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다른 말로 부른다고 해서
노인을 다른 말로 부른다고 해서
  • 문틈 시인
  • 승인 2012.06.2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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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자체에서 노인을 다른 말로 부를 호칭을 공모한다고 한다. 국어학회도 아닌 행정기관에서 지명이나 기관명도 아닌 새로 쓸 노인 호칭을 공모한다는 것이 좀 생뚱맞다. 노인이라는 말을 노인들이 꺼려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노인층의 지지를 받아보려는 정치적 꼼수로 비쳐 보인다.

그렇긴 하나 사실 요즘처럼 보통 80세 넘어서까지 장수하는 시대에 노인이라는 말은 당사자에게 거부감을 안겨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주위에서 보면 노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어르신으로 불리는 것조차 내켜하지 않는 것 같다.

오랜 세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해왔는데 요즘 들어 왜 노인을 노인이라고 부르면 듣기 싫어하게 되었을까. 우리 사회가 노인을 홀대하다 못해 사회적으로 번외의 부류로 내치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싶다.

어떤 정치인은 심지어 “노인들은 투표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쉬시라”는 말까지 할 정도이니 노인은 다 닳은 건전지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아 억울하고 속상할 법하다. 그렇다고 노인이라는 호칭을 다른 말로, 예컨대 노인을 청년이라고 부르고 청년을 노인이라고 부른다 한들 노인의 위상이 달라질 것인가. 호칭이 달라졌다고 노인을 청년으로 대해줄 것인가 말이다.

아무리 노인을 다른 좋은 말로 부른다 해도 노인에 대한 사회적 홀대가 바뀌지 않는다면 호칭을 골백번 바꾼들 소용없는 짓이다. 그러면 어떡해야 하나. 노인이라는 말은 낡고 닳아빠졌으니 새로운 말로 바꾼다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그보다 먼저 노인에 대한 존경심, 경외심을 높이고, 노인의 경륜과 지혜, 기여를 존중하고, 사회적으로 예우를 갖추어 대하는 ‘노인우대’ 정책을 확대해가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 성취를 이루어온 노인에게 합당한 사회적 위상을 마련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노인이라는 호칭을 바꾼다 한들 흡사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으로 만들려는 것이나 진배없다. 우리 사회에는 어느 지자체의 엉뚱한 노인 명칭 공모에서 보듯 내용(존경심)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겉(호칭)만 바꾸려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다. 심하게 말해서 그것은 한낱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외래교수, 겸임교수, 방문교수, 객원교수, 연구교수, 초빙교수, 명예교수, 석좌교수, 석좌명예교수 등의 호칭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노인들은 나이 80이 넘어도 허리 꼿꼿이 펴고 못 가는데 없이 다니는데, 그런 사람을 노인(늙은이)이라고 부르면 나라도 듣기가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노인을 무엇이라고 호칭하면 좋을까.

그 전에 자손을 낳고 기르고 사랑하고, 이 나라를 땀 흘려 부강하게 일구고, 상처받은 역사를 지키고, 이제 건강하게 장수하게 된 우리 사회의 지혜로운 분들에게 걸맞은 새 호칭과 함께, 노인을 예우하고 노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 노인의 위상에 맞는 새로운 말을 찾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나설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의 따뜻한 배려와 예우를 모아서 정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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