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뒷창을 갈아 끼우며
구두 뒷창을 갈아 끼우며
  • 문틈/시인
  • 승인 2012.06.1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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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평생 동안 모르긴 해도 한 열 켤레쯤 구두를 신어온 것 같다. 구두는 이름난 상표는 거의 신어보지 않았고 대부분 신기료 장수나 길거리에서 산 값싼 것들이다.

이날 이때껏 5만원 넘는 구두는 한 켤레도 신어본 기억이 없다. 아내는 백화점에 가서 좋은 구두를 사주겠다고 여러 번 우겼지만 내가 하도 반대하니까 고집을 꺾고 나 하는 대로 내버려 둔 지 오래다. 게다가 나는 구두를 닦지 않고 되나캐나 신고 다닌다. 급할 때는 구두 뒷축을 눌러 신고 나갈 때도 있다. 뭐 구두에다 비싼 돈을 들여 신느냐는 것이 내 주관이다.

비싼 구두를 신고 매일 구두코를 반짝거리게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런 부족과는 거리가 멀다. 구두는 내 발을 편안하게 감싸고 걷기 좋게 해주면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나는 그밖의 임무를 구두에게 맡기지 않는다. 구두가 사회적으로 내 위신을 대신하게 하지도 않으며 나의 형편을 대변하게 하지도 않는다. 신발은 신발이다.

구두를 몇 켤레 마련해놓고 바꿔가며 신고 다니라는 아내의 잔소리도 있었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장고 끝에 내린 내 결론이다. 그 대신 구두 뒷창은 1년에 한번 정도는 갈아 끼운다. 구두 뒷창은 오래 신다보면 오른쪽 왼쪽 뒷창 부분의 서로 반대쪽이 닳아 바꿔 갈아주지 않으면 신을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진다.

그래서 오른쪽 뒷창을 왼쪽 구두에 왼쪽 것은 오른쪽에 갈아 붙여 신고 다니다가 그것마저 다 닳으면 이번엔 구두 뒷창을 새 것으로 간다. 그래도 새 구두 사는 것보다는 엄청 돈이 덜 든다. 문제는 이 구두가 여름 장마철 비가 올 때는 물이 샌다는 것인데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알아보았더니 비싼 구두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현대 문명이 아직 물 안 새는 구두는 발명하지 못한 것 같다.

값싼 구두라고 해서 걷다가 구두가 벗겨지거나 구두밑창이 떨어져나거나 뭐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되레 식당 같은 데 가면 “구두 분실시 책임지지 않습니다” 같은 경고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나중에 나올 때 수많은 구두 중에서 내 것을 얼른 찾을 수 있어 좋다. 게중에는 자기 신발을 못찾아 한참을 난처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정말로 남이 구두를 바꿔 신고 가버린 경우도 있다.

우리가 어릴 적엔 짚새기를 신고 다녔고 그 다음엔 다들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그리고 구두로 넘어왔는데 그때부터 구두가 제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남의 눈은 지옥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두 같은 것으로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엊그제 신기료 장수한테 구두 밑창을 갈러 갔더니 너무 닳았다며 이 헌 구두는 집에서 허드레신으로 사용하고 새 구두를 구입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새것을 내민다. 구두 밑창을 갈 것인지 새로 살 것인지 더 연구해볼 참이다. 요새 갑자기 내게는 이렇게 연구해볼 것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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