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잎 클로버를 찾는 마음
네잎 클로버를 찾는 마음
  • 문틈/시인
  • 승인 2012.06.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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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동산에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한 시간쯤 걸린다. 몇달째 계속하고 있는 나의 일과다.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내 건강을 위해서다. 처음엔 숨이 가쁘고 힘이 좀 들었는데 지금은 거뜬하다. 땀을 흘리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는 그 기분은 얼마나 상쾌한지 모른다.

그런데 산에 오를 때마다 산꿩 소리를 듣는 것이 하나의 의례가 되어 “오늘 산행에서 산꿩 소리를 못 들으면 어떡하나” 하는 데까지 가고 말았다. 묘한 것은 어느 날도 산꿩 소리를 못들은 날이 없다는 사실이다. 산꿩은 내가 산을 타는 한 시간여 동안 딱 한번이나 두 번 운다.

내가 한사코 그렇게 생각해서이겠지만 산행과 산꿩 소리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제는 산행할 때마다 산꿩 소리를 못 듣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까지 갖게 되어버렸다. 어떤 때는 산행 내내 산꿩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내려오다가 가까스로 산행을 다 마칠 무렵에야 듣게 될 때도 있는데 그럴 땐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이 정도면 내가 무슨 미신에 깊이 빠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미신 같은 일에 빠져든 것은 뭐 나만 그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길거리에서 777 숫자의 차량 번호판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며 기분 좋아라 하는 사람도 있고, 666을 보았다며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다.

하긴 유명한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아침에 성경을 아무데나 펼치고 눈에 들어오는 첫 구절을 보고 그날 운수를 점쳤다 한다. 사람들이란 이런 사소하고 엉뚱한 것에 무슨 행불행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둘러보면 우리가 사회에는 미신이나 터부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집도 제대로 홋수를 붙이면 104호가 맞는데 4자가 들어 있다 하여 104를 건너 뛰고 105호로 되어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에 4자가 표시된 것을 본 일이 없다.

어디 숫자뿐인가. 이사 갈 때, 결혼날짜를 정할 때, 흉일 길일을 가려 날을 택한다. 올해는 윤달이 끼었다 하여 이를 피해 6월에 결혼식이 몰려 있는 것만 봐도 사람들의 미신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특정한 개인의 터부를 넘어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사회집단이 만들어낸 미신으로 보인다. 일본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터부들이 있다. 터부가 왜 생겼는지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다. 아마도 인간은 한치 앞을 모르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기 때문에 터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미래의 길흉을 택하거나 피해보려는 심사에서 그러는 것이리라.

내가 산행에서 꿩 우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해서 그날의 운수가 달라질 것도 없고, 777번호판을 보았다고 해서 운수대통할 일도 없을 터인데 그런 사소한 미신에 빠지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불확실한 미래에 취약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하긴 한치 앞을 못 보는 것이 인간일진대 어떤 것이 미래를 보장하고 행운을 불러온다면 누군들 그것에 의지 안하겠는가싶다.

네잎 클로버는 흔히 행운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네잎 클로버를 찾아서 책갈피에 꽂아놓기도 한다. 그런데 누구는 이렇게 말한다. 세잎 클로버라는 흔한 ‘행복’이 널려 있는데 왜 굳이 찾기도 어려운 네잎 클로버라의 ‘행운’을 바라는가라고. 그래도 세월이 하 어지럽다보니 푸른 풀밭에 가서 네잎 클로버를 찾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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