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미장원에서 생긴 일
동네 미장원에서 생긴 일
  • 문틈 시인
  • 승인 2012.06.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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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발을 할 때 미장원으로 간다. 커트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미장원이 더 편해서다. 머리감기와 면도는 집에 와서 내가 한다. 굳이 이발소로 갈 필요를 못 느낀다. 게다가 미장원에 가면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런저런 최신 뉴스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미장원은 동네 사랑방이나 진배없다.

물론 나 같은 남자 이용객은 많지 않다. 이용객의 대부분은 아파트 단지의 여자들이다. 거개가 단골 이용객인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자기 집안의, 이를테면 남편의 술버릇에서부터 자녀의 혼사 이야기,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다.

30대에서 80대까지 각기 다른 연령대별 손님들이 갖가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데 미장원 주인은 늘 친절한 말벗이 되어 준다. 나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커트를 하는 동안 미장원에 와서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못 들은 척 귀를 기울인다. 몇년 다니다 보니 아하,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사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사랑방 교실에서 진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이란 그렇고 그런 하잘것없는 시시한 이야기들을 생산하며 별일 없이 굴러간다는 것을 말이다. 신문에 나는 뉴스들처럼 무슨 대단한 이야기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신부측에서 보내온 예단을 신랑측에서 적다고 결혼을 파토냈는데 여자는 다음해 더 좋은 혼처를 만나 결혼을 해서 오히려 잘됐다, 1남2녀 중 딸 하나만 결혼을 하고 나머지는 30이 훨씬 넘었는데도 아예 결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어 속을 끓인다,

새로 문을 연 카페 주인 마담이 예뻐서 동네 남자들한테 인기라는 둥 내가 몰라도 그만인 최신 뉴스들이지만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돌아간다.

신문이나 인터넷을 보면, 이 세상이 곧 망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 때가 많은데 동네 미장원에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란 것이 이렇게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질긴 삼베를 짜듯 쉽사리 풀어지지 않는 구조로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결코 신문에 나오지 않는다. 신문은 우리와 동떨어진 '그들'만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문에 나오는 거대담론보다 미장원에서 듣는 뉴스가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미장원에는 비단 이런 이야기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병들고 죽어가는 집집마다의 이야기들이 이곳에 모였다가 퍼져나가고 공유되고 격려와 공감을 얻기도 한다. 팔순이 넘은 단골 고객이 한두 달 안 오면 그분의 영혼은 세상일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육십대의 고객이 몇달간 발길이 끊어지면 병원에 입원했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간 것이다.

한번은 미국으로 이민간 어떤 여자가 오랜만에 부모를 만나러 귀국했다가 미장원으로 머리단장을 하러 왔는데 미국보다 너무나 값이 싸고 마음에 드는 머리손질에 감동하여 팁 대신 노래를 불러도 괜찮겠느냐고 하더니 '생명의 양식'을 멋드러지게 불러서 미장원 주인과 손님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미장원 주인은 외동딸이 독일로 유학 가서 지금은 그곳에서 독일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손자를 낳아 잘 살고 있다. 얼마 전엔 직접 독일로 날아가 손자를 안아주고 왔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어디 내가 다니는 이 미장원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처럼 커트만 하고 싶다면 독자 여러분도 가까운 미장원에 가서 머리 손질을 해볼 것을 권유한다. 우리 동네 미장원에서는 커트료로 8천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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