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우는 여름 풍경
매미가 우는 여름 풍경
  • 문틈 시인
  • 승인 2012.07.2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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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내가 사는 마을에 매미들이 진주했다. 매미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마을에 진을 치고 처음엔 척후 매미 한두 마리가 느티나무에서 울기 시작하더니 며칠이 지나자 마을 곳곳에서 수많은 매미들이 울어쌓는다.

매미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운다. 온 마을이 매미소리로 자글자글하다. 마을은 완전히 매미소리의 포위망 안에 들어가 있다. 그렇다고 매미들이 누구를 향하여 그 무슨 선동을 하는 것은 아니고, 바야흐로 여름의 족속들을 향하여 큰소리로 통지문을 반복해서 읽을 뿐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연이 켜놓은 알람시계 같은 것이라고 할까.

결코 인간세상처럼 어떤 거짓을 유포하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듣기로 그 소리를 번역하면 이렇다. "지금은 한여름이다--!" 그렇게 목청을 돋우어 여름을 알리는 것이다. 태양이 지구의 정수리에 자리한 한 철을 골라서 매미가 우는 것은 그것 말고도 무슨 연유가 있음직하다.

물론 매미가 우는 것이 제 짝을 찾는 소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비단 그런 이유만으로 저리도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것인지는 살짝 의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은 뜻이 있지 싶다. 매미 울음소리는 다른 뭇 생명들에게 생명활동을 독려하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새, 나무, 개구리, 딱정벌레, 토끼, 곰팡이, 산딸기, 풀, 기타 등등에게 이 한여름 해찰 말고 일을 서두르라는.

그래서 햇볕이 쨍쨍한 여름에 새들은 열심히 새끼를 기르고, 나무들은 부지런히 열매를 맺고, 벌레들은 쉼없이 흙을 고르는 것이 아닐까. 매미가 울어대는 알람 소리에 맞추어 각자 맡은 일을 하는 것일 터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매미 소리는 자연의 밴드부 연주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매미는 땅 속에서 십수년간을 보내고 지상으로 올라와 단 며칠을 살다가 자손을 남기고 죽는다 한다. 그 자손 또한 자손을 남겨놓고 죽는 것이고. 그렇게 수천년, 수만년을 살아왔다. 인간도 자식을 남기고 그 자식이 대를 이어 자식을 남겨놓고 죽고. 어떤 점에선 만물의 척도로 자처하는 인간의 생도 매미의 일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미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살짝 건드려보았더니 그것은 울음소리가 모조리 빠져나간 매미의 몸통이었다. 매미의 시체는 할 일을 다 한 자의 모습처럼 늠름해보였다. 인간의 빈집 같지는 않았다. 매미는 다른 매미와 다투다가 죽은 것도 아니요, 사기를 당해 부도나서 자살한 것도, 굶어죽은 것도, 몹쓸 병이 들어 죽은 것도 아니다.

참말로 매미의 주검은 생을 완성한 더할나위없이 완전무결한 죽음이었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매미를 두고 악소문이 나돈다. 이솝이나 안데르센이 매미를 게으름뱅이로 지목한 이후로 뭐, 매미가 노래만 부르며 게으르게 살다가 종당에 개미한테 가서 구걸하며 살았다는 둥. 진실은, 매미는 자연이 맡긴 직분을 그르침이 없이 최선을 다하고 죽는다다.

매미들 중에는 서울 매미들이 가장 극성맞게 우는 듯하다. 서울의 매미가 필사적으로 우는 까닭은 날마다 시끄럽게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보다 더 크게 울어야 짝을 찾기 때문이란다. 그 말을 들으니 서울에선 매미에게도 사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닌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매미 울음소리로부터 생의 감각, 아니 그 절정을 느낀다. 그래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여름이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마을에서 매미가 철수할 즈음이면 한여름도 끝장에 다다른다. 잘 들어보라. 매미는 숨 가쁘게 한 소식을 전한다. 여름을 우는 매미에게 감사를 보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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