다 위로 함성을 퍼 올리며, 젊음을 내뿜으며, 태초의 바다와 이윽고 몸을 섞게 되는 것이다. 바다와 한 몸이 된 그 순간 조간신문이 떠들어대는 인간세상이야 어떻게 굴러가든 알 바 없다.

하늘 끝까지 물결치는 바다에 온몸을 맡기고 바다를 간질이며 이리저리 바다를 타고 떠돌아다닌다. 삶이란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비로소 여름바다에서 아득히 먼 날부터 자신들이 바다의 자손이었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온몸의 혈맥을 타고 도는 피가 푸른 바다의 파도였음을 감지한다.

그러니 여름에는 그가 누구라도 바다에 가야 한다. 푸른 파도로 벌거벗은 몸을 감고 뒹굴어보아야 한다. 그가 실연에 빠진 청년이든, 노천에서 자영업을 하다 망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이든 바다로 가서 인어가 되어 보아야 한다. 여름 바다에서는 모두들 한 마리 인어가 되고 바다와 한 몸이 되어 태양의 입술세례를 받는다.

그보다 더한 삶에 대한 경이와 감동이 또 없다. 아무리 사는 일에 잔뜩 골이 나 있는 사람일지라도 푸른 여름바다를 안아본 사람이라면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을 해볼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바다로 간 사람들은 태양에 그을린 몸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온몸에 돋아난 비늘을 털어내고 다시 도회의 어김없는 일상으로 잠입한다. 집집마다에는 바다로부터 온몸에 감고 온 푸른 수평선을 조심조심 풀어내 벽에다 붙여 놓고는 그것을 바다인 양 그리워한다. 지난 여름에 본 태양과 먼 바다와 푸른 파도를. 그리고 이 세상에서 맨 처음 바다를 바다라고 이름 지어 부른 사람처럼 “바다!”하고 혼잣말로 불러본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바다의 이름을 소리 내 불러보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 바다에 가서 맺은 바다와의 짜릿한 경험을 기억한다. 구름조차도 여름바다에 갔다 와서 더욱 찬란한 모습으로 하늘에 부풀어 오르고 있는 모양을 보라. 푸른 파도는 언제까지나 그대 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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